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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Feb 13. 2022

증조할머니를 웃게 만드는 것은

구순이 가까운 우리 할머니의 컨디션이 급격히  좋아졌다. 새해부터 담낭염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로, 생활 전반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게 됐다. 스스로 걸을 수도 있고, 식욕도 돌아왔지만 할머니는 끊임없이 먹을 것을 달라 외쳤다. 방금 그릇을  비웠음에도   사람들은 사람을 굶긴다며 타박을 했다.


우리 가족들은 일시적인 섬망 증상일 것이라 애써 믿었지만 실제로 할머니를 마주하니 이제는 이전의 할머니로 돌아올  없음이 느껴졌다. 이전의 총기 어린 눈빛이 없고 어제 일은 고사하고 방금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나는 오랜 친구를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친정에 가면 할머니 옆에 나란히 누워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 잠들곤 했다. 대화 소재는 할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나, 아빠와 고모들의 어린 시절, 사촌들의 근황이었다. 둘째 고모는 생일이 명절과  겹쳐서 서운해했다는 이야기, 아빠가 쥐를 무서워하자 동생인  고모가 대신 잡아주었다는 이야기, 우리가 어릴  할머니와 밭에 나가 옥수수를 수확하던 이야기, 나와 동년배인 사촌이 아직 취업을  해서 걱정이라는 이야기. 할머니와  번이고 나눈 이야기지만 나는 처음 듣는 듯이 수다를 떨었고, 기억은 옅어도 아예 워지 않은 할머니의 이야기가 매번 재밌었다. 할머니의 주름지고 따뜻한 손을 맞잡고 새벽까지 떠들던 시간을 위해, 나는 친정에 가는 것이었다.


이전처럼 나는 수다를 떨고 싶어 할머니 옆에 달싹 붙어 누워, 지난주에 막내 고모가 왔었다며? 어땠어? 물으니 할머니는 시종일관 모르겠다, 기억  난다 하신다.  이미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할머니는 아무것도 기억이  난다 하니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사촌들의 근황으로 화제를 돌려보아도 할머니의 대답은 같았고 일방적인 대화 내내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결국 대화를 포기하고 천장을 보고 누워 잠들었다.



친정에  , 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던 우리 아기는 며칠 낮잠만 대여섯 시간을 내리 자더니 금방 회복이 되었다. 처음엔 낯을 가리던 우리 아기는  이곳저곳 탐색을 마치고 완벽 적응을 했다. 그중 아기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할머니의 방이었다. 온종일 먹을 것을 찾는 할머니 방에는 항상 먹을 것이 있었다. 이가 없는 할머니가  드실  있는 부드러운 과자나 달달한 음료, 사탕이 아기의 눈에 들었다. 아기가 할머니에게 ! ! 하면서 손을 내밀면 할머니는 작은 손에 과자를 쥐어주었다.



할머니먹을 것을 달라며 소리칠  "아기 과자밖에 없으니 그만 드시라" 하면 아기 것이든 뭐든 좋으니 가져오라고 하셨다. 할머니 간식이  떨어져 드릴 것이 정말 없어서, 아기 과자를   가져다 드리니 방금 드신 호박죽은 까맣게 잊고 콧노래를 부르며 과자를 드셨다. 할머니의 이상식욕에 지쳐갈  즈음 아기가 뒤뚱뒤뚱 할머니 방에 들어가 과자를 달라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손에 쥐고 있던 과자를 모두 아기에게 내주었다. 방금 전까진 아기 것이든 뭐든 달라고 외치던 할머니가, 아기에게만큼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망설임 없이 건넨다.


우리 아빠는 무엇을 해도 아기가 웃어주질 않았는데, 할머니는 얼굴만 들이밀어도 아이가 까르르 웃어댔다. 과자를 주셔서 좋았던 걸까, 엄마가 할머니 옆에 붙어있으니 좋아 보였던 걸까, 할머니가 온종일 부르는 노랫소리나 소리치는 것이 좋았던 걸까. 우리 아기는 누워있는 할머니 옆에 달싹 다가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같이 놀자고 손으로 팡팡 두드리기도 했다. 아기와 시간을 보낼 때만큼은 할머니의 이상식욕이 일시정지였다.



어두운 밤이 되면 할머니는 대뜸 자신의 침대가 따뜻하다고 했다. 이쪽에 이불도 많으니 어서 와서 옆에 누우라고 했다. 이전 같은 도란도란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는 어려웠지만, 가족들의 근황 정도는 들려드릴  있게 됐다. 아기와 자야 해서 할머니 옆에서  자던 날에는, 밤새  이름을 부르며 과자를 가져와라, 화장실에 데려가 달라 외쳤다.


할머니를 돌보는 것에는  가족의 노동이 필요했다.  없이 죽이나 수프를 끓여 드려야 했고, 간식이 떨어지기 전에 마트에서 새것을  와야 했으며, 하루에도  번씩 옷을 갈아입혀 드려야 했다. 말로 요구하시는  많으니 그걸 하나하나 대꾸하느라 바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모든 가족들이 지쳐갔다.



우리 아기는 아침에 눈을 뜨면 웃으며 곧장 할머니 방을 향해 걸어가고,  모습을  할머니는 "저기 작은 인간이 걸어오네"라며 웃으며 말했다. 온가족의 수발보다, 무엇보다 할머니에게 필요했던  작은 아기가 보였던 이유 없는 웃음이었던  같다. 작은 손길, 발길, 눈길. 이제는 정말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은  같다가도, 우리 아이가 지금보다 자라나 할머니에게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재밌는 일을 미주알고주알   있는 그날까지 버텨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온종일 소리치던 증조할머니를 한순간 웃게 만든 , 작은 아기의 웃음소리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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