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첫 몇 달은 ‘모유수유 계속할까 말까’ 무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내 주변 아무도 나에게 모유수유를 강요하지 않았는데 나는 애절한 모성애의 늪에 혼자 빠져, '나만 참으면 되는데 굳이 단유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이어갔다. 그래도 유선염으로 고통받은 모유수유 선배들에 비하면 나는 아주 양반이었다. 가끔 가슴이 돌처럼 딱딱해지긴 해도 유축기나 아기의 도움을 받으면 금방 말랑해져서 고통이 오래가지는 않는 편이었다. 식이조절을 따로 하지 않았음에도 유선염의 고통을 겪지 않았으니 모유수유 신의 가호를 꽤나 받은 몸이다.
면역력 저하로 대상포진에 걸렸을 땐 이젠 진짜 단유해야하나 고민의 정점에 다다랐다. 다행히 수유에 지장 없는 약을 처방받아 문제없이 수유했지만 이렇게 나약한 엄마의 모유가 진정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었다.
가장 큰 위기는 아이의 건강검진 시기였다. 우리 아이는 평균 대비 몸무게가 현저히 적게 나갔다. 키는 평균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몸무게가 지독히 늘지 않았다. 대부분 100일 무렵엔 태어났을 때의 몸무게 2배가 된다는데 우리 아기는 그 근처도 가지 못했다. 1주 정도 변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걱정이 더 컸다.
열심히 알아보니 모유수유를 하는 아기의 경우, 모유가 분유보다 훨씬 소화가 잘 되는 편이라 변비를 앓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또 소화가 잘 되다 보니 분유 수유하는 아기들에 비해 살이 덜 찌기도 한다고. 이론은 이렇다 해도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말라 보인다’ 면 부모들의 애간장은 타오르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보다 몇 달 늦게 태어난 친구들의 아이들이 몸무게를 추월해나가자 나의 고민은 더 커져갔다. 나도 친구들처럼 분유를 먹여야 하나, 분유는 몇십 년 간 전문가들이 연구해서 만들어서 믿을 수 있는 영양가를 가지고 있지만 내 모유는 영양가가 입증되지않은 ‘물젖’ 일 수도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 젖은 적어도 분유보다 못난 영양가를 갖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24개월인 지금도 평균 대비 몸무게는 적게 나가지만 걱정할 수준은 아니고, 성장이 더디게 되는 듯 보였던 것은 유전 영향이 큰 것이었다. 24개월 동안 우리 아이는 감기조차 크게 앓은 적이 없었고, 어린이집에서 코로나와 수족구가 유행할 때도 모두 피해갔다. 여리여리한 몸 때문에 약해 보이긴 해도 면역력은 꽤나 강인한 모양이다. 물론 이것조차 유전일 수 있지만 나는 모든 것이 내 모유 덕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름 건강하고 평화로운 24개월을 보낸 것도 그렇지만, 모유를 먹이는 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 돌 이후로는 수유량을 줄이면서 자기 직전 한 번만 수유를 했는데 이것이 아이의 루틴이 되어서 자기 전엔 꼭 쭈쭈를 찾고, 쭈쭈를 먹으면 바로 잠들었다. 모유를 먹는 시간은 나와 아이, 단 둘만의 시간이다. 물론 온종일 단 둘이 있긴 하지만. 달빛이 겨우 들어오는 어두운 방에서 해맑은 목소리로 쭈쭈를 외치는 아이와 자리를 잡는다. 항상 사용하는 연보라 하트 쿠션이 우리의 수유 쿠션. 아기에게 ‘쭈쭈 쿠션 가져오세요~’ 말하면 어딘가에 숨어있는 쿠션을 용케 찾아내 나의 품에 건네준다. 내가 쿠션을 무릎 위에 올리고 팡팡 두드리면 아이는 신나서 까르르 웃으며 자신의 몸을 뉘인다. 조리원에서는 너도 나도 어설픔 그 자체였는데 2년 간 능숙해진 우리는 눈 감고도 최적의 자세를 취한다. 그렇게 오른쪽 왼쪽 각각 10분가량 먹고 나면 아이의 입이 느려지고, 자연스럽게 눕히면 아이는 그대로 잠이 든다.
아이와 느끼는 교감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를 재우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모유만큼 좋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24개월 간 모유수유를 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대체 왜 단유를 하지 않냐고 물으면 ‘나에겐 최후의 수단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그 대답에 다들 수긍했다. 육아 중 가장 힘든 일이 아이를 재우는 일인데 나의 모유가 그 부분을 아주 쉽게 해결해주었으니. 그것 하나로도 나는 모유수유를 끝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