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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과장 Dec 03. 2024

바람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고, 자유를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 

아주 작은 틈으로도 육지 위 만물을 모두 쓰다듬어 희망도 절망도 줄 수 있고, 지치지 않고 바다 건너 무언가에 도달하여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늘 존재하지만, 삶과 죽음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내 할머니의 할머니가 계시기 전부터 내 손녀의 손자가 태어날 때 까지도 존재할 것이다. 


가볍고 만져지지 않지만 사계절 내내 온갖 향기와 습기와 낙엽과 냉기를 나르고 다르다. 썩지 않지만 변형되기도 하고 제어할 수 있다가도 제어하지 못하게 되며, 사랑하다가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 없지만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뚜렷하게 존재함을 느끼게 한다. 

멈춘 것을 움직이게 할 수 있으며,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감싸고 보이는 것을 모을 수 도 있다.


바람, 바람이 그러하다. 바람은 그렇다. 바람은 그랬다.

바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에게도 보이지 않고 무엇도 그것을 잡을 수 없다.

바람에게 감정이 있다면, 분노와 슬픔, 기쁨과 안쓰러움, 차가움 모든 감정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바람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바람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뚜렷하게 느껴지고 제어할 수 없을뿐더러 재앙이 되는 동시에 행복이 되기도 하는 제 멋대로의 존재다. 

절대 바람에게도 도망갈 수 없고, 바람에게서 숨을 수 없다. 그 행동 또한 예측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길 잃은 자에게 방향을 인도하기도 하며,

단 몇 초의 순간에도 사람의 감정처럼 그 느낌을 획 바꾸는 것 마저 우리네 신들 같다.


이 겨울 이른 아침잠을 깨우는 것은 밝은 햇살도, 엄마의 잔소리도, 알람도 아니다. 어디선가 들어오는 찬 바람의 기운이지. 이불 사이로 들어오고, 이불 밖에 나온 내 발 한쪽과 목 뒤쪽을 스르륵 감싸고선, 차가운 양말과 목도리를 씌워주는 이 바람덕에 겨울아침은 유난히 피곤하다. 

바람아..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알람이 깨워주는데 뭐가 문제니. 커튼을 달아도 문을 걸어 잠가도 창 옆에 붙어 자는 이상 소용없을 이 조각만 한 추위는 마치 좁쌀 몇 톨 훔치러 온 쌀벌래나 새끼 쥐 마냥, 아니 욕실에 매일 생기는 물 떼나 곰팡이처럼 신경을 안 쓰자니 사사롭고, 신경을 쓴다고 완벽히 해결되지 않는 거슬림과 가깝다. 그래도 너무 거슬려하지 말아야지


바람을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럴 리 없다.

에어컨 바람도, 선풍기 바람도 다 바람인걸

그러니 함부로 미워하기 어렵고, 자주 미움받지만, 더 많이 사랑받는 이 바람

미워해도 된다. 그런 미움 같은 것에 연연하는 바람이 아니다. 너무 사랑하긴 어렵다. 순간의 기쁨 후에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까, 관심을 끄고 살기는 어렵다. 재난이 되어 돌아올 때가 있으니

바람같이 살진 못하지만, 바람같이 살 필요도 없지


바람은 그래서 감정적인가? 그건 과학자들이 원인 규명을 명확히 해주고 있지만 말이야

어쩌면 바람은, 특히 날씨 전체는 지구의 감정일지도 모르지, 생태계적 반응이겠지만 그런 낭만 아닌 낭만적이지 못한 엉뚱한 생각도 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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