'날씨는 겨울이 되어도 마음은 겨울이면 안되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차디찬 겨울이었다.
되돌려 보려 해도 이미 쌀쌀한 날에 손을 꽁꽁 얼었다.
눈도 안내리는데, 눈이 안내린 세상에 더 허탈해 보이는 이 추위가 내면에도 찾아오니 뭐하다가 이렇게 되버렸나 싶다. 마음이 참 허하다. 마음에도 겨울이 와버린 것이지
하얗게 눈이라도 내려 백짓장 종이같은 세상이면 차라리 좋겠지만,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의 모습과 잿빛 대지를 보면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허공만 보고 있는 그런 마음이다.
아무것도 없고, 남겨진것도 없이 싹 사라졌는데 심지어 춥기까지 한 겨울이다.
어디로들 숨었니, 사라져버린것은 아니지? 그렇담 봄을 기다리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사라지지는 마. 내가 잊어줄테니
겨울이 되면 내가 잊혀질테니 사라지지는 마
내가 사라질테니, 내가 잊혀질테니, 내가 숨어버릴테니'
감정의 골에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나무들 사이로 휑하니 지나가는 겨울바람만이 고막을 강타하고 두통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계절
마음에 가뭄이 오고, 폭풍이 쳤을 때도 이렇진 않았는데
겨울은 날씨가 아니라 계절이라, 재난이 아니라 계절이라 다른 것일까?
무엇을 잊을 생각만 잔뜩하던 겨울에, 이름 모를 새 둥지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에 스스로를 위안하고 스스로에게 사과했다.
겨울을 '버티다' 라고만 생각했고, 겨울을 '춥다'고만 생각했었나보다
'준비'와 '아늑함'은 어느 계절에 흘려놓고 온 것인지 겨울에 꺼내질 못한 생각들이다.
버틴다고 애쓰는 마음보다도 '당연히 다가올 다음 계절'을 기대하며 준비하고 이 아늑한 계절에 푹 빠저 쉬어줄 생각은 못한 내 스스로가 바보같았다.
겨울이 오면 자연스럽게 봄이 오는 것을, 겨울이 오면 겨울을 아늑히 나면서 쉬는 것에 집중하면 되었는데 겨울이 왔다며 비관적인 생각만을 했다. 계절을 즐기지도 못하면서 원망만 하는 모습이 꼴사납다.
마음에 봄이 있으면 겨울도 있는게 당연한것을, 한반도 땅에서 26년을 살았으면 여기는 4계절이 있다고, 그러니 내 마음에도 사계가 흐를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더 단단해질 준비를 하기 위해 입동에 들어간 마음이라 생각하면 되었을 것을 참으로 비관적으로 생각하였다. 스스로에게 따듯한 장갑과 목도리를 선물하고 귀여운데 쓰고 나가기에 조금 고민되는 탁 튀는 디자인의 털모자를 선물해도 되었을 텐데, 바보같아라
'마음도 겨울일 수 있다. 겨울이 와야 봄도 오지, 마음에 겨울에서 나의 오두막을 찾자' 이렇게 생각하며 낭만의 시간을 보낼 겨울이었다.
좋은 타이밍이라 해야지, 마음도 계절도 모두 겨울이 왔으니 나는 이 계절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낼 수 있는지 고민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져보아야지. 차가움의 고통 보다는, 그 사이에 피어낸 장작의 조그마히 감싸는 온기의 기쁨을 느끼고 까끌거리는 털장갑 사이로 딴 참을 집에 와 벗는 개운함과 벌겋게 얼어버린 코와 턱 끝이 자연스럽게 녹으며 코코아 한 잔이나 좋아하는 티 하나를 뜨겁게 끓여내어 커피광고처럼 앉아서 창을 봐야지
스물 여섯, 마음에도 겨울이 찾아온것은 '기쁨' 이었고 '태동' 이었다.
겨울이 와서 다행이다.
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에 LED 전구를 달아주며 빛낼 상상을 해야지. 앙상해서 속이 다 보여 솔직해지는 계절이야, 집 뒷산 앙상한 나무들은 잎이 정말 풍요로웠구나. 아랫집 어르신이 봄여름에 참 부러워 하시겠어
방바닥에 발 닿으면 차갑게 올라오는 냉기에 놀라는 아침이지만, 보드라운 카펫을 깔아 계속 쓰다듬어야지
스물 여섯, 마음에도 겨울이 왔어요.
스물 여섯 해 동안 몇 번의 겨울이 마음을 드나들었던지 가늠이 안가지만
올해 겨울은 따듯한 오두막을 짓고 따듯한 옷을 입혀주어 혹시라도 기적처럼 이 따듯한 남쪽 동네에 눈이 온다면 외롭지 않게 눈사람을 만들어 한 철 밖에 만나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귀여운 친구들은 잔뜩 만들거에요.
겨울이 왔으니
겨울을 사랑해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