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엔 크고 작은 커피숍이 너무도 많아.
20대 초반시절.
지금처럼 커피 프랜차이즈가 많아지기 이전에는 로스팅된 원두커피를 파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때는 스타벅스도 거의 없던 시절이라 나의 커피 사랑은 던킨 도넛에서 시작되었다.
TV에선 하이틴 스타였던 이병헌이 도넛을 커피에 살짝 담가 큰 입으로 먹음직스럽게 베어 물며 커피에 빠진 도넛을 광고했다.
던킨 도넛에서 맛보았던 아메리카노는 그 시절 커피숍에서 먹던 것들과는 다른 풍미를 내게 안겨주었다.
그 진한 향과 맛은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곧바로 나는 던킨에서 원두와 커피 프레스를 구입해 집에서도 그 맛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크리스피도넛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나에게 커피의 맛을 일깨워준 던킨 도넛에겐 미안하지만 달콤한 크리스피 도넛은 던킨 도넛을 배신하게 만들 만큼 달콤했다. 또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시절 크리스피 도넛 매장의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오면 막 나온 도넛 하나가 무료였다. 하지만 공짜 도넛은 커피를 한잔이라도 먹는 이들에게만 제공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마저도 없어졌다. 이렇게 나의 커피 사랑은 도넛과 함께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 프랜차이즈가 늘어나고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내려주는 크고 작은 카페들이 생기면서 커피는 물보다 많이 마시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20년 넘게 사랑해 온 커피는 나에게 위장 장애라는 아픔을 안겨주었다.
잦은 속 쓰림과 소화불량, 잠을 설치게 만드는 위염에 시달렸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커피를 끊으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중독이 이런 건가... 커피를 마시고 있지 않아도 자꾸만 코끝에 맴도는 커피 향이 생각이 나서 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아픈 위를 부여잡고 나름의 처방으로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다가 좀 나아지면 다시 카페인 커피를 마시기를 반복하며 홀로 위염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