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by 현진

새벽, 고요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커피를 내린다. 손끝에서 갈린 원두는 부드러운 향을 피우고, 손가락으로 다진 가루 위에 물이 천천히 스며들어 커피가 피어난다. 하지만 이 익숙한 의식 속에서도 어딘가 텅 빈 듯한 느낌이 늘 따라다녔다. 모든 것이 완벽히 갖춰졌는데도, 무엇인가 부족했다.


내가 알던 차 문화 속에서는, 물과 잎 그리고 잔이 어우러져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킨다. 차를 따르는 순간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깊이를 담은 예술이었고, 자연과 마음이 조화롭게 이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커피는 달랐다. 맛은 풍부했지만, 그 안에 무언가가 비어 있었다. 원두와 물, 그리고 나 사이에 단절된 틈이 느껴졌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그 잔은 혼이 깃들지 않은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제주 붉은 흙에서 만들어진 옹기를 만났다. 도공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손길은 흙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옹기는 흙과 불, 물이 만나 만들어낸 그릇이었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숨을 쉬며 스스로 살아 있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온전했다.


손에 쥔 그릇은 단순한 그릇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나의 삶처럼 균열 없는 완벽함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는 균형과 조화가 깃들어 있었다. 완벽함은 끝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임을 그릇은 가르쳐 주었다.


그날 이후, 커피를 내리는 순간은 달라졌다. 숨 쉬는 그릇에 따르는 커피는 더 이상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물이 흙을 적시고 불이 형태를 완성하듯, 커피를 내리는 순간마다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 완전한 현재에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삶은 완벽함에 얽매이지도, 불완전함에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우리가 그 리듬 속에서 조화를 찾아가는 여정을 허락한다.


이제 내게 커피 한 잔은 작은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완벽함임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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