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과 조언의 차이는 한 끗 차이다. 아무리 좋게 잘 말한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오지랖이자 잔소리일 것이다.
아직 경험이 모자라서 그런지 그 차이를 변별할 능력은 내겐 아직 없다. 그래서 나는 그냥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쓰면 좋은 점은 추상적인 상황과 개념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명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머릿속에 있을 때는 분명 내 잘못이 전혀 없었는데 막상 글로 표현해 보니 개선점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서 성찰하기 좋다.
우리 회사에 02년생 신입 직원이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우리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 후 한 달이 지났을 즈음 나와 함께 외부 출장을 갔다. 해외 바이어를 데리고 거래처 방문을 위한 출장이었다. 나는 운전을 했고, 신입은 조수석에 앉았다. 그들은 중요한 손님이라 내부적으로 최대한 편의를 봐주고, 출발과 도착 상황을 잘 공유해 응대가 잘 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오더가 있었다. 나는 운전을 담당했기에 신입 직원에게 출발, 도착 보고와 거래처에 도착 10~15분 전 미리 알려줄 수 있도록 업무를 분담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 신입은 한번 말하면 꼭 까먹곤 했고, 두 번 세 번 말해야 하곤 했다. "OO 씨 출발 보고했어요?", "다 와 가는데 거래처에 알려줬어요?", "도착했다고 말했어요?" 확인을 위해 한 번 더 말했을 때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 맞다!' 하며 그제야 하곤 했다. 출장 첫날이고, 아직 잘 모르는 신입이기에 내가 더 잘 알려주고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출장 날, 첫째 날과 똑같은 역할 분담을 했다. 어제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을까 확인하기 위해 "OO 씨 뭐 해야 하는지 알죠?" 물어봤다. 놀랍게도 잘 모르고 있길래 다시 한번 차근차근 알려주었고, 이번엔 그 출발과 도착, 거래처에게 미리 알려줘야 하는 이유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보고는 내부적으로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의미, 그리고 거래처가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배려라고 말해주었다. 출발 보고는 잘 되었다. 하지만 거래처에 미리 알려주는 것과 도착 보고는 또 놓쳤다. 그리고 그 와중 임원이 계신 단톡방에서 출발 보고 후 임원의 답장에 '넵 ㅋㅋㅋ'라며 해맑은 태도를 보였다.
나는 소위 젊은 꼰대다.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수는 어디까지나 1~2번까지 인정될 뿐, 그 이상은 분명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내게 가장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태도다. 작은 실수더라도 그 실수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태도가 나한텐 중요하다. 이 신입의 태도를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사했기 때문에 아직 잘 모르는 게 당연하고 그만큼 내가 꼼꼼하게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최대한 담지 않고 조곤조곤 내가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해 주었다.
"OO 씨, 어제오늘 제가 OO 씨에게 맡긴 일이 뭐였죠?"
"출발, 도착 보고요.."
"네, 그리고 거래처에도 도착 10분~15분 전 알려주는 거였죠. 그거 잘 됐다고 생각해요?"
"아니요.."
"맞아요. 잘 안 됐어요. OO 씨가 먼저 하지 않고 꼭 제가 한 번 더 하라고 말했을 때 그제야 했죠. 저는 한두 번은 까먹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
"그리고 임원이 계신 단톡방에서 OO 씨의 행동 기억해요?"
"어떤 거요?"
"임원 분의 답변에 '네 ㅋㅋㅋㅋ'라고 했던 거요."
"아! 네.."
"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입사해서 그런 거 같은데 여기는 회사예요. 친구들 같이 편한 사람들과 일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거예요. 운동선수 같은 사람들만 프로가 아니라 우리도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거기 때문에 우리도 프로예요. 받은 만큼 해야 할 일을 해야 해요. OO 씨가 업무를 잘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행동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기엔 OO 씨는 지금 학생에 더 가까운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신입은 눈물이 터졌다. 나는 당황했지만 진정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왜 눈물이 났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학생 같다.'는 내 말이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또 자신에게 그런 부정적인 피드백을 준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충격을 줄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말하고 그날 대화는 끝이 났다.
그 후 또 다른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나는 그 신입에게는 입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결론에 종지부를 찍은 건 끝난 줄 알았던 그 출장 때의 일이었다. 나는 그 에피소드는 그날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출장에서 내가 OO 씨 혼냈다는 말을 들었고, 그리고 그 뉘앙스로 비추어 보건대 그 신입은 날 젊은 꼰대로 생각하는 그렇게 받아들인 거 같았다. 그리고 한 임원분께 "OO 씨 그냥 신경 쓰지 마. 너만 이상한 사람 될 수 있어."라는 조언을 받았다.
나는 그 신입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할 때 감정을 담지 않는 편이다. 감정을 담으면 내 의도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일도 누군가를 혼낸 게 아니라 필요한 피드백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특히 그 신입에게는 조곤조곤하게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하곤 했다.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그렇게 하기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OO의 이유로 더 적절할 거 같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신입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거 같다.
이 일화를 머릿속으로만 담고 있었을 때는 답답함이 컸다. 내 잘못은 크게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고, 그저 답답함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글로 표현하니 내 잘못이 눈에 보인다.
나는 평소 HR담당자로서 적절한 피드백 문화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피드백 문화에 관한 아티클을 구성원에게 공유하거나 우리의 성장을 위해 서로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말한다. 피드백에도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SBI'다.
구글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SBI는 상황(S, Situation), 행동(B, Behavior), 영향(I, Impact)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으로 인해, '일'에 관련해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서술하는 것이다. 위 사례를 SBI 피드백 방법을 적용하여 회고했을 때, 개선이 필요한 점은 "나의 추측"을 상대방에게 전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에 가깝다 하더라도 '학생 같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됐다. SBI를 적용한 적절한 피드백은 다음과 같다.
출발과 도착할 때(S),
OO 씨가 보고를 제대로 안 해서(B)
업무 분담한 대로 일처리가 잘 안 됐어요(I)
그리고 신입에게 다음에 할 적절한 행동지침까지 피드백해 줄 수 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까먹지 말고 업무분담대로 철저하게 일처리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즉, 개인의 추측, 생각 등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 피드백보다 드러난 객관적 사실을 서술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성격과 가치관 등 추상적 개념이 아닌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SBI 피드백의 핵심이다.
회사생활을 할 때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정적 상황들을 겪곤 한다. 때론 답답하기도 하고, 때론 화가 나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SBI를 떠올린다. 지금 내가 겪는 부정적 감정(상황)들이 정말로 상대방의 행동으로 인해 '일'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기준, 내 생각에 맞지 않아서 그 사람을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