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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린 Mar 01. 2022

광야의 참뜻

믿음을 세워가다




광야…

광야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광야라고 할 때 외롭고 막막한 길,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수없이 넘어지고 무너지는 길을 머릿속에 그리곤 한다. 색깔로 표현하자면 짙은 회색, 혹은 뿌연 갈색. 계절로 표현하자면 추운 한겨울이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린 그 길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길이자 하나님이 연단하시는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요셉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광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광야는 언제였을까?” 물었다.


답은 “아직 없다”였다. 하나님이 아직 나를 연단하지 않으신 걸까? 앞으로 광야길이 오는 것일까? 순간의 영적 두려움. 나에게 아직 찾아오지 않은 하나님의 광야 훈련에 대한 의문.


그리고 머지않아 새로운 시선으로 이 광야길을 바라보게 되었다.




요셉은 17세 어린 나이에 형들에게 버려지고 애굽으로 팔려갔다. 보디발의 노예로 일하고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고 술 따르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었으나 잊혀 한참을 감옥살이하며 지냈다. 이 이야기를 보며 사람들은 요셉이 애굽에서 지나온 약 13년의 시간을 ‘광야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애굽 의총리가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연단하신 시간, ‘광야의 시간’이다.


창세기 37장부터 46장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야곱과 그의 자손들을 고센 땅에 정착시키기까지 그 스토리를 쭉 보니 요셉이 지나온 광야길은 내가 생각한 광야길과는 많이 다르다. 요셉의 광야길은 밝아 보인다. 감사로 가득하고 따스함이 느껴진다. 색깔로 표현하자면 밝은 노랑, 계절로 표현하자면 봄과 같다.


요셉을 인터뷰한다면 “당신 인생의 광야는 언제였나요?”라고 묻는다면 인자하고 깨끗한 미소로 “광야요?”라고 물을 것만 같다.


그에게는 광야길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 모든 순간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감사와 찬송, 최선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요셉에게는 우리가 보기에 광야와 같아 보인 그 13년의 시간도 그에겐 광야가 아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광야라는 것도 인간의 눈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아닐까?




God is good, all the time.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 믿음을 갖고 살아가면 광야길은 광야길이 아니다. 그저 하나님이 그 비전을 이루시기 위해 정결한 백성을 기르시기 위한 연단의 시간일 뿐.


광야가 어둡지 만은 않다. 광야가 광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내 삶의 모든 순간과 걸음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서 바라본다면 그저 또 다른 하나님의 스토리의 챕터일 뿐 내 인생의 대단한 흑암기나 고난과 역경의 시기가 아닐 수도 있다.


‘광야’ 또한 인간적인 우리의 마음과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하나님의 섭리를 내 삶의 스토리 안에 끼워 맞춰 이해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광야, ‘겨울의 광야’는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시기가 아닐까?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기에 공허함이라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시기.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해 갈팡질팡하며 좌절을 맛보는 시기.


반대로 광야의 본래 의미는 ‘봄의 광야’를 뜻하고 있지 않을까?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연단하시는 축복의 시간.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고 겸손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따스함의 시간. 여름이 되어 푸르게 무성하게 자라나기 위해 준비되는 시간.




‘광야’의 참뜻을 묵상하게 된다.


누군가가 말하는 ‘광야’. 나에게 이미 왔을 수도, 지금 지나고 있을 수도, 앞으로 지나게 될 수도 있다. 그때가 언제이든 “당신의 광야는 언제였나요?”라는 질문에 “광야요?”라고 되물을 수 있기를.




Book Info:

Bible, “Genesis”, Chapter 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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