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기질이 그러한 아기인 것 같긴 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자아가 비대해지고 고집이 세져가는 것을 느낀다.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 몸처럼 여기기에,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그저 눈에 보이는 엄마가 자신의 전부이고, 중심이다. 스스로 앉고 서고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레 엄마와 자신을 구분하고 자신의 뜻대로 어디든 나아간다. 나아가는 힘이 강해지면 엄마의 뜻을 거스르고 자기의 길을 가기도 한다.
왜 이렇게 거창한 서론을 깔았냐면 오늘은 온종일 아이 뒤꽁무니만 따라다닌 하루였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아이 옆에서 눈을 뜨면 아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숨죽여 조용히 세상 물정을 살펴보다 아이가 눈을 뜨면 나의 아침이 진정으로 시작된다. 기저귀를 갈고, 세수를 시켜주고 조금 놀아주다 밥을 차린다. 우리 아이는 유순하고 잘 먹는 아이인 편이지만 가끔은 격렬하게 밥을 거부한다. 그럴 때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 조합으로 인형으로 역할극을 해가며 최선을 다해 밥을 먹인다. 그렇게 노력해도 남는 밥이, 나의 아침식사가 된다.
예쁘면서도 편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예쁘게 양갈래를 묶여 어린이집에 등원시킨다. 나의 등원룩은 집에서 굴러다니던 누더기 옷이다. 아이는 로션까지 야무지게 발라 보내지만, 나는 마스크만 믿고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등원할 때가 많다. 아이를 무사히 등원시키고 나면 이제야 내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세상 부지런히 채운다. 영상 촬영하고 편집하고 글 쓰고 올리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나의 자유시간을 계획하고, 알찬 활동들로 채워간다. 나의 자유시간이 유한함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하원 시간 전에는 30분이라도 낮잠을 자두어 최대의 컨디션을 끌어내려고 한다. 하원할 때는 보통 아이가 가장 신나 있는 때라, 기운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다면 하원 후에 꼭 아파트 단지 한 바퀴 산책을 한다. 말이 산책이지 아이가 가는 대로 열심히 따라다니는 시간이다. 아이 뒤꽁무니 따라다니는 하루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는 길가에 핀 꽃이나 작은 돌멩이 줍기를 좋아한다. 맘에 드는 돌이 있으면 작은 손에 꼭 쥐고 한참을 걸어 다닌다. 놀이터에 가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엄마, 아빠, 할머니들이 가득하다. 낯가림 심한 모녀라 넉살 좋게 먼저 다가가진 못하고 누군가 다가오면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넨다. 이제는 혼자 계단도 잘 오르내리지만 걱정 많은 엄마라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아이만 바라본다. 그러다가도 아이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줘야 한다는 핑계로 이야깃꺼리를 만들기위해 맑은 하늘도 올려다보고, 저 멀리 지나가는 지하철도 구경한다. 아이를 만나기 전 나였다면 느끼지 못했을, 평화로운 풍경들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본격적인 육아의 시간이다. 책 육아, 엄마표 영어 육아, 놀이육아. 어떻게 하면 아이의 뇌를 자극시켜줄 수 있는지 책으로, 유튜브로, 선배들의 조언으로 공부하지만 오늘도 '인생은 실전'임을 여실히 깨닫는다. 아이는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내가 의도한 대로 행동해주지 않는다. 그저 아이의 관심사, 발걸음에 맞춰 내가 이리저리 휘둘려준다.
그렇게 정신없는 오후 시간이 지나가고, 식사도 마치면 마지막으로 아이와 함께 목욕을 한다. 아이는 장난감과 함께 따뜻한 물에 담가두고, 나는 그 옆에서 먼저 샤워를 한다. 아이를 바라보며 목욕하다 보면 온갖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오늘 하루, 요즘의 시간, 인생 첫 휴직의 시간들이 얼마나 나에게 의미 있는지. 생각이 정리되면 이렇게 글을 쓰고 싶어지기도 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안부 연락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씻고 나와 물기를 닦아주면 아이는 '쭈쭈줘요!'라고 외치며 내 손을 잡아끈다. 어느덧 21개월째 모유수유 중이지만 나도 내 모유의 영양가와 맛에 대해선 자부하지 못한다. 이제는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아이가 저토록 원하니 맘껏 먹게 내어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최선을 다해 빨고 있는 아이를 보며, 아직은 아기구나 체감한다. 언제까지고 내 품 속에서 이렇게 잠들 것만 같은 소중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다시 나의 자유시간이 시작되지만, 돌이켜보면 하루의 절반 이상은 오로지 아이를 위해 움직였다. 자유시간에도 육아 관련 책을 읽고, 남편과 육아 계획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오롯이 나의 의지로 움직였던 지난날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하루지만,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닌 아이에게 맞춰져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엄마는 딸의 미래라는 말을 믿는다. 우리 엄마는 평생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다. 엄마가 나의 전부였던, 엄마가 살아가는 세상의 중심이 나였던,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내게도 비대한 자아와 고집이 생겨났을 것이고,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새롭게 '내 세상의 중심'을 마주한 지금. 요즈음 엄마의 모습을 살펴보니 온전히 자기 세상의 중심이 되어 계셨다.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하루를 살아가고 자신을 위한 미래 계획을 세우고 계셨다.
사람은 그렇게, 엄마가 전부인 세상에서 태어났다가, 내가 세상의 중심인 듯 살아가고, 다시 누군가를 내 세상의 중심에 세워보면서 나를 찾아가, 그 결말에는 또다시 내가 중심에 꼿꼿이 서게 되는가 보다.
나는 우리 엄마를 보며 나 또한 그렇게 될 것임을 믿는다. 훗날 우리 아이가 나를 보며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길 바란다.
지금은 세상의 중심이 우리 아이여도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훗날 더 단단해진 내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도 사랑 없이 허투루 지나친 순간이 없었고, 아이의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이 제법 행복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