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물길에 스며들다

by 현진

삶은 물이다. 물은 흐른다. 때로는 잔잔히, 때로는 격렬하게,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그 물길을 잡을 수도 없고, 거스를 수도 없다. 준비되었는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물은 그저 흐른다.


한때 나는 물길을 이해한다고 믿었다.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면 될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물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물길과 싸우려 했던 나의 힘은 허사였다. 그 싸움은 오히려 나를 지치게 했고, 내가 물길 속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했다.


떠내려가 보기도 했다.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흐르면서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갔다. 물길은 나에게 묻는다. 멈추지도, 떠밀리지도 않으면서 흐름 속에서 깨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은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산을 만나면 그 곁을 흐르고, 돌을 만나면 그 틈을 지나간다. 물은 부드럽지만, 시간이 지나면 돌에 길을 내고 산을 깎는다. 물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흐름에 몸을 맡기되, 그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깊은 물은 모든 것을 품는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실, 아름다움과 고통. 얕은 물에서는 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 얕은 물은 쉽게 흘러가고, 금방 말라버린다. 하지만 깊은 물길은 다르다. 깊은 곳에서는 물살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그 속에서는 가벼운 순간도, 무거운 순간도 온전히 존재한다.


슬픔은 물처럼 흐른다. 처음에는 얕게 스며들다 이내 커다란 물결이 되어 우리를 삼킨다. 견디기 힘들 만큼 거센 파도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우리는 그 물길에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러나 물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차가운 물속에 발을 담그고, 그 슬픔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 속에서 깨달았다. 슬픔은 사랑이 끝났다는 증거가 아니다. 슬픔은 여전히 흐르고 있는 사랑의 흔적이다.


우리는 물이 되어야 한다. 물처럼 부드럽지만 끊임없이 흐르고, 산을 깎아내는 힘을 품어야 한다. 물은 스스로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지나간 자리에는 분명한 흔적이 남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물처럼 살 때, 우리의 삶 또한 세상을 바꾼다. 그것은 거대한 변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흐름은 돌과 산에 새겨져 오래도록 남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멀리 갔는지가 아니다. 얼마나 빠르게 나아갔는지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물처럼 살았는지, 그 흐름 속에서 무엇을 깎아냈는지, 그리고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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