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가는 것 바라보기 - 사계절
저녁 산책 중.
짧게 내밷는 날숨이 하얀 입김이 되었다.
지난 겨울 이후 처음 보는 하얀 입김이다.
집에서는 아직 습관처럼 반팔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지낸다.
드문드문 춥다고 느끼는 날이 잦아지고 있지만
보일러는 아직 틀지 않고 있다.
추워진 날씨를 탓하며 집 밖으로 나오지 않다가
답답함을 어쩌지 못해 막상 밖에 나오면
집에서 느끼는 것보다 춥지 않다는걸 알게된다.
꾸역꾸역 살아갈 것을 걱정하기보다
남은 시간을 무엇을 하는데 쓸 것인가를 고민하기로 했었다.
그래도 습관처럼 찾아오는 불안에 어쩔줄 몰라하는 날이 많지만
하나를 손에 쥐려면 다른 하나는 놓아야 한다는걸
걷다 보면 다시 떠올리게 된다.
여행 일정을 점검하듯
남은 삶을 무엇을 하는데 쓸지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고민이면서도
무엇인가를 아쉬워 해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흔히들 말하는 '버킷리스트'는 생각해본적이 없다.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고 살지는 않았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배경은 없었지만 운이 좋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기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아쉬웠던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래도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들에 대한 힌트를
지난날 해왔던 말들에서 얻어보기로 한다.
"집에서 앉아 계절가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고 한것이 생각났다.
한참 바빴던 시절에 친한 동료에게
힘에 부칠때마다 나도 모르게 얘기하고 또 얘기하곤 했던 말이다.
입춘이 되면, 입추가 지나면 달라지는 공기의 냄새를 나는 안다.
달력을 보지 않고 맞춘적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다.
시기에 따라 공기가 바뀌고 하늘의 모습이 달라진다.
순서대로 피고 지는 꽃들이 있다.
낮과 밤에 계절에 따라 새들의 울음소리가 달라진다.
초 여름 밤에는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어대고
소쩍새 소리가 들리는 산에서 밤꽃 향기가 풍겨온다.
장마가 깊어진 날에는 맹꽁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여름 더운 밤에 울려퍼지는 풀벌레들 소리.
방울벌레와 귀뚜라미 소리.
꽃 같은 단풍이 들고 진 후에
낙엽을 밟고 걸을 때 바스락 거리며 부서지는 소리.
조카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좋아하는 소리다.
어딘가에서 낙엽을 태우는 냄새
회색 날씨에 하얗게 흩날리기 시작하는 눈
새벽에 밖에서 부지런한 어르신이 빗자루로 눈을 쓰는 소리
이런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느긋하게 느끼고 싶었다.
온전히 그 일에 집중해 본적이 없다.
그러려면 1년이 걸리는 일이다.
이게 내 버킷리스트의 1번이었다.
얼마 전부터 나는 그 1번을 착실히 하고 있는 중이고,
오늘은 가을의 첫번째 입김을 본 날이다.
2번이 무엇인지 생각해내려면
기억을 또 더듬어야 할 것 같다.
즐거운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