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빠는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만 시키는 걸 부끄럽게 생각했다. 중국집에 밥을 먹으러 갔으면, 요리 하나 정도는 시켜야 가게에 손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가게 사장님을 위해 요리를 주문했다. 둘이 가서 음식이 남을게 뻔한데도 그랬다. 엄마는 남에게 빚지는 걸 싫어했다. 상대방이 1 어치의 호의를 베풀면, 1.2 정도는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1의 호의를 베풀며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일본의 스미마셍 문화를 보며 우리 가족이 일본에서 살았으면 참 잘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남의 눈치를 보는 성격은 회사 입사 후에 더 심화되었다. 직무의 특성도 있겠지만, 남의 기분이 어떻고 남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나에게 중요했다. 지난한 신입 시절을 거치며 '직장인' 능력치가 업그레이드되었고, 기본적인 비즈니스 에티켓들을 숙지하게 됐다. 가령, 식사 자리에 가서 수저 세팅을 먼저 한다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이 내릴 때까지 열림 버튼을 눌러준 후 나중에 내린다거나, 여러 명이서 자동차를 탈 때 상석이 어디인지 인지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잘 숙지하고 행동한 덕분에 나는 선배들로부터 "너는 요즘 애들답지 않다"라는 어딘가 기분이 애매한 칭찬을 들을 수 있었고, 회사의 막내로서 잘 적응해 나갔다.
인력 충원이 느린 탓에 나는 입사 6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막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올해부터 계약직 사원 한 명을 후배로 받게 되었다. 그녀는 신문 기사에서 묘사하고 있는 Z세대의 모습 그대로 남 눈치를 보지 않고 본인의 편의와 행복을 가장 우선시하는 듯했다.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맑은 눈의 광인 캐릭터가 하이퍼리얼리즘이었구나 싶었다.
식사 자리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자동차에서도 그녀는 남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막내를 벗어났지만 여전히 내가 막내처럼 보였다. 처음 한두 번은 그래 이런 게 뭣이 중하겠어라는 생각이었는데, 반복될수록 슬슬 짜증이 났다. 왜 항상 내가 이걸 다 해야 해? 너는 왜 아무것도 안 해?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싫어졌다. 수저를 놓으며, 엘리베이터를 잡아두며, 자동차 가운데 자리에 낑겨앉으며 나는 '막내니까 내가 해야지'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막내가 들어왔을 때 나처럼 행동하지 않는 게 어딘가 억울했다. 그리고 이 억울함이 꼰대가 되기 위한 자격요건을 충족시킨 것 같았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건 내 성격이다. 아무도 나에게 그래야 된다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 편하자고 남 눈치를 보는 것이다. 후배가 나와 같은 성격이 아니라고 해서 미워하는 건 꼰대다. 그게 아니라면 같은 잣대를 선배한테도 들이댔어야지. 선배한테는 찍소리 못하면서 후배한테 불만을 품는 모습은 멋없다. 젊은 꼰머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