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생각
LA에 미쉐린 가이드가 생기기 전, 자갓 리스트(Zagat list)에 올랐다는 Pizza Mozza에 갔다. 이탈리아와 함께 피자의 양대 성지로 불리는 이곳에서, 뉴욕 최초의 피자집 롬바르디와 길가에서 파는 2달러짜리 조각 피자를 먹은 후로는 미국에서의 45일 중 세 번째 피자였다.
쨍쨍한 할리우드를 지나 도착한 식당은 크지 않았고, 혼자였던 나는 네모 반듯한 바 테이블에 앉았다. 앞에서는 하얀 셔츠에 숏컷을 한 흑인이 나를 담당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천으로 컵의 물기를 닦으며 나의 옷차림에 관한 편안하고 가벼운 칭찬으로 환대해주었다. 나는 간단히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첫 번째로 나온 모짜 카프레제는 가지를 치지 않은 아담한 방울토마토와 파릇파릇한 바질 잎, 무겁지 않은 올리브유, 그리고 무엇보다 적당히 부서지는 치즈가 일품이었다. 토마토의 양이 적은 편이라 치즈가 많이 남았다. 덕분에 모짜렐라를 오롯이 맛볼 수 있었는데, 살짝 뿌려진 소금이 그 풍미를 더욱 극대화시켜 에피타이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카프레제를 그다지 많이 맛본 건 아니었지만 경험한 것 중 손에 꼽을 만큼 맛있었고, 이번 여행에서 기분을 바꿔놓은 요리로는 이 카프레제가 유일했다. 메인이 나오기도 전에 이토록 만족스러운 음식을 넘기면서 세계 곳곳의 요리를 연구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쾌한 분위기와 음식을 차용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 상상만으로도 활기차다.
메인으로는 인기 메뉴 중 하나라는 펜넬 소시지 피자를 시켰다. 펜넬(Fennel)은 '회향'이라는 미나리과 식물의 생경한 재료였는데, 왠지 모르게 모험해보고 싶었다. 곧 이어 나온 이 피자는 짭짤하고 쫄깃한 도우 위에 자색 양파와 다진 고기도 함께 올라가 있어 꽤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전채 요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탓인지 살짝 실망스러웠다. (역시 음식은 안전한 게 최고다.) 그럼에도 이 기분 좋은 경험 속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지만, 꼭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 온 듯 싱그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행과 대화를 하며 음식을 먹었어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대화를 주고받으며 보다 더 넓은 생각을 할 수 있었으려나? 신선한 음식을 꼭꼭 씹다 보니 기분 좋은 생각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