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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Sep 26. 2022

24개월, 모유수유를 마치며 (1) 마당을 나온 강아지

내가 모유수유를 2년이나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육아 선배인 언니, 엄마, 남편조차도 모유수유 좀 그만하라고 할 정도로 나는 끈질기게 모유수유를 했다. 나도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주다 보니 ‘아기가 원할 때까지 주겠다’는 신념이 생겼다.


처음엔 자연스럽게 혼합수유로 시작했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우리 아가는, 태어나자마자 분유를 먹어야 했다. 조리원 들어갈 때까지 젖이 돌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서로의 적응을 위해 산부인과에 있는 동안 빈 젖을 물며 사전 연습(?)을 했던 기간도 있었다. 겨우 몸을 일으키게 될 때쯤 모유수유 전문가가 찾아와서 내 가슴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나쁘지 않은 가슴이라고 평했다. 살면서 한 번도 자부심을 가져본 적 없던 가슴이었는데 드디어 쓸모를 하게 되는 건가 기대됐다.


대부분의 조리원은 모유수유를 권한다.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좋다고. 입소할 때 원장님은 모유수유 도전 여부를 꼭 묻는다. 나는 ‘나오면 주고 안 나오면 말고요’라고 답했지만 원장님은 나의 입소신청서에 ‘완모’라고 적었다. 완모 도전의 첫 코스는 유선 마사지였다. 유선을 뚫는 마사지로, 고통을 참다가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아팠다. 마사지 실장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내 가슴을 이리저리 마사지하는데 몇 분이 지나자 나의 첫 모유가 터져 나왔다. 험한 표현이지만 ‘터졌다’는 말 외엔 적절한 단어가 없을 정도로 터져 나와주었다. 나와 실장님 얼굴에 마구 튀는 모유를 보며 이게 진정 내 것이 맞나,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모유수유. 주는 사람 포즈도 엉성하고, 먹는 사람 자세도 애매하다. 나오기는 하는 건지, 먹기는 하는 건지 도저히 알 방법이 없다. 능숙해 보이는 다른 엄마들 옆에서 끙끙대며 어리숙하게 직수 타임을 가지고 방에 돌아오면, 유튜브로 ‘모유수유 자세’를 검색했다. 다른 엄마들이 가득 채워온 유축 젖병을 보고 나면, 유튜브로 ‘모유수유 양 늘리기’를 검색했다. 내가 궁금해하는 정보는 이미 모두 올라와 있다. 대부분의 정보는 별 쓸모없었지만 무수한 전문가들이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준 것만으로, 그들은 역할을 다한 셈이다.


아이가 얼마나 먹었는지 알 도리가 없으니, 엉성한 직수를 마치고 나면 항상 분유 보충을 요청했다. 나는 모든 수유 콜을 다 받았다. 아이와 최대한 살을 맞대며 친해지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 수유를 했다. 많은 선배들은 절대 그러지 말고 푹 쉬라고 조언하는데 결국 산모 당사자의 선택이다. 대다수의 의견처럼 수유 콜을 받지 않고 쉬면 내 몸 회복에 큰 도움이 되니 당연히 좋다. 하지만 나는 내 건강보다 아이와의 빠른 적응을 목표로 했기에 무리해서 수유 콜을 다 받았다. 지금도 후회는 없고, 누군가 나와 같은 선택을 한대도 말릴 생각은 없다.


그렇게 애를 썼지만, 전문가들의 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여전히 어설펐다. 어느새 시작하게 된 혼합수유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웠다. 2~3시간마다 직수로 젖을 주면서도 분유 보충을 해야 하니 분유도 타야 하고 젖병도 소독해야 한다. 남편과 둘이 함께 해도 어려운 일이다.


모유수유에서 중요한 건, 아이와 엄마의 호흡을 맞추는 일이다. 엄마가 제공하는 젖의 양과 아이가 먹는 젖의 양이 맞지 않아서 젖몸살을 앓게 되는데 나의 경우엔 한 달만에 겨우 맞춰졌다.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혼합수유와 유축을 즉시 중단하고 직수 위주로 수유를 하니 몇 주만에 완벽한 균형을 찾게 됐다. 맞춰지기 전까지는 밤새 젖이 불어서 폭삭 젖는 옷, 자고 일어나면 딱딱해져서 한참 풀어줘야 겨우 먹을 만해지는 그 인내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젖양의 균형이 맞춰졌다 해도, 젖몸살의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3시간마다 모유를 주게끔 프로그래밍된 나의 몸은 아이에겐 최적의 상태였지만 나의 자유시간은 모두 삭제한 상태였다. 친구들과 밥이라도 먹으러 나가려면 왕복 2시간, 식사 1~2시간이 최대였다. 4시간만 넘어가면 가슴이 딱딱해지고, 옷이 흠뻑 젖곤 했다. 그래서 조금 오래 놀고 싶을 땐 유축기를 챙겨가서 자유를 즐기겠다는 일념 하나로 혼자 다른 방에 들어가 10분 동안 유축을 하고 나왔다.


신생아를 키우면서 이전과 같은 자유를 원했던 건 아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모유에 몸이 묶이게 되니, 목줄에 묶여 마당에서 지내는 시골 강아지 신세가 된 느낌까지 들었다. 마당을 탈출한 강아지처럼 오랜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가슴이 돌처럼 딱딱해져 있다. 그 돌덩이를 자고 있는 아기 입에 물리면, 반가워하며 쪽쪽 빨아대는데 마치 내 몸의 독소를 아이가 빼주는 기분이 들었다. 모유가 독소처럼 느껴진다니, 이렇게 모유수유를 계속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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