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시집갈 때 나는 대학 간다.
3. 34살에 대학을 가기로 결심한 이유
27살이 되던 해,
나는 처음으로 내가 이루고 싶던 꿈에 한 발짝 다가갔다.
면접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합격발표를 들었는데,
너무 신나서 지하철 호차를 계속 돌아다녔다.
출근시간도 퇴근시간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이어서 텅빈 지하철 안을 그렇게 계속 왔다갔다 했다.
도저히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다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했을 때 면접 당일에 합격발표가 난 것부터 이상했지만,
그때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 나는 처음으로 삶의 의미를 찾았다.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태어난 것 같았다.
"해야 하는 시기에 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나중에는 더 늦어져, 학교 한번 생각해 봐."
1년 쫌 안 됐을 때 내가 아직도
가장 존경하고 있는 상사가 말했다.
이미 나는 꿈에 어느 정도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도 있었고, 27살에 학교를 가면 졸업은 30살에 하는 상황에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나는 계약해지를 당했다.
내가 계약연장이 안된 이유는 학력이었다.
도망치듯 그 회사를 나와 1년도 안 되는 짧은 경력으로 이곳저곳 취업시도를 했고,
결국 고생 끝에 한 회사에 계약직으로 붙었다.
급여는 월급이 아닌 주급으로 나왔고,
그 주급도 밀리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 회사를 내 경력이
쌓일 때까지 다닐 생각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그 기쁨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바람 역시 이뤄지지 않았고,
2년을 버틴 그곳에서 역시 계약해지를 당했다.
계약이 연장되지 않은 이유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과
내가 인연이 닿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꿈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무직으로 취업했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는 동안 나는 꽤 자주 자퇴를 하던 그 시간으로 나를 돌려놓는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일이 잘못되거나,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늘 그때 20살의 나를 탓하고 있었다.
내가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거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고, 또 이렇게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지 않았을 텐데 등등의 소위 남 탓 말이다.
25살의 나도 그랬고, 30살의 나도, 늘 20살의 나를 탓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기억 속의 20살의 나는 늘 작아졌다.
작아지지 못해,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인형처럼
생기를 잃었다.
그때의 나는 그 선택이 최선인걸 알고 있음에도
모든 분풀이가 그때 그 시절로 향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계속 정체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과거의 잘못된 순간만을 쫓아
그 과거에 스스로 발목을 묶었다.
내 남은 삶 동안 계속 나는 20살의 나를 탓할 것만 같아서, 이걸 끊어내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탓하는걸 그만하고 싶었다.
34살의 언니인 현재의 내가 20살의 어린 나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사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만 죄책감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년의 내가 20살의 나를 탓하지 않도록
40살인 내가 20살의 나를 탓하지 않도록
이탈한 경로에서 또다시 나만의 길을 찾기로 했다.
그 길이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인 학력을 채우는 것,
20살때의 실수를 현재 34살인 내가
다시 기회로 만들어 가는 것.
이런 이유로 나는 34살에 대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나의 20살을 위로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