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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Dec 23. 2021

우리 아이의 첫 크리스마스 선물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해야 하니 아이에게  선물을 하나 보내라고 알림장이 왔다. 이제  15개월이  우리 아기에게 대체 어떤 선물을 줘야 할까? 어떤 장난감이든  가지고 놀고, 아직 특정 장난감을 갖고 싶다고 말할 월령은 아니기에 선물을 고르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마스 핑계로 자신을 위한 선물을 이것저것 사고 있었다. 남 부럽지 않은(?) 키덜트인 나는 요즘 백설공주에 꽂혀, 귀여운 일곱 난쟁이 인형을 구입했다. 아기도 좋아하며 잘 가지고 놀기에 비닐에 그대로 포장해서 어린이집에 선물로 보냈다.


비록 우리 아이에겐 갖고 싶은 인형을 물어볼 수가 없어서 내 취향으로 샀지만, 이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조카에겐 원하는 선물을 사줄 수 있었다. 언니에게 물으니 32개월이 된 조카는 '커다란 뽀로로 인형'이 갖고 싶다고 얘기했다 한다. 작은 인형은 안 되고 꼭 큰 인형이어야 한다고. 인형 전문가인 이모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뽀로로에 루피, 크롱까지 더해서 3종 세트로 사 보냈다. 산타 할아버지가 준 것으로 위장된 뽀로로와 친구들이 조카의 마음에 쏙 든 모양이다. 조카는 인형을 보며 이름을 외치다가 조그만 입술로 뽀뽀를 했다. 크롱와 루피는 싫어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오히려 뽀로로보다 좋아하면서 작은 품 속에 꼬옥 안았다.




나의 키덜트 경력은 입사와 동시에 시작됐다. 원래도 귀여운 걸 좋아했지만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인형과 장난감들을 사모았다. 지금은 온 집이 인형으로 가득할 정도로 대단한 키덜트가 되었지만, 내가 왜 인형을 좋아할까 생각해보면 싫어하는 것에 대한 거부와, 결핍에서 시작된 것 같다.


회사생활을 하며 사람에 지치는 일이 많았다. 만나는 사람의 대부분은 나를 좋아했던 관계에서, 나를 부족하다 말하고 언짢게 여기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관계로의 전환. 왜 해야 하는지 모를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들. 싫지만 참아내야 하는 일들이 생기면서 나를 구원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또, 어릴 적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했던 인형들, 어딘가 못생겨서 서운했던 아쉬움들이 내면의 결핍으로 남았다. 나는 어른이 되면 꼭 사고 싶은 인형을 다 살 것이다, 어린 시절의 결심이 여러 트리거를 만나며 발현됐다. 아프지만 견뎌내야 하는 것들이 생기면서 나를 위로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부정적인 어떤 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냈다.


휴가만 생기면 인형 사러 다니던 시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는 것은 이것과는 달리 정말 순수하다. 우리 집엔 정말 많은 장난감이 있는데 그중 아이가 유난히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배를 누르면 자장가가 나오는 곰인형. 버튼을 누르면 천장 가득 그림이 나오는 미니 프로젝터. 잡아당기면 길게 쭈욱 뜯어지는 마스킹 테이프. 얼굴 가득 붙이는 동물 스티커. 24색 색연필로 그려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들.


아이의 장난감은 엄마의 게이트 키핑에 의해 선택된 것들이지만, 그래서 엄마와의 추억이 함께 한다. 자기 전에 누워 함께 천장을 바라보며 저건 달이네, 별이네, 토끼네 하며 떠들었던 순간. 흰 도화지에 마스킹 테이프와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고 그 위에 색연필로 온갖 그림을 그리며 놀던 시간들.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던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나도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다.



어린이집에서 올려주는 키즈노트를 보면, 엄마 없이도 즐거운 기억을 쌓아가는 아이의 모습이 있다. 요즘 우리 아이는 흔들말이나 자동차 장난감 위에 올라가는 걸 좋아한단다. 친구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웃기도 하고, 선생님이 노래를 불러주면 신나서 몸을 흔들기도 한다고.


엄마가 모르는 즐거운 추억과,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나는 건 조금 서운하지만 그래서 나는 궁금하다. 앞으로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추억하게 될지. 앞으로 네가 좋아하게 될 모든 것들이 나는 궁금해진다.


엄마의 욕망만이 가득했던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 너는 못 본 체하고 다시 좋아해 줄까. 내년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에는 네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줄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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