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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Aug 22. 2023

어설픈 식집사

초록이가 좋아서.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꽃도 식물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식집사가 되었다.

나는 흔히 키우기 쉽다는 초보급 식물들도 빠르게 죽여버리는 그야말로 타고난 똥손이었다.

식물은 나랑 안 맞는구나 싶어 포기했다가도 봄만 되면 초록초록한 아이들을 집에 데려오고 싶어 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우리 집 거실 창가엔 크고 작은 식물들이 제법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설프지만 4년째 식집사를 이어가고 있다.

식물을 고를 때 나의 기준은 단순했다.

"이거 잘 안 죽나요? 물 자주 줘야 하나요?"

예쁘고 뭐고 일단은 나의 소홀한 관리에도 생명력이 긴 아이들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가늘고 여리여리 하면서 아기자기한 화분과는 거리가 먼 어르신들이 키울법한 행운목이나 뱅갈 고무나무 같은 크고 생명력이 긴 아이들 위주로 집 안에 들여놓았다.

이번엔 다행히 잘 자라주는 녀석들 덕분에 자신감이 붙어 화분을 하나씩 더 늘려갔다.

' 나 똥손은 아닌가 봐...'

사실은 내가 똥손이 아닌 게 아니라 나의 세심한 관리 없이도 녀석들이 꿋꿋이 잘 자라준거였다.

그런 시골 대형견 같은 아이들을 키우다가 얼마 전 지인에게 종지만한 팟에 작고 여린 미용이 잘된 예쁜 애완견 같은 식물들을 선물 받았다. 그 아이들의 이름은 너무 길어 외우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마치 루이윌리암~스세바스찬 주니어 3세 같은 느낌이랄까. 그에 비해 우리 집 행운목과 고무나무는 누렁이 바둑이 같은 순박한 시고르자브종 느낌이었다.

확실히 이 작은 팟의 초록이들은 너무 사랑스럽고 자주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냥 하나의 오브제가 아닌 반려 식물의 느낌을 확실하게 주었다.

식집사 4년차에 또 다른 세상을 만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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