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물었다.
당신이 가진 단점은 무엇인가요?
나는 말했다.
기억입니다.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억은 믿기 어렵다. 왜곡되고, 잊히고, 바뀌기 쉽다. 이미 지나간 장면들을 흐릿하게 되살리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오래 붙잡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한다. 다시는 살 수 없는 곳을, 다시 가보려 한다.
그러나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다. 등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통해 살아 있다.
시간은 단순한 선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시간이 뒤에 남는 구조가 아니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공간과 함께 짜여진 하나의 결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다만 우리의 의식만이 그 틈을 지나가며, 한 장면씩 비춘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 과거는 끊임없이 현재를 통해 우리 안에 머문다. 내가 말하는 방식, 망설이는 습관, 무심코 바라보는 사물들, 모두 그때의 시간들이 지금을 만들고 있다. 과거를 기억해야만 아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과거가 어떻게 살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현재는 중요하다.
아니, 가장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때, 과거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영향력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그 순간이 비워져 있을 때, 과거도 함께 무의미해진다. 과거는 우리를 형성하지만, 현재만이 우리가 그것을 다시 형성할 수 있는 자리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과거를 어떻게 남기느냐를 결정한다.
결국, 시간은 붙잡거나 추구할 대상이 아니다. 그 안에 머무는 것이다.
물리학도 말한다. 시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움직임과 중력에 따라 흐름이 달라진다고. 산 위에서는 골짜기보다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 혼자 있을 땐 1초가 길고, 슬픔 속에서는 1년이 사라진다. 우리는 똑같은 시간을 살지 않지만, 그 누구도 한 번밖에 살 수 없다.
그래서 현재에 있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과거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가 지나가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의 행동, 말, 마음을 담아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현재는 시간의 조각 중 하나가 아니라, 시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유일한 자리다. 우리가 그 자리를 온전히 살 때, 후회는 사라진다. 과거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온전히 살아낸 순간은 무언가를 남긴다. 상실이 아니라, 평온이다. 과거는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존중받길 원한다.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지금 이 자리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다시 묻는다면,
이번엔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기억이 아니다. 비어 있는 현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