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민지가 아닌데 자꾸만

by 베토디

어린 시절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소심하고 여렸다. 사실 지금도 소심하고 여리지만 사회의 기준에 맞춰 나를 가공한 것 같다.


학원 봉고를 탔는데, 봉고 아저씨가 ”민지야, ㅇㅇ아파트까지 가면 되지?" 라고 말을 걸었다. 봉고에는 나와 아저씨 둘 밖에 없었다. 내 이름은 민지가 아니었지만,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거는 걸 알았고 나는 ”네, 아저씨“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에도 봉고 아저씨는 나를 계속 민지라고 불렀고, 나는 아저씨가 말을 걸어올 때마다 대답했다. 처음 몇 번은 ‘이 아저씨를 몇 번이나 보겠어' 하는 마음에서 그랬고, 그 이후부터는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지금 와서 내가 민지가 아니라고 얘기하면 아저씨가 얼마나 머쓱할까 싶어, 그리고 내가 얼마나 이상해 보일까 싶어 사실을 꽁꽁 숨겼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학원 선생님이 나에게 숙제를 전해주러 봉고차에 와서 내 이름을 발설하는 바람에(혹은 덕분에) 내가 민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까발려졌다.


봉고 아저씨는 멋쩍어하며 내게 그럼 진작 말을 하지 그랬냐고 했고, 나도 우물쭈물 개미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말을 했던 것 같다.


서른이 넘은 지금, 일을 하다가 이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 같이 일하는 협력회사 사람이 있는데 첫 만남에서부터 나를 ‘매니저님’이라고 불렀다. 우리 회사에서 쓰는 호칭이 따로 있는데 어차피 회사마다 호칭 체계가 다르다고 생각해 굳이 그 호칭으로 정정해주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2회, 3회 차 미팅에서도 나는 ‘매니저님’으로 불리었고 몇 개월이 흐른 지금 ”나는 사실 매니저가 아니다"라고 고백하기가 굉장히 뻘쭘한 상황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 나를 매니저라고 부를 때, 나를 민지라고 부를 때 정정해 줄걸. 나를 가공했다고 했지만 사실 지금의 나는 봉고차를 타던 어린 시절의 나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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