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못했지만,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꽤나 이쁨 받고 지냈었다. 공부 못한다고 제대로 미운소리 뱉으시기 보다는 "왜 우리 이쁜이는 성적이 안오를까" 하고 고등학교 짝꿍에게 다음시간 까지 미적분이였는지 기억도 안날 수학공식 기초 마스터 시켜오라고 괜한 미션을 주셔서 짝꿍한테 미안한 탓에 쉬는 시간에 눈칫밥 먹었던 기억이 난다.
공부 못한다며 차별하거나 미워하는 대신에 대부분 선생님들은 누구하나 다를 것 없이 내게 늘 공부보다 중요한게 세상에 많지만, 공부가 되야 하고싶은것을 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는 걱정어린 말씀들을 해주셨던 것 같다. 좋은 스승을 골라 만났던 것일까, 좋은 스승을 고를 줄 아는 능력이 있었던 것일까
알바를 시작하고부터는, 세상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다보니 나름대로 경험이 쌓이기 시작했고, 어느 한 분 이쁨못받는 곳 없이 싹싹하게 굴다보니 어른들 상대하고 구슬리는데 도를 텃다고 자만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첫 회사 제대로 입사 시작하고 처음 고개숙여 많은 분들에게 인사할 때, 내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탓에 스스로 굉장히 당황했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자신감 넘치고 싹싹한 아이라고 늘 칭찬받았는데 내가 왜 이러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너무 속상해서 기억에 잊혀지지 않는다. 다음엔 더 잘해야지.
그런데 더 잘하면 된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내내 진땀을 뻘뻘 흘리고 노련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한 없이 어린 아이로 머물러 있었다. 왜 그렇게 달랐을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게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2024년 겨울의 나의 해답은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보다도 진지하고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상대하는 그 책임과 믿음의 깊이 차이로 인한 결과였다고
한 번보고 지나갈 사람, 내게 책임을 묻고 믿어 맡기는 일의 중함이 보다 가벼웠던 것들 덕에 나도 그렇게 쉽고 가볍게 응대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만, 나를 향했던 스승들의 사랑과 애정에 대해서는, 가벼움이라고 칭하기 보다는 나를 보면 무거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어서라고 생각한다. 싹싹하고 밝고 공부외엔 모범적인 학생, 크게 욕심부리는것도 사고치는 것도 없어서 공부가 아니라도 알아서 잘 살 성격, 마주할 때 큰 걱정도 큰 고민도 만들지 않지만 밝은 기운은 넘치도록 주는 학생. 그럼 관심과 애정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게 보다 너그러워 지고 좋은것을 우선적으로 챙겨주진 않아도 곤란할 땐 최선으로 나서주는 마음들이라 절대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엄한 큰아버지 아래에서 자라 어릴 적에 매우 혼났었는데, 어른을 쉽게 여길리가 없었다. 식사시간에 조그마한 행동에도 크게 혼나기 일수인데, 하필 또 주의는 산만하고 장난도 심한데 혼내면 겁은 많으면서 쉽게 토라지니 옛어른 된 입장에서 까다롭지 그지 없겠지.
타고나길 실전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성격인지 만들어진건지 모르겠지만, 부담에 먹히면 아무것도 못하는 까다로운 성격이 스스로 싫은 것도 맞다. 그런데 무슨 어른들을 잘 상대한다고 자만하고 있었던 것인지, 어쩌면 그들과의 만남은 짧고 아쉬움이 없었거나 나를 너그러이 이해해주었음이 아니었을지 되돌아 보게 생각하는 겨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조금씩 인생을 거닐면서 시간의 정차역에서 머무를 때 마다 느껴지고 보이는게 또 달라지는 것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