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

by 현진
이 글은 글쓰기 모임의 과제로 작성되었습니다.
주어진 질문을 바탕으로, 최근의 나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돌아보며 쓴 에세이입니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과학자인가?

회사를 만들었으니 창업가인가?

펀드를 운영했으니 투자자인가?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으니 이제는 홀로 남은 사람인가?


프랑스를 떠나 지낸 시간이 오래되어,

나는 여전히 프랑스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흔들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더 이상 변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선언일까?

아니면 오늘의 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내일 조금 더 깊은 나로 걸어가겠다는 약속일까?


한동안 나는 이 질문들에 답했다고 믿었다.

현재에 머물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며,

매일 조금씩 성장하려는 의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확신은 예상보다 훨씬 부드럽고 흔들리는 것이었다.


왜일까?

나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나를 받아들였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 속에서 그 방법을 배웠다.


떠날 수도 있었던 사람에게서 받은 사랑,

언제든 멀어질 수 있는 존재에게서 느낀 인정은

나를 전혀 다른 길로 이끌었다.

그 사람은 내가 숨기고 싶어 하던 조급함과 미숙함,

그리고 불완전함을 보면서도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존재로 나를 바라보았다.


가장 약해진 순간, 나는 그녀의 눈에서 어떤 빛을 보았다.

숨기고 싶던 모습까지도 품어 주는,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그녀는 나의 영혼을 보고 있었고,

그 모습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불완전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무언가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사랑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지금도 나는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깊이를 이해하고 싶고,

조금 더 정직하게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움직임을

자기 부정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성장은 목표가 아니라

삶의 흐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나를 드러내는 일에

조금 덜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 변화는 글을 쓸 때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쓰면서도

그 미완성을 숨기지 않는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이 내 선택을 대신하지 못하도록

조용히 제자리에 두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마주하는 일은

나의 결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작은 연습이다.

그 연습 속에서 나는

현재라는 좁지만 진실한 공간을 살아간다.


나는 이미 충분한가?

그렇다.

그러나 충분하다는 말이

멈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언제나 지금이고,

지금 내딛는 걸음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만든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걸음의 크기나 속도가 아니라

내가 어떤 방향을 선택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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