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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un 20. 2022

치매 걸린 할머니 옆에 앉아 바라본 풍경


90세가 넘으신 우리 할머니의 치매 진행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이전에는 그저 최근 기억이 흐릿한 정도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배변 실수도 잦아졌고 건강 상태도 오락가락이다. 누가 오기로 했다느니, 저기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있다느니 환시를 보기도 하신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정신이 똘망해져 우리 아기 이름을 부르며 용돈을 주신다.



몇 년 전 할머니가 쓰러지신 이후 아빠와 엄마는 '가족'보다는 '간병인'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가장 큰 방과 편한 침대를 할머니에게 내어주셨고, 정확히 시간을 정한 건 아니지만 2교대 수준으로 돌아가며 할머니를 돌본다. 거동도 못 하실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호전되어 워커에 의존해 걷는 게 가능하고, 죽을 데워 드리면 혼자 드실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집 안에 계속 돌봐야 할 병자가 있다는 것은,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도 마음껏 못하고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도 쉽지 않아지는, 당연했던 일상과 행복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딸의 입장에서 항상 아빠 엄마가 안쓰러웠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잠 못 자고 할머니의 부름에 달려가는 아빠가 안쓰러워서, 아빠에게 물었다. 고모들이 할머니 보러 자주 안 오는 게 서운하지 않냐고, 아빠가 할머니를 온전히 책임지고 간병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아빠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이 어릴 적 할머니에게 너무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고. 평생 그렇게 사랑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지금 할머니를 돌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내 동생들은 나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에 서운해할 틈도 자신에겐 없다고. 그 말에는 지금 당장의 아픈 할머니 모습이 아닌, 할머니의 평생이 담겨있었다.




나는 자타공인 할머니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손주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대신 주양육자로서 날 키워주신 것이 할머니고, 지금 내 모습의 9할은 할머니가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할머니가 쓰러지셨던 몇 년 전에는 주말마다 서울에서 내려와 할머니 얼굴을 보고 갔고, 결혼한 이후에도 친정에 올 때면 항상 할머니 옆에서 잠들었다. 할머니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음을 알고 있었고, 언젠가 할머니가 떠나면 그 사랑을 돌려드리지 못했음에 슬퍼할 것을 알았기에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지금 나에게 최선은 뭘까. 아무도 보지 않고 있는 할머니의 시선을 함께 바라봐 줄 사람은 아닐까.




그래서 새삼스럽게 할머니의 방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온종일 방에만 계셨는데 문 닫고 누워서 주무시거나, 문 열고 앉아서 문 밖을 바라보는 것 둘 중 하나였다. 그때는 마침 할머니가 앉아계셔서 그 옆에 걸터앉았다. 할머니 방의 문은 액자와도 같았다. 밥솥과 냉장고가 있는 부엌, 항상 같은 풍경이다. 그 풍경이 너무 고요해서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거나, 라디오를 틀어 노래로 텅 빈 풍경을 채우셨나 보다. 도저히 그 고요함을 견디지 못할 땐 아들이나 며느리를 부른다. 그럼 지친 얼굴의 아들이 달려와서 무엇이 필요하냐 물을 것이다. 할머니는 밥을 달라거나 화장실에 데려가 달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손 닿는 곳에 먹을 것이 있고, 화장실도 혼자 걸어갈 수 있다. 그저, 텅 빈 액자를 누군가의 얼굴로 채우고 싶으셨을 것이다.




내가 친정에 있는 동안에는 집에 항상 사람이 북적였다. 우리 아기와 언니네 아기까지 함께 내려와, 항상 아기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목소리가 집을 채웠다. 할머니 눈에는 흐릿한 형태였겠지만 그것이 작은 발로 바지런히 움직이는 어린 아기였음을 짐작하셨나 보다. 그럼 할머니는 자신이 먹던 과자나 사탕으로 아이들을 꾀어낸다. 우리는 '할머니 그거 아기 주지 !'라며 타박했지만 할머니는  들은  아기의 작은 손에 사탕을 준다. 그러면 아기들이 한참을 할머니 곁에서 서성이며 할머니의 액자  풍경을 시끄럽게 채운다.


지금까지는 배변 실수하는 할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워커 밀고 가면 혼자서도 충분히 화장실을 가실 수 있는데, 데려가 달라고 우리를 부를 시간에 얼른 가시면 될 텐데. 왜 매번 속옷부터 바지까지 다 적셔가며 우리를 기다릴까.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바지를 갈아입혀 온종일 세탁기, 건조기가 돌아가고 더 이상 갈아입힐 옷도 없어 엄마가 매번 새 바지를 사 와야 하는데.


누구보다 자존심 강한 할머니도 그렇게 바지를 적시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며느리에게 속옷을 꺼내 달라 하는 말씀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으리라. 그럼에도 자꾸만 사람을 찾는 것은 자신의 풍경이 너무나 고요해서, 언제까지고 눈앞의 액자가 그대로일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간병인이 아니라 북적이는 눈앞의 풍경이었나 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가 갑자기 떠나시면 어쩌지 무서워서, 할머니의 죽음 이후를 혼자 시뮬레이션해보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마음은 불안했고 매번 슬픔을 미리 예습했다. 그런데 이번에 할머니 옆에 앉아 할머니와 같은 풍경을 보고 나니 마음이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 이제는 언제 할머니가 떠나셔도 당황하지 않고, 막연히 울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할머니가 아들과 며느리, 손녀, 그 손녀가 낳은 아기들까지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했는지, 그리고 그들도 할머니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확실하게 알았으니까. 내가 떠나고 엄마 아빠가 출근하면 할머니의 풍경은 다시 고요해질 것이다. 할머니의 액자는 그렇게 한동안 또 같은 풍경이겠지만, 가끔씩 사람 쬐어가며 나름의 즐거움 찾아 지내셨으면 좋겠다. 사탕을 드실 때면 할머니의 사탕을 탐내던 작은 아기들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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