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이 한 달 남았다.
나는 감히, 꽉 채워쓴 육아휴직 2년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스러운 얼굴로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는 아이 얼굴을 보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신생아 시절의 기억은 깨끗이 지워진다. 마침 기분 좋을 정도로 서늘한 가을바람과 햇볕 아래 아이와 손 잡고 낙엽길을 걷는 것이 그저 좋은 것이다.
남은 한 달의 시간을 누구보다 알차게 쓰고 싶어서, 나는 아이와 동네 탐방을 시작했다. 이사온지 두 달. 그동안은 어린이집 하원 후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전전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동네도 익숙해졌으니 조금 더 멀리 산책을 나가고 싶어졌다. 마침 교통의 요지로 이사를 오게 되어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만 타면 원하는 곳은 웬만하면 갈 수 있다. 도보 포함 이동시간 30분 이내라면 아이와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을 거라 판단하고 지도 앱을 켜서 아이와 갈만한 곳을 뒤졌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동육아방, 구립 도서관 안에 딸려 있는 어린이 도서관, 각종 크고 작은 공원과 박물관, 키즈카페와 동물들을 볼 수 있는 카페까지.
교통의 요지이긴 하지만 제법 언덕이 많은 이 동네는 나를 여러 번 당황하게 만들었다.
체육관과 운동장, 도서관까지 모여있다는 문화공원은 가는 길부터 운동 코스였다.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다시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고 해서 ‘이 정도는 껌이지’ 했는데, 그 10분이 아주 가파른 길을 쉼 없이 올라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주변에 대신갈 만한 곳도 없고, 어쩌겠나, 이 언덕을 올라가야지. 설상가상 안아달라고 떼쓰는 아이까지. 11kg의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한 손으로 길을 찾아가며 그렇게 공원으로 향했다. 비 오듯 땀이 흐르고 한쪽 팔의 감각이 없어질 즈음 꼭대기에 다다랐다.
10분 이상의 등산 끝에 마주한 풍경은 단풍잎이 풍성하게 피어오른, 작고 포근한 공원이었다. 아이는 내 품에서 내려와 쪼르르 달려가며 활짝 웃었고, 나는 그걸로 됐다고 만족했다.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계단도 오르내리며 신나게 놀고, 도서관 앞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운동장 돌면서 만난 까치는 거진 반 바퀴 동안 우리를 따라와서, 우리 할머니가 나를 보러 온 걸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나들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시간. 지도 앱을 찍어보니 세상 복잡한 경로가 뜬다. 다른 방향으로 언덕을 한참 내려가 복잡한 길을 건너고 건너면 마을버스 타는 곳이 나온단다. 피곤하고 배고픈 아이를 데리고 버스 정류장에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고, 버스 안에서도 아기는 계속해서 칭얼댔다. 상비약처럼 챙겨 온 작은 초콜릿을 계속 쥐여주며 어찌어찌 집으로 돌아왔다.
가장 최악의 기억으로 꼽히는 날은 따로 있다. 역시 집에서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나오는 곳인데, 큰 공원 안에 박물관도 있고 도서관도 있다. 너무나 유명한 서울의 랜드마크지만 나는 첫 방문이라 더 기대가 되었다. 신나게 공원 산책을 하고, 아이와 간식도 나눠먹고, 사진도 찍으며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마침 박물관에 단체관람 온 언니 오빠들이 아기를 보고 너무 귀엽다고 칭찬을 쏟아부었다.
공원 끄트머리 도서관에 도착해서 따뜻한 구들방에 앉아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뒤이어 들어온 돌쟁이 아이가 내 옆에 앉아 같은 책을 들여다보았다. 함께 책을 읽고 나서 그 둘은 구석으로 기어가서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갑자기 돌쟁이 아기가 벽에 붙어있던 안내문 종이를 촥 찢었고, 그걸 보며 까르르 웃던 우리 아기는 너덜한 종이 한쪽을 잡고 촥 뜯어냈다. 조용한 도서관 안에 울리는 경쾌한 소리. 아이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조용히 말하고 선생님께 사죄를 드리는데, 아이가 심통이 났다. 서둘러 겉옷을 입혀 열람실 밖으로 나가니, 바닥에 드러눕고 집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아이를 들춰업고 마을버스를 타러 갔다. 아이가 품에서 버둥대는 사이 아이 신발이 찻길로 떨어졌다.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며 배차간격이 15분인 마을버스를 겨우 탔는데, 다시 또 투정이 시작되었다. 사탕, 젤리로도 달래지지 않는 강력한 투정. 설상가상 심하게 흔들리는 마을버스. 결국 중도 하차하고 다른 버스를 갈아타러 걸어갔다. 아까부터 화가 나있던 아이는 자꾸만 찻길로 달려가고 싶어 했다. 빠방이를 보고 싶다며 달려드는 아이를 억지로 붙잡으니 아이는 더더욱 화가 났다. 내 인내심도 바닥이 나서, “너 정말 왜 그래?”라며 길에서 화를 냈다. 내 언성이 높아지자 아이는 바닥에 앉은 채로 나에게서 등을 홱, 돌렸다.
어둑해진 저녁, 아이와 냉전 상태를 유지하는데 말 그대로 ‘현타’가 왔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땀 흘리고 있나. 내가 지금 힘든 만큼 저 아이도 지쳤을 텐데. 아기를 위한답시고 나와서 아이를 힘들게 하고, 큰 소리 내며 화내고.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나. 둘 다 한참을 말없이 토라져있다, 조용히 서로를 끌어안고 버스를 다시 잡아타고 귀가했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하루도 빠짐없이 어린이집 하원 후에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는데 그 시간은 다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나름대로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새로운 것을 보고 만지고 들었지만, 아이에게 그것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매일 잠들기 전, “오늘 재밌었어?”라고 물으면 힘찬 목소리로 “응!”이라고 대답하던 우리 아기. 뒤이어 “뭐가 제일 재밌었어?”라고 물으면 “스라가 엄마 얼굴 이렇게 이렇게 했지~”라며 나에게 장난친 이야기를 하던 우리 아기. 나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고 있는 아이 사진을 찍으며 ‘오늘도 알찬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어디에 있든 그저 엄마와 얼굴을 마주하고 웃었던 시간만이 좋았던 것이다. 처음 가 본 도서관에서 읽은 그림책도, 길에서 만난 오빠와 나눠가지던 나뭇잎도 좋았지만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서로의 눈을 바라봤던 그 순간인 것이다.
어느덧 밥을 다 먹은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며, 나보단 남편 얼굴을 닮아가는 귀여운 얼굴을 들여다보며, “오늘 엄마가 화내서 미안했어, 내일은 더 재밌는 놀이를 하자”라고 사과했다. 아이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좋아!”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제, ‘최악의 기억’이 리셋되었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잠시 들른 언니와 짧은 시간을 보내고, 마침 가까이 있던 돌담길을 아이와 걷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버스에서 본인이 낼 수 있는 최고의 데시벨로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하차벨을 직접 누르고 싶다는 요구였다. 이미 눌려져 빨갛게 된 하차벨을 아무리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자 화가 난 것이다. “버스에서는 조용히 하기로 했지? 제발, 제발 조용히 하자” 모든 승객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에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아기는 계속해서 안아달라고 보채고, 안아주면 내 가슴을 발로 차면서 벗어나려고 했다. 버스 타는 걸 포기하고 그냥 걸어가자! 고 말했지만 품 속에서 버둥대는 아이 덕에 내 팔 근육은 온통 너덜 해졌다. 결국 다시 버스를 잡아탔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하차벨 때문에 화가 난 아기. 결국 한 정거장만 타고 내려, 집까지 걸어왔다. 집에 오니 오늘 하루 11,000보를 걸었다.
집에 도착해 숨을 돌리며 오늘 찍은 사진을 돌려보았다. 분노의 버스 타임 이전까지 기분 좋게 활짝 웃으며 포즈를 잡던 아기. 그렇게 어제, 그제, 지난주 사진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은행잎 한가득 쥐고 나에게 건네는 아기의 모습, 돌길 위에 비친 한껏 신난 우리의 그림자, 박물관 체험공간에서 나란히 옷을 빌려 입고 찍은 셀카가 가득했다.
내가 아기와 놀아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기가 나랑 놀아주고 있었다. 나는 천진한 얼굴을 한, 아기의 말간 얼굴을 보며 계속해서 행복하고 싶었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도, 더 잘 해내라고 독촉하는 사람도, 너는 이런 부분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는 아기와의 유토피아. 때때로 자신을 잃게 하는 시간들이 문득문득 오지만 아기의 웃는 얼굴에 모든 것이 돌아오는. 그 행복의 시간을 흘려보내기 싫어 매일 새로운 곳에서, 훗날 힘이 드는 어느 순간 돌려볼 수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아이를 위해 나섰다고 하면서, 그저 새로운 공간 새로운 경험에 집착하느라 아이의 기분이 어떤지, 손은 차갑지 않은지, 어떤 버튼을 누르고 싶은지, 달콤한 간식이 생각나진 않는지 묻지 못했다.
어제 최악의 나들이를 마치고 아기 손을 잡고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너랑 다신 버스 안 탄다고 말했으면서 나는 또 오늘은 어디 갈까 신나게 검색 중이다. 아이를 낳은 뒤 급격히 나빠진 기억력은 계속해서 실수를 반복하게 하지만, 그래서 우린 또 새로운 추억을 쌓으러 나갈 수 있다.
잡을 수 없어 마냥 흐르지만 새로운 계절은 그 나름의 행복이 있다. 내가 그리워하던 계절도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복직 후에도 나는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것저것을 찾아 헤맬 것이고, 우리는 어디를 가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던 시간이 가장 좋았노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흐르고, 너는 나의 계절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