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를 알 수 없다

[감상] 픽사 영화- 엘리멘탈

by 무명

최근 영화 '엘리오'가 나왔다. 최근 애니메이션 부분에서 디즈니가 조금 아쉬운 반면에, 픽사는 그래도 여전히 논란 없이 영화를 만들고 있다. 토이스토리 시리즈, 인사이드 아웃, 라따뚜이, 월-E, 업, 니모를 찾아서, 소울 등 걸출한 작품을 다수 만들어온 픽사 스튜디오이다. 최근에 개봉하는 픽사 영화는 나오는 대로 보고 있다. '엘리오' 역시 개봉해서 보고 왔지만, 이에 대한 감상은 나중으로 하겠다. 왜냐하면, 영화 '엘리멘탈'에 관해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엘리멘탈'은 꽤 좋아한다. 높이 평가한다. 최근에 가장 관심을 가지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인물들간의 관계들을 통해서, 관계에 대한 여러 주제의식을 하나의 이야기로 담아내고 있다. 거기에 엘리멘탈이라는 실존하지 않는 원소들의 세상을 상상하여 세계관을 꾸며둔 그 창의적 상상력을 높이 평가한다. 같은 이유로 영화 '인사이드 아웃'과 '소울' 역시도 좋아한다.


'엘리멘탈'에는 3가지 관계와 그에 따른 3가지 주제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를 천천히 해보고자 한다.


1. 앰버의 부모와 물의 원소 '웨이드'

영화가 가진 가장 크고 뚜렷하게 와닿는 주제의식은 이민자들의 삶이다. 불 원소인 앰버의 부모님은 모종의 이유로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와 물, 불, 흙, 공기가 모여 사는 대도시로 이민을 온다. 그들은 이민 오자마자, 다 무너져 가는 집 하나를 구해서 수리해서 가게로 바꾸고 불의 마을 가꾸어 살며, 앰버를 키운다. 이들의 삶은 이민자들의 삶을 대놓고 은유하고 있는 데, 자신의 고향 파이어랜드에서 조부모에게 절을 하고 떠나온다거나, 푸른 불을 소중히 하는 모습 같은 건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거기에 영화를 보면 앰버가 사는 동네에는 불 원소들만이 살고 있다. 지금 한인 타운이나 차이나 타운 가면, 그곳이 한국이나 중국이 아님에도 한국인과 중국인들만이 모여 살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뒤 늦게 도시로 온 불 원소들은 그 도시에 섞여서 적응하지 못한채, 자신들만의 마을을 형성하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 앰버가 가게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도시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 신비하면서도 낯설어 한다. 그만큼 불 원소들은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자기들끼리 모여서 고립되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앰버는 근처에 흙 원소(나무 원소)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태워버린다. 반대로 쏟아지는 물 원소를 맞아도 안된다. 불인 앰버는 흙과도 물과도 기본적으로는 섞여 지낼 수 없다. 그리고 마을은 그런 불 원소를 배려하고 있지도 않다. 예를 들면, 웨이드와 같이 찍은 사진를 보면, 과도한 광원 노출로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이 장면은 사실 유머러스하다. 상당히 행복감에 젖어있는 시퀀스에서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다. 다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생각을 해보면, 불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노출도 조절을 하면 된다. 다만, 그런 기능을 넣어두지 않았을 뿐이다. 이렇듯, 기본적으로 유일하게 '불'원소만 그 마을에서 지내기가 불편하다. (물론 대놓고, 어렸을 때 앰버와 아버지가, 센트럴 역에서 비비스테리아 나무를 보려고 했지만 출입거부 당한 장면도 나온다. 대놓고 차별당하는 장면이다.)

이런 모습이 이민자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 앰버의 부모는 이런 불편함을, 우리들은 그들과 다르다는 차이에서 오는 차별아닌 차별에서 오는 불편함을 이곳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몸소 겪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웨이드라는 물 원소가 딸의 연인으로 나타나는 것. 물 원소가 자신들의 마을에 오는 것을 불편하게 느낀다. 차이에서 오는 불편과 그 고통을 딸이 감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근엄한 표정으로 앰버의 아버지는, 자신들이 만들어 파는 간식을 웨이드에게 먹어보라고 하는 장면도 나온다. (불 원소가 손으로 꽉 누르면 만들어지는 석탄 간식이다.) 간단하게 식습관에서 부터 차이가 드러난다는 걸 보여주면서, 나름대로 웨이드를 테스트하는 장면이다. 배려심 깊고 선한 웨이드 답게 잘 참아가면서 먹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웨이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의 본질적 차이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앰버의 부모가 타 원소들을 대하는 태도나, 불 원소들이 어떻게 지내는 지를 보면서, 관객은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서 한편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면, 앰버의 부모는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은퇴하는 데, 그 장면에서 보면 해당 가게에 다른 원소들도 손님으로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사건이 결말에서 해결되면서, 혹은 앰버와 웨이드의 관계를 시작으로, 불 원소들의 마을에도 타 원소들이 오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고, 결국 이들이 섞여 산다. 이민자들의 고립된 상태가 해소되고 엘리멘탈 마을이 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음 보여준다.


2. 불 원소 '앰버'와 물 원소 '웨이드'

앰버와 웨이드는 우연하게 마주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웨이드의 섬세함과 감수성, 선함에 앰버는 애정을 느끼고, 앰버의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적극적인 활동성에 웨이드는 애정을 느낀다. 그렇게 그들은 연인이 된다. 일련의 행복한 데이트의 나날이 지나가면서, 이 둘은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가 계속해서 드러난다.

둘은 환경부터 성격이 전부 다르다.

앰버는 이민자 2세이고, 가족도 부모님 두분이 전부이지만, 웨이드는 아니다. 웨이드는 대도시 중심에 사는 아주 부유한 집안의 자재이다. 고층 빌딩에 살고 경비원도 따로 있다. 가족은 부모뿐 아니라 친척들까지 해서 대가족이다. 웨이드의 집안은 인맥도 뛰어나다. 앰버와의 자리에서 유리병을 만드는 걸 보더니, 아는 사람이 유리 공장이 있으니 소개시켜주겠다니. 엘리멘탈 도시에서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만든 귀족들의 인맥 같이 느껴졌다. 그 배경이 뒷받침되서, 앰버는 부모의 가게일만을 평생 배워왔지만, 웨이드는 공무원이나 그 유사 직업을 여러군대를 전전해가면서 살아왔다. 직업에 대해 강한 열정이나 노력도 없고 특별한 재능도 보이지 않음에도 웨이드는 문제 없었다. 쉬이 말해 웨이드는 상당한 상류층 집안이고, 앰버는 하류층 집안이다.

이 둘은 성격도 차이가 크다. 웨이드는 너무 할 정도로 낙천적이고 감상적이다. 눈물이 너무 많고 이상적인 말만 한다. 이런 웨이드가 앰버는 이해되지 않고, 이런 차이가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앰버가 웨이드의 집에 갔다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 웨이드의 어머니가 앰버에게 일자리를 제안한 것에 대해서 앰버는 화를 낸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앰버는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자기는 부모님의 가게를 물려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이후에 비비스테리아 꽃을 보여주고, 첫 포옹을 한 다음에 갑자기 떠나가는 앰버를 쫒아가서는, 웨이드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가게를 물려받기 전날이다.

"기다려봐! 그건 싫다면서, 네가 직접 그렇게 말했잖아! 네 인생에서 네가 원하는 일을 할 기회를 얻었잖아. 뭐가 문젠데? 그냥 네 아빠한테 네가 느끼는 그대로 말해봐! 중요한 일이니까 네 아빠도 이해해주실 거야. 이해를 못 하겠어."

앰버는 이런 웨이드에 말에 불같이 화를 내고, 이게 우리가 이어질 수 없는 이유라면서 끝났다고 말하곤 집으로 돌아간다. 웨이드의 말은 너무나도 이상적이다. 그냥 말만 들으면 맞는 말이다. 너무나도 옳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중요한 일이니까 말해라! 다만, 앰버가 느끼기엔 그저 그건 웨이드가 여유롭고 부유해서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웨이드는 순수한 의도였다. 순수하게 옳은 말을 했을 뿐이지만, 앰버를 이해하는 건 아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웨이드는 분명 순수하고 진심을 담은 말이었지만, 앰버는 그 말에 일련에 불쾌함을 느끼게 된다. 환경적 차이와 그로 부터 오는 성격적 차이들은 그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이 서로를 상당히 아끼고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들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리고 분명 처음에 서로는 다름에 끌렸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걸 보고는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종미에 다달아서는 그 다름이 오해를 만들고, 불이해를 만들었다.

사랑은 두개의 세계가 만나 하나의 세계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했다. 꼭 앰버와 웨이드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은 다르다. 분명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앰버와 웨이드는 분명 그들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대화를 하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갈등을 겪고 문제가 발생한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렇게 이해하여 사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3. 불 원소 '앰버'와 앰버의 부모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이들의 관계이다. 한국인은 가장 중요한 걸 마지막에 쓴다 했는가. 앰버와 그 부모의 관계가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들의 관계는 말하자면, 서로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사랑한다. 앰버와 웨이드의 연인간 사랑과는 한 차원 더 높은 사랑이라 생각한다. 앰버가 커온 그 긴 시간 만큼이나 깊고 넓은 사랑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에 갈등이 발생한다.

부모님은 가게를 가꾸고 일궈오는 평생을 바쳤다. 그 가게에서 앰버를 길렀고, 가게가 그들이 가진 전부이다. 앰버는 그런 부모님의 삶을 보면서 자랐다. 모두 보았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에게 말해온 기대를 알고 있다. 그래서 그 기대에 부합해야만 한다고 여긴다. 그렇게 자신을 세뇌시킨다. 가게 운영하는게 하고 싶다라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하지만 영화 막바지 드러나지만, 부모님은 사실 그렇지 않다. 앰버가 물려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건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가게가 아니라, 앰버니까. 다만, 앰버가 물려받으려 하는 거 같으니 기대를 했다.

이들 간의 오해는 서로가 너무나도 소중해서, 그래서 오히려 발생했다. 어려운 문제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고 했던 어떤 초코과자의 광고카피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너무나 깊고 넓은 사랑의 관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런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랑일지라도, 여전히 사람은 타인을 알 수 없다. 오히려 그런 깊은 사랑이라서 더욱 알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린 소중한 사람일수록, 말을 해야 한다. 웨이드가 했던 아주 정석적인 말처럼, 그냥 느끼는 대로 말해봐.


최근 느끼는 건, 부모의 사랑처럼 너무 크고 깊은 사랑은 때론 부담이 된다. 앰버는 기대에 부응하려는 부담을 짊어진거다. 크고 깊은 만큼 이는 무겁다. 무겁고 강렬해서 부담스럽고, 부담스러우니 고통스럽다. 그렇게 앰버는 고통을 겪었다. 웨이드와의 사랑을 하지 못할 정도로.

이와 유사한 주제의 소설을 읽은 적있다. 최은영 작가의 단편 소설 '상우' 였다. 너무나도 소중하게 가족을 대한 나머지, 그 가족이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게 된다. 사랑이 무거워지고, 부담이 되고, 고통이 된다.

우린 무조건적인 사랑, 특히 부모의 그런 한도없는 사랑을 항상 신성시 해왔다. 물론 틀렸다는 건 아니다. 신성하고 소중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는 거다. 그게 오히려 압박이 될 수도 있음을 사랑을 주는 사람도 잠깐 멈춰서서 고려해봐야 한다.



4. 차이

위의 세가지 주제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바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르다. 아무리 가깝더라도 그렇다. 물론, 1번처럼 이민자와 원주민의 차이는 너무나 극명하고 서로 간의 애정도 없으면, 차별과 괴롭힘으로 이어지게 되고, 2,3번 처럼 서로 간의 애정이 있다면 대화는 할 수 있겠다. 다만, 그럼에도 우린 서로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서로를 사랑한다는 그런 감성적인 이야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대화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당연히 다르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방인- 알베르 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