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와 함께 성장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
우리 아파트 바로 뒤편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10층짜리 아파트의 4층까지 자라있는 그 나무를 볼 때면 저것이 고작 한 뼘씩 커져 나간다는 것이 누가 장난으로 던진 말처럼 느껴졌다. 오죽 컸으면 동네 주민들은 우리 아파트를 '느티나무 아파트'라고 불렀다. 3층이었던 우리 집은 여름이면 매미의 우렁찬 울음이, 가을이면 바삭해진 낙엽들이 우리 집에 들어오고자 창문을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저 나무 뽑아버려야지, 하면서도 빗자루를 들고 나가 나무 밑을 깔끔하게 쓸곤 했다. 아파트로 온 첫날 뒤편의 느티나무를 보며 아빠는 말했다.
- 너는 내 성공이다.
우리 가족이 이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아파트에 온 것은 내가 7살이 되던 해였다. 이곳엔 아빠가 몇 년간 횟집을 하며 흘린 구슬땀이 서려 있었다. 그런 만큼 아빠는 우리 가족 중에서도 유독 뒤편의 느티나무를 아꼈다. 늘 다른 집도 아닌 우리 집 뒤에 이 나무가 있는 것이 특별한 일이라고 여겼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태우다가도 방충망을 열어 느티나무 잎을 꼭 한 번씩 만지곤 했다. 당시 사춘기라 예민하던 누나가 모기 들어온다고 잔소리하면 그제야 방충망을 닫았다. 옅은 미소와 함께 잎을 만지던 아빠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했다. 어릴 적엔 저 나무가 뭐길래 아빠가 저렇게 좋아할까 늘 궁금했었다.
그랬던 나는 언젠가 엄마가 방에 있는 사이 아빠처럼 창밖의 느티나무 잎을 향해 손을 뻗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홉 살 즈음의 나는 유독 키가 작은 편이었고, 있는 힘껏 까치발을 들어야만 했다. 쥐가 와 굳어오는 발가락도 무시한 채 나는 잎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힘겹게 내 손끝과 잎이 마주한 순간 내 몸은 창문 밖으로 기울었고, 그대로 집 베란다의 창틀을 넘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내 왼손 가운뎃손가락 끝을 스친 나뭇잎의 감촉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것은 특별할 것 없는 그냥 나뭇잎이었지만, 뭔가를 잡고자 힘껏 손을 뻗었던 것은 9살 인생에서는 꽤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때 엄마는 방에서 나오다가 창밖으로 떨어지는 나를 두 눈으로 보았다. 엄마는 펑펑 울며 1층에 기절해있던 나를 데리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다행히 나는 팔과 다리에 난 찰과상 말고는 별 이상 없다고 했다. 밑에 있던 느티나무 가지들이 내가 떨어지는 것을 받아준 덕분이었다. 상처만 치료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다. 백미러로 보이는 퉁퉁 부은 눈과 아직 떨림이 멈추지 않은 채로 운전대를 굳게 쥔 두 손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엄마의 손은 그날 나를 재우려 내 배를 토닥토닥했던 순간까지 떨고 있었다. 그 떨림은 엄마의 손에서 나의 심장으로 전해졌다. 그제야 심장이 쿵쾅거렸다. 몇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던 그 순간보다 지금이 더 심장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도 말을 듣지 않았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 미안해. 엄마.
그때 이후로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철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아빠만큼 느티나무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관심도 없던 낙엽을 쓸기도 하고 빨래를 널다가도 한참을 느티나무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것이 아들을 잃을 뻔한 원망 때문인지, 아들을 구해준 고마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엄마 본인도 헷갈렸을 것이다.
어찌 됐건 엄마는 그 사고가 있고 나서 나를 옭아맨다 싶을 정도로 애지중지했다. 그런 엄마의 편애에 질투가 났는지, 6살 위 우리 누나의 사춘기는 꽤 강렬했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가 돼도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툭하면 엄마, 아빠와 말다툼을 하곤 문을 쾅 닫는 게 3일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나는 누나가 문을 쾅 닫을 때마다 덩달아 흔들리는 창문 너머의 나뭇잎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누나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누난 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휴대폰을 보며 즐겁게 웃다가도 엄마나 아빠가 말을 걸면 순식간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떤 날은 나만 편애하던 엄마와 대판 싸우고 집을 나가기도 했다. 그날 누나는 눈물을 머금고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 쟤만 배 아파서 낳았어?
그 말과 함께 뛰쳐나가는 누나를 엄마는 차마 붙잡지 못했다. 나 역시 현관문이 쾅 하며 닫힐 때까지 누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날 밤을 새우며 누나를 찾아다녔지만, 누나는 아침이 되자 제 발로 돌아왔고 호되게 혼났다. 나중에 그날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누나는 집 바로 뒤 느티나무에서 하루를 잤다고 털어놓았다. 멀리 가기는 무섭고 집에 가기는 싫고 그래서 그냥 느티나무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고 했다. 생각보다 아늑하다나 뭐라나. 어쨌든 그 사건이 지나고 누나는 사춘기가 끝나갔는지 갑자기 말이 통 없어졌다. 부쩍 감성에 젖어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늘었다. 그즈음에 누나가 쓴 '느티나무'라는 시를 누나의 공책에서 발견한 적도 있었다.
느티나무
느티나무야
너는 왜 우리 집을 감싸고 있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너는 왜 우리 집을 감싸고 있니
너의 가냘픈 가지와 잎들을 보면 불안하다가도
너의 튼튼한 기둥을 보면 안심이 되기도 해
느티나무야
언젠가는 우리가 너를 감싸 줄게
그때까지 잘 부탁해
아직도 누나에게 이 시 얘기를 꺼내면 대답보다 손과 발이 먼저 오곤 했다. 내가 보았을 땐 그 정도로 오글거리는 시는 아니었지만, 나는 누나가 이 시가 아니라 그 시절에 대해 몸부림을 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혼란스러웠던 시간들 덕분에 나의 사춘기를 누나는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다만 나의 사춘기는 누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산되었다. 15살 때 만났던 첫사랑이 그것의 시작이었다.
혜주는 같은 반, 옆자리였다. 그때는 호르몬의 분비가 너무 왕성해 지나가는 낙엽에도 설레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혜주의 존재 자체가 나에겐 낙엽 같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설렘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숫기가 없던 나는 짝꿍이 된 지 2주가 지나서야 혜주와 첫 대화를 했다. 그때 나는 고작 몇 마디가 오고 간 그 대화를 통해 첫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긴 머리에 쌍꺼풀이 없지만 큰 눈, 올망졸망한 코와 입, 그녀의 모든 것이 예뻐 보이던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수업엔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고, 자려고 누우면 혜주 생각만 났다. 그러나 아무런 진전 없이 자리는 한 달 만에 바뀌었고, 그때부터는 고달픈 짝사랑이 시작됐다. 그녀와 잠깐 손 인사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던 내가 용기를 낸 것은 혜주의 발표를 듣고 나서였다. 때는 국어 시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발표할 사람을 찾자 혜주가 손을 번쩍 들었다. 혜주는 '내가 좋아하는 나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또박또박 발표했다. 나는 그 발표를 듣고서야 식물원으로 현장학습을 간 날, 그녀가 활짝 웃으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던 것이 떠올랐다. 그 순간 같이 떠오른 것은 우리 아파트 뒤편에 있는 그 거대한 녀석이었다. 덕분에 용기가 난 나는 혜주의 발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면 말을 걸기로 마음을 먹었다. 심장은 터질 것 같았고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상황을 그려갔다. 하지만 종일 망설이다 보니 어느새 하교 시간이었다. 혜주는 천천히 여유롭게 가방을 싸고 있었고, 나는 이미 다 싸둔 가방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녀가 가방을 다 쌀 때까지 기다렸다. 가방을 다 싼 혜주가 교실 앞문으로 나가려고 하자 나는 그녀를 불렀다.
- 이혜주.
- 응? 왜?
- 너 나무 좋아한다며.
- 맞아.
여기까지는 예상한 대로였다. 근데 그다음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 종일 그 말만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기다림은 이미 하얘진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놓기까지 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아무 말이나 막 뱉고 말았다.
- 우리 집 느티나무 아파트야.
말해놓고 망했다 싶었다. 하지만 혜주의 반응은 꽤 긍정적이었다. 떨려서 대화 내용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처음 내 말을 듣고 웃음이 터졌던 그녀의 얼굴과 그녀가 우리 집에 나무를 보러 오기로 한 것만큼은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약속을 잡은 주말이 올 때까지 나는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종일 콧노래를 부르고 발걸음은 사뿐사뿐 가벼웠다. 엄마가 나를 보고 덩달아 기분 좋아할 정도였다. 주말이 왔을 때는 손발이 마구마구 떨렸다. 찌릿찌릿한 감각이 온몸에 있었다.
- 딩동.
초인종 소리가 잠잠해지기도 전에 나는 문을 열었다. 혜주가 서 있었다. 혜주는 엄마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는 소파 위에 앉았다. 엄마는 친구 온다고 사둔 밋밋한 다과를 앞에 차려놓고는 재밌게 놀라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혜주와 다과를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의 느티나무에게 혜주의 관심을 모두 빼앗겼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나무를 볼 땐 더 크고 동그래졌다. 순간 그 모습이 예뻐서 나무에게 질투가 날 뻔했다. 우리 집 느티나무에 정신이 팔린 혜주는 가지런히 놓인 베란다의 슬리퍼도 마다한 채 맨발로 베란다 창문에 기대고는 물었다.
- 만져봐도 돼?
내가 끄덕이자 그녀는 손을 쭉 뻗어 나뭇잎을 만졌다. 작은 키였지만 어렵지 않게 닿았다. 어느새 나무가 자라 창문과 가까워진 것이었다. 나무는 혜주의 손길에 잎을 격하게 살랑거렸다. 오랜만에 만난 누군가의 손길이 마냥 반가운 듯했다. 혜주는 나뭇잎을 몇 번 툭툭 건드리고는 방긋 웃으며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말했다.
- 너 느티나무의 꽃말이 뭔지 알아?
느티나무에 꽃말도 있었구나.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자 그녀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 운명이야.
혜주는 나와 좀 더 나무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다음 주, 그녀는 말없이 전학을 갔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며칠을 울고불고 난리 쳤다. 혜주가 전학을 간지 일주일쯤 된 날에는 울다가 지쳐 거실 소파에 기대 누워 있었다. 누워서 멍하니 창밖에 느티나무를 바라보다가 나는 홀린 듯 베란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끝이 닿았던 잎에 손을 뻗었다. 나도, 나무도 꽤 자라 생각보다 더 가볍게 닿았다. 잎과 맞닿은 나의 손 너머로 느티나무꽃이 피어있었다. 그 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느티나무꽃은 원래 그랬다. 그게 잎인 듯 꽃인 듯 잎의 구석에서 자그맣게 피어나곤 했다. 그것은 너무 작아서인지 손이 닿지 않았다. 힘껏 뻗어도 안쪽의 꽃만큼은 닿지 않았다. 그 꽃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느티나무의 꽃말이 운명인 거구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