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일어난, 섬이 아닌 사람이야기

[리뷰] 개브리얼 제빈- 섬에 있는 서점.

by 무명
"앨리스 섬의 유일무이한 순문학 공급처, 1999년 개점.
인간은 섬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상이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책은 앨리스 섬의 유일한 서점인 아일랜드 서점으로 출판사 직원인 어밀리아가 방문하는 걸로 시작한다. 서점 문에 걸린 글귀가 바로 "인간은 섬이 아니다"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힘겨워한다. 그러면서도 또 인간 덕분에 삶을 다시 살아가기도 하는 존재다. 조그만 섬의 유일한 서점이라는 배경부터 이미 어떤 이미지가 상상된다. 서점은 어떤 곳인가. 적어도 내게 서점은 말 없는 친구 같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가도 난 침대에 누워있고 친구는 컴퓨터 하고 있을 뿐, 별로 대화는 하지 않는 그런 친구.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가진 존재.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 서점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다소 섬 같기도 하다. 독서란 취미는 점차 희귀해지고 있고 감명 깊게 읽은 것에 대해서, 들어줄 만한 지인은 주변에서 발견하기 힘들다. 이에 연결돼서 서점이란 장소는 누군가와 같이 가는 게 아닌, 혼자서 고요하게 존재하는 그런 장소인 거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섬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아일랜드 서점은 섬일까. 아니면 조용한 친구일까.


서점의 문구로부터 오는 어떤 고지식함이 느껴진다. 어밀리아와의 첫 만남에서 에이제이는 상당히 까칠하다. 문 앞에 걸어둔 글귀가 무색한 태도다. 어밀리아가 미리 신간 목록에 관한 이메일을 보내고 약속을 잡고 온 것임에도 에이제이는 약속의 존부자체를 모르고 있다.

어밀리아와 에이제이의 첫 만남에서 에이제이는 누가 봐도 섬인 상태이다. 그다음 장에서 에이제이는 자신의 아주 까다로운 책 취향을 말한다.

"싫어하는 걸 말하면 어떨까요? 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종말물, 죽은 사람이 화자거나 마술적 리얼리즘을 싫어합니다. 딴에는 기발하답시고 쓴 실험적 기법 이것저것 번잡하게 사용한 서체, 없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삽화 등 괜히 요란 떠는 짓에는 근본적으로 끌리지 않습니다. 홀로코스트나 뭐 그런 전 세계적 규모의 심각한 비극에 관한 소설은 다 마뜩잖더군. 부탁인데 논픽션만 가져와요. 문학적 탐정소설이니 문학적 판타지니 하는 장르 잡탕도 싫습니다."

서점 주인이라기엔 너무 고지식하다. 장사는 하는 건지 의문스러울 정도의 까칠함이다. 거기에 출판사에서 온 영업사원에게 하기에도 적절한 말로 보이진 않는다.


곧이어 이런 에이제이의 태도의 이유를 알게 되는데, 서점을 같이 운영하던 아내를 사고로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큰 상실을 겪은 사람이 보이는 세상에 대한 냉소는 그 후에도 계속 나타난다. 그런 피크리에게 두 가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게 되는데, 하나는 자기의 노후대비로 가지고 있던 에드거 앨런 포의 희귀본 시집인 '태멀레인'을 도둑맞고,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누군가가 서점 앞에 두 돌 된 여자아이를 버리고 가는 일이다.

'태멀레인'을 도둑맞은 뒤로, 동네 사람들은 서점을 들린다. 일종의 위로인 셈이다.(가십거리로서 온 거기도 하다.) 이건 아내인 니콜이 죽었을 때랑은 정반대의 일이었다. 아내가 죽었을 때는 상실에 대해 너무 '심하게' 애석함을 표한 결과로 매출이 최저를 찍게 되었다고 에이제이는 평가한다.

죽음이 관계를 차단하는 상실인 반면 도난은 관계를 이어주는 견딜 만한 상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에이제이는 이 섬사람이 아니다. 앨리스 섬은 아내인 니콜의 고향이다. 이들은 학문을 하는 과정에서 만났고 서점을 운영하자는 아내의 제안에 따라, 섬에 하나뿐인 서점이 만들어졌다. 에이제이 피크리는 그런 아내를 잃으면서 '섬사람들과 니콜을 잃었다는 상실감 말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게 된 것'이라며 그들과의 관계를 칭한다.

물론 에이제이는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두 상실에 의한 에이제이의 태도 변화 자체가 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니콜의 상실은 우리가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에이제이를 상당히 까칠하면서 냉소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에이제이에게 삶의 어떤 의욕을 망실시켰다. 어밀리아와의 약속도 잊고 있었듯이.

반면에 '태멀레인'의 상실은 반대였다. 오히려 그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킨 듯이 보이기도 한다. 태멀레인은 그가 은퇴를 꿈꾸며 가지고 있던 비상금이자, 그만의 퇴직금이었기 때문이다. 은퇴를 꿈꾸기 어려워지면서 그는 '견본쇄를 읽고 이메일에 회신하고 전화에 응답하'며 심지어는 '홍보용 카드도 두어 개 써서 서가에 붙이'는 등 서점 운영에 의욕을 보였다.(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어쩌면, 그가 겪은 상실의 크기에 의해서 마을 사람들이 관계를 차단하거나, 이어간 게 아니라, 상실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그의 '태도'가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을 정하게 한 거는 아닌가 생각한다.


이 소설은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말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이야기이다. 분명히 섬이었던 에이제이는 '태멀레인'의 상실로 하여금 의욕을 다소 회복하고 그 후엔 두 돌 여자아이, '마야'를 만나게 된다. 그 아이를 자신이 키우기로 마음을 먹게 되는 과정,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그는 '태멀레인'의 상실은 잊어버린다. 마야의 존재는 그의 삶을 매우 크게 바꾸게 되는데, 그가 삶의 의욕을 되찾는 것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의 연결점이 되어준다. 경관인 램비에이스는 자신이 마야의 대부가 되겠다고 하며, 처형인 이즈메이는 대모가 되겠다고 한다. 거기에 '태멀레인'의 도난만으로도 찾아오던 마을사람들에게 버려진 아이를 거두었다는 소식은 너무나 '가십성 충만한 이야기'였고, 이는 '늘 그를 혼자만 잘난 차가운 사람으로 여겼던'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온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거기에 혼자 사는 남자가 키우는 여자아이란 사실은 섬의 엄마들에겐 걱정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마야의 친모는 서점에서 아이를 키우길 원했고 마야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게 된다. 마야가 서점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점차 서점은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고 조용한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사람은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계를 형성하는 걸까. 이에 대해서 작가의 관점의 일면이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나온다.

긍정왕 어밀리아의 신념은 감수성과 관심사를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과 같이 살 바에야 혼자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관심사, 다시 말하면 취향이다. 취향이 동일하거나, 적어도 공유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것. 이런 작가의 관점은 이후 이야기 진행에서도 반복돼서 드러나는데, 어밀리아가 중간에 군인남자와 결혼을 약조했다고 말했을 때, 표현하기를 '독서가라고 보긴 어렵'다며 그래도 '흥미가 전혀 딴 데 있는 사람하고 사귀는 것도 흥미롭다'고 말한다. 신념이 바뀐 걸까? 독자로 하여금 생각이 들게 한다. 어밀리아는 '좋은 남자'라며 그게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은 그와 결혼은 하지 않는다.

이번엔 어밀리아에게 아주 까칠한 첫 모습을 보여주었던 에이제이가 몇 년이 흐르고 나서 갑자기 어밀리아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도 취향이다. 첫 만남에서 어밀리아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라며 두고 간 소설을 우연히 읽게 되며 호감을 강하게 느낀다. 거기에 결국에 에이제이가 청혼할 때 하는 멘트도 이어진다.

맹세코. 나는 내가 읽는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밀리아가 그 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취향을 공유한다는 것을 상당히 중요시 여긴다. 요즘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연인이나 배우자선택에서 그들의 직업, 재산을 보거나 외모, 때로는 가정적인 사람인가. 이런 것들이 언급되고는 한다. 하지만, 취향이라는 선택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은 취향을 공유할 수 없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소설의 다른 관계로 이즈메이는 남편이 바람둥이 소설가다. 이즈메이는 에이제이가 혼자서 어린 여자아이를 키우기 위한 도움을 가장 먼저 준 사람이며, 마야의 대모가 되겠다고 한 사람이다. 이즈메이의 결혼 생활은 점차 파탄에 이르러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그들은 거의 대화가 없었고, 결국에 사고로 남편이 죽으면서 그들의 관계는 정리된다.

이즈메이에게 새로이 나타나는 사람은 경관인 램비에이스인데, 그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평범한 사람으로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그는 아일랜드 서점에서 독서 모임을 이끄는 장으로 변하는데, 그러면서 점차 서점에 관계가 깊어지고, 에이제이와 가까워지며 이어서 이즈메이에게도 사랑을 느끼게 된다. (대부와 대모가 만났네?) 에이제이와 램비에이스는 친분이 별로 없었다. 램비에이스는 책을 읽지 않으니 서점에 올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야'의 등장으로 그들은 교류가 생기기 시작했고 책을 좋아하던 마야 덕분에 램비에이스도 책을 읽어보기 시작한 게 상당한 취미로 자리 잡게 된다.

램비에이스는 경관답게 범죄 섹션의 책을 좋아하고 그런 책들로 선택하여 모임을 진행한다. 에이제이는 '범죄 소설은 모두 다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하고, 장르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취향이 약간은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관계가 유지되고 오히려 더 가까워지게 되는 건. 그들의 태도에 의한다.

어째서 이 책은 저 책과 다른 걸까? 책이 저마다 다른 건, 에이제이는 결론을 내린다. 그냥 다르기 때문이야. 우리는 많은 책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는 믿어야 한다. 때로 실망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이따금 환호할 수도 있다. -287p

인간관계에서 취향을 공유한다는 건 취향이 같아서 큰 공감을 가지고 어울린다는 것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취향이 동일한 인물을 찾는 건 사실 어렵다. 인생의 반쪽을 찾는 수준에서도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그런 것만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는 있다. 에이제이와 램비에이스는 분명히 다소 다른 취향을 지녔지만, 그들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그렇게 에이제이는 한 권의 책을 골라 추천해주기도 한다.

취향이 관계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에이제이가 전 아내인 니콜을 잃은 뒤, 섬사람들과의 공통점을 잃어버렸다고 느낌에도 불구하고 에이제이가 다시금 섬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었던 건, 분명히 태멀레인을 도난받은 뒤에 보여준 그의 태도 변화가 시작이었다. 아일랜드 서점을 섬 같은 곳에서 조용한 친구로 탈바꿈시킨 건, 분명 에이제이의 태도였다.


관계에 있어서 취향이 중요하다고 이해된다. 자신의 취향을 말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동일한 취향의 사람은 소중하다는 것. 하지만, 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취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그냥'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서로의 취향을 들어줄 수 있어야, 그것이 인간의 관계 형성이라고 말한다. 결국은 태도다. 그런 태도가 사람에게 섬이 아닌 채로 존재할 수 있게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섬으로서 고고히 존재할 순 없다. 김현경 인류학자가 '사람, 장소, 환대'에서 말했듯,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인정과 환대가 있어야만 한다. 인정과 환대가 무엇으로부터 오는 가. 이는 취향과 그 태도에서 올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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