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건 아마 Sep 24. 2024

몸과 정신의 건강백서

1. 내 정체성 규정하기  (유연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는 뚝, 부러진다)

나의 거진 10년 간의 다이어트와 (몸과 마음의)건강, 그 두 가지가 함께 갈 수 있도록 그 중간 지점 어디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으려 했던 여정을 세세하게 다뤄보고자 한다.


오늘의 주제는, 나의 정체성 규정하기다.


정체성 규정에 앞서, 나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던 완벽주의 성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정체성을 규정해오던 것은 바로 완벽주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툭 치면 다이어트의 주제로 1시간을 내리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이 주제에 대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깊이 고민해왔다. 다이어트라는 단순한 단어 안에는 신체 건강도, 특히 여성이라면 여성 질환도, 정신 건강도 함께 들어있다. 아무것도 다른 영역과 떨어트려서 생각될 수 없다. 다이어트, 그리고 몸과 마음의 건강에 가장 나쁜 습관은 무엇일까? 정제 탄수화물? 디저트? 안 좋은 자세? 게으름? 


전부 틀렸다. 바로 완벽주의 습관이다. 특히 다이어트의 여정에서는 이 놈의 완벽주의 성향이야말로 단단히 뜯어 고치지 않으면, 내가 해결하고 싶었던 눈에 보이는 문제, 거울 앞에 섰을 때 보이는 나의 군살들이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깊은 나의 내면의 문제들까지 끌고 들어와 거대한 파도처럼 어느 순간 무자비하게 나를 덮치고 산산조각 내버리고 만다.


완벽하게 무언가를 끝내고 싶어하는 나의 성향은 내 삶의 모든 곳에 침투해서 나의 삶의 질을 항상 급하게 떨어트렸다. 공부, 시험, 정리 정돈, 폭식, 스마트폰 중독, 알코올 중독. 항상 나의 하루는 엄청 뿌듯한 하루였거나, 혹은 완전히 망해버린 하루였다. 그 중간은 없었다. 나의 공부 노트도 완전히 잘 정리된 노트이거나, 그냥 라면 받침대였다. 그래서 나의 정체성은 항상 완벽주의자였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이렇게 생각했다.


'A 를 이루기 위해서 a b c 를 하고 d e f 를 참아야 해.'


무언가를 '해야 하고', 또 동시에 다른 어떤 것들은 '참아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해야 하는 것을 하지 못했거나 참아야 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했을 때의 나를 엄청나게 질책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이런 성향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20대의 끝을 달려가는 지금, 나는 이제야 완벽주의에서 천천히 벗어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 시작은 나를 다르게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간. 완벽해야만 하는 인간. 그렇지만 완벽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내가 상상하는 대로 좋은, Best의 선택지일까? 나의 2n년간의 경험이 말해준 것은, 완벽하다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완벽하면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다. 거기서 인생은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완벽은 지상 세계에 없는 관념에 불과하기에, 그것을 쫓는 것은 불행의 구렁텅이로 나를 밀어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완벽은 좋은 게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 착각하며 평생을 쫓아왔다.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좋다. 유연하게 발전할 수 있으니까. 닫힌 가능성이 아닌, 열린 가능성을 무한하게 지닌 인간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월플라워에서 아직도 계속 생각 나는 대사가 있다. 



And in this moment, I swear, we are infinite.

완벽한 존재는 무한할 수 없다. 과거는 이미 끝나버려서 유한하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유한하다. 하지만 현재는 무한하다. 나는 현재,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끝도 없는 불안이 잠재워지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이 불안은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불안이 나쁜 걸까? 글쎄, 아마도 꿈꾸고 도전하는 이상, 나는 계속해서 불안할 것이다. 난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니까.


이 사실을 죽도록 받아들이기 싫었던 나는 결국 불안도, 불완전함도, 받아들이는 순간 나의 일부가 됨을 느낀다. 생각보다 그리 무섭지 않다. 그리고 이 사소한 자기 수용에서 모든 화해가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비로소 내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다. 조금 많이 먹었더라도 나를 자책하지 않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더 먹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에서, 더부룩할 정도로 먹지 않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단순히 아름다워지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불완전한 내가 좋다. 그래서 다이어트, 별 거 아니다. 살이라는 것도 별 거 아니다. 내가 빼고 싶다면, 나는 뺄 수 있다. 


이러한 (자기) 효능감과 (자기) 통제감은 결국 불완전한 나를 수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완벽주의의 가장 무서운 점은, 내가 설정한 포인트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순간,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거대한 불안에 잠식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허상이다. 나는 나를 통제할 수 있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먹지 않을 수 있고, 원하면 먹을 수 있다. 완벽한 계획에서 엇나가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잠시 내 몸과 마음이 변한 것 뿐이다. 


이런 마음은 내가 꾸준히 달리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시험이야말로 완벽주의자인 나와 싸우는 길고 긴 여정이니까. (이 주제로도 나중에 글을 써보려고 한다.)


가장 빠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길(완벽하게 모든 것을 끝마치는 행위)이, 사실은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일 수 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행하라. 그리고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두렵더라도 한 번 해보면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글이 이 세상의 모든 완벽주의 다이어터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다낭성난소 증후군은 나의 애증의 친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