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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Sep 26. 2022

24개월, 모유수유를 마치며 (3) 내가 완모를 하다니

24개월 간 모유수유를 하며 대체로 행복했지만 소위  ‘슬픈 젖꼭지’ 시기를 겪은 적도 있다. 우리 아이는 대체로 잘 자는 아기였지만, 유독 투정을 부리고 자지 않으려 하는 날에는 혼자 밤을 꼴딱 지새우며 아이를 달래야 했다. 나의 ‘최후의 수단’이었던 모유수유는 정말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역할을 다했지만, 그때마다 기분이 유쾌했던 것은 아니다. 새벽 4시, 눈도 제대로 뜨지 않고 젖을 무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모성애가 피어오르는 날도 있지만, 내 존재 가치가 이것뿐인가 하는 슬픈 젖꼭지의 날도 있었다.


‘슬픈 젖꼭지 증후군’으로 알려져 있는 ‘불쾌한 젖 사출 반사’는 이유 없이 젖 사출 직전 혹은 아기가 젖을 물자마자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평소엔 산후우울증이라곤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로 밝은 상태인데, 유독 젖을 물릴 때 불안함이나 우울감, 허무감을 느끼는 것이다. 제대로 못 자는 데서 온 피로감과 새벽 감성이 더해져서 더 큰 우울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수유할 때 슬픈 기분이 들 때면 아이의 귀여운 얼굴을 바라보거나 스마트폰으로 재밌는 걸 찾아보았다. 수유하는 행위에 집중해서 온갖 사념에 매몰되기보다는, 다른 것에 집중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겐 유효했다.


슬픈 시기를 스마트폰 중독으로 이겨내고 나니 나름 욕심이 생겼다. 24개월 완모,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모유수유를 했다는 엄마들도 대부분 돌 무렵 단유를 한다. 돌 이후부터는 밥이 주식이 되어, 모유나 분유를 끊고 우유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기때문. 하지만 WHO와 UNICEF는 생후 2년이 될 때까지 이유식과 함께 모유수유를 지속하길 권장한다. 모유는 우유보다 영양 면에서 월등히 우수하고, 1년이 지나도 영양가가 떨어지지 않고 아이에게 전달되는 면역물질도 유지된다고 한다. 모유수유를 통해 엄마의 유방암 발병률이 줄어드는 등 엄마 자신에게도 좋은 점이 지속되기 때문에, 굳이 불편함이 없는 상황이라면 단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 여러 아티클을 읽은 후 나는 24개월 완모를 목표로 모유수유를 지속했다.


걱정거리였던 술은 제로 맥주를 찾아내면서 해결됐다. 할머니, 아빠에 이어 남부럽지 않은 술꾼인 나는, 매일 자기 전 마시는 맥주가 삶의 낙이었던 사람이다. 임신과 수유로 인해 술을 끊으려니 적지 않은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어디 나 같은 사람이 없겠는가. 이미 고도로 발달된 주류업계는 알코올이 없는 제로 맥주를 판매하고 있었고 마침 유행을 타서 대부분의 브랜드가 제로 제품을 출시했다. 여러 브랜드의 제로 맥주를 마시며 내 취향의 음료는 찾는 것이 취미가 될 정도로, 제로 맥주의 세계는 넓고도 황홀했다. 미각이 둔하디 둔한 사람이라 풀 알코올과 제로 알코올의 맛 차이도 느끼지 못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면 ‘아직도 모유 수유해?’라는 질문이 기본이었고, 그렇다는 대답과 함께 최애 제로 맥주를 꺼내 마시는 것이 나름의 행복이 될 때쯤 아이의 두 돌이 다가왔다. 이제 슬슬 끊을 때가 다가왔지만 아이는 아직도 매일 맛있게 모유를 먹으며 잠들었다. 자기표현이 늘어나면서 모유에 대한 애착이 더 크게 느껴졌다. 잠들기 전 생떼를 부리다가도, ‘쭈쭈?’ 한마디만 하면 밝게 웃으며 자기 방에 들어가 쭈쭈 쿠션을 찾아 다소곳이 자세를 잡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단유를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한쪽만 줄까 싶어서 스윽 몸을 뒤로 빼면 다른 쪽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쭈쭈 더 줘요!’를 외치는 고객님. 다 마시고 난 뒤에는 세상 만족한 얼굴로 방긋 웃으며 ‘엄마 쭈쭈 좋아요’라며 대만족 후기까지 남기는 고객님. 이러니 ‘아기가 원할 때까지 모유를 주겠다’는 나의 결심이 무너질 수가 없었다.


두 돌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렀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는 동안 육아는 남편이 전담했다. 엄마 없이 아이를 하루 이상 재워본 적이 없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했다고 한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니 굳이 쭈쭈를 찾지 않았고, 자기 전 우유나 영양 음료를 먹여 배를 두둑이 불리니 큰 투정 없이 잠들어주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하루 이틀 젖을 물리는데, 며칠 먹이지 않으니 확실히 젖양이 줄어든 모양이다. 평소 같으면 양쪽 10분씩, 도합 20분을 충실히 빨고 입을 떼던 고객님이 5분 만에 식사를 종료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마 쭈쭈 다 먹었다’고 말한 뒤 5일 간 쭈쭈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 아이에 의한 단유가 5일째 진행 중이다. 나는 이제 모유수유 중단을 선언하고 당당히 풀 알코올 술을 먹기로 했다. 모유수유를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게 단유였는데 이렇게 평화롭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말이 잘 통할 때 단유를 하면 잘 설득(?)해서 서서히 젖을 뗄 작정이었는데. 스스로 줄어든 양을 체감하고 ‘다 먹었다’고 선언할 줄은. 물론 매일 자기 전 입이 심심하다고 투정을 부리지만, 우유나 영양음료로 충분히 대체가 되는 모양이다. 그런 사제품으로 대체가 되었다니 조금은 서운해지기도 하지만 서로 합의 하에 원만한 단유 절차를 밟게 되어 만족스럽다.


돌 이후 모유수유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젖이 나오기는 하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항상 나도 모른다고, 그저 아기가 20분씩 매일 드시니 나오나 보다 하고 물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어쩌면 우리 아기는 엄마의 따뜻한 품이 좋아서 그동안 젖이 잘 나오는 척, 맛있게 먹는 척 한 걸지도 모른다. 특별히 맛있지도 특별히 영양가가 우월하지도 않았을 나의 모유를, 무엇보다 좋아하고 기다리던 우리 아기. 다 먹고 나면 항상 흡족한 얼굴로 잠들던 모습이 24개월 완모를 완주하게 한 모든 이유였다.


나는 절대 모유수유를 강요하고 싶지 않다. 모유수유의 결정권은 온전히 엄마에게 있고, 모유수유가 분유 수유 대비 모든 면에서 월등하지도 행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엄마를 서럽게, 슬프게,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이와의 대체 불가한 애착을 형성하기도 한다. 물론 아이와의 오붓한 시간은 분유 수유를 하면서도 충분히 가질 수 있기에, 모유수유가 모든 엄마와 아기에게 필수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서툴고 어설펐던 나에게 24개월 완모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되었다. 뚜렷하게 증명할 순 없지만 우리 아기의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하기로 했기에, 우리 가족에겐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이제 내 양쪽 가슴은 이전처럼 다시 쓸모없는 존재로 돌아갔지만 아기에게 언제든 손 뻗으면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자취생에게 엄마의 집밥 같은 그런 존재로 남는다면 그걸로 되었다 싶다. 태어나서 2년 동안 누군가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면 그걸로 쓸모는 충분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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