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시집갈 때 나는 대학 간다.
9. 이렇게까지 다채로울 수가
3월 2일 목요일
입학식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평일이기도 하고, 월초여서 업무가 많이 몰린탓에
입학식은 참석하지 못했다.
학교도 중요한 만큼 내 학교 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도움을 줄 회사생활도
중요했기에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개강은 3월 4일 토요일이었다.
사실은 토요일 아침까지도
그냥 출근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그때부터 내가 걷는 건지,
구름 위에 떠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설렜다.
마스크를 쓴 사이로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고,
가방에 새로 산 노트북은 잘 있는지 계속 들여다봤다.
미리 학부생들끼리 만들어진
단톡방의 인원은 20명 남짓,
OT때 이후로 한 달 만에 보는 그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질까 하면서,
머릿속에 온갖 키워드들을 생각해내고 있을 무렵,
학교 앞에 도착했다.
오늘을 포함해서 두 번밖에 안 왔지만,
벌써 정이 들어버린 학교였다.
나의 시간표는 4개의 오프라인 강의와
2개의 온라인 강의로 이뤄져 있다.
개강을 한 날 4개의 오프라인 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을 찾아다니고, 그 와중에 OT때 만났다고
그 생경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나마 낯익은 동기들을 발견했다.
같이 점심을 먹고, 같이 전공 수업을 들으러 함께
강의실을 이동했다.
그 와중에 나는 전날 회식으로 인해 몰려오는 피로감에 커피숍을 찾으러 다녔지만
언덕에 위치한 학교 탓에 근처에 커피숍은 아예 없었고, 교내에 있다던 카페는
토요일인 탓에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가 끝내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하나 뽑아 들고,
강의 시간에 늦지 않게 강의실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전공수업의 대부분은 조별과제 수행이었다.
조별 과제를 위해 조원들이 편성됐고,
교수님의 배려로 그나마 나이또래가 비슷한
조원들로 편성이 되었다.
조원들과는 처음부터 이야기가 잘 통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무임승차를 하려는 듯한
친구는 보이지 않았고,
저마다 각각 맞는 아이디어와 제안들을 제시했다.
토의는 순조로웠다.
강의는 첫 날인만큼 조금 빨리 끝났다.
새로 산 노트북은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에
꺼내보지도 못했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어갈 때는
허벅지부터 종아리 발 앞쪽까지 모든 신경을 다 쏟았다.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집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방향을 틀었다.
길을 걷다가 중간에 보이는 문구점을 들어가
필요한 펜과 노트를 샀다.
얼마가지 않아 커피숍이 보여, 아까 마시지 못한
얼음이 잔뜩 들어간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핸드폰 캘린더를 열고, 강의 시간표에 맞춰서
캘린더에 표시를 했다.
순식간에 비어있던 캘린더가 학교 일정으로 꽉 채워졌다.
내가 앞으로 만날 오직 나를 위한 시간들.
내가 앞으로 익혀야 할 새로운 지식들.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들.
나의 삶이 이토록 한순간에 다채로워질 수 있는지
참 신기했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무채색이었던 나의 삶이
한단계 확장되기 직전의 순간임을 느꼈고.
오늘 나는 길을 헤매는 순간까지도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