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와 함께 성장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
그렇게 나의 감정을 쏟아부었던 사춘기가 끝나고 남은 건 누나의 놀림 정도 말고는 없었다. 첫사랑이 지나갔기 때문인지 성장기였기 때문인지 나는 그날 이후로 더 자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개의 사춘기가 끝나면서 한동안 집은 평화로웠다. 아빠는 횟집을 그만두고 삼겹살집을 시작했고, 엄마는 17살의 내가 전보다 더디게 커가는 것을, 나는 느티나무 잎이 점점 더 창문과 가까워지는 것을 구경하며 지냈다. 누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꽤 괜찮은 회사에 다녔다. 정든 집을 나가면서 누나는 창문으로 느티나무 잎 하나를 뜯어 챙겼다. 나중에 집에 놀러 가보니 그 잎은 액자 안에 놓여 거실 벽에 걸려 있었다. 집을 지켜줄 것 같다며 걸어 놓았다고 했다. 나는 누나가 적었던 시 이야기를 또 꺼낼까 하다가 혹시 맞을까 말을 도로 삼켰다.
삼겹살집을 시작한 아빠는 전보다 더욱 바빠졌다. 10년 동안 해오던 일을 바꾸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얼굴 보는 날이 거의 없었고, 엄마마저 삼겹살집에서 일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아빠는 밤늦게 들어와 가끔 느티나무 사진을 어색한 손동작으로 찍어갔다. 그런 날이면 아빠의 프로필 사진은 어김없이 새로 찍은 느티나무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상태 메시지에는 늘 '성공' 두 글자가 한자로 적혀 있었다. 여전히 느티나무는 아빠에게 젊은 날의 성공을 떠올리게 했다. 그에 반해 엄마는 오랫동안 느티나무를 바라보는 일이 줄었다. 내가 떨어지는 것을 떠올려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어떤 상처든 시간이 지나면 아무는 것이니까.
엄마와 아빠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덕분에 나는 예전엔 없던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한동안 친구들을 부르기도 하고, 혼자서 게임도 하기도 했지만 그런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고독함에 혼자 책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내가 공부를 시작하자 엄마와 아빠는 아들 뒷바라지는 못할 망정 삼겹살집에만 있는 것을 미안해하곤 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공부가 잘된다며 오히려 둘을 위로했다. 이젠 팔을 다 뻗지 않고도 나뭇잎을 쓰다듬을 만큼 자란 나였다.
공부를 시작한 나는 늘 느티나무가 보이는 거실에서 공부했다. 녹색을 쳐다보면 눈의 피로가 풀린다, 라는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을 써먹기 위해서였다. 나중엔 그것이 눈의 피로를 풀 때 먼 산이나 나무를 바라보던 것에서 온 속설임을 알았지만, 심리적 안정에는 도움이 된다는 말에 다시 혹해 계속 거실에서 공부했다. 나무에서 들리는 온갖 벌레 소리와 잎사귀 소리는 시끄럽기는 했지만 그다지 방해되진 않았다. 나와 몇 년을 함께해온 그 소리들은 백색소음과 다름없었다. 소리에 녹색이 가득했으니 녹색소음이라고 해야 하나.
가을이 될 무렵에 나는 느티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을 책갈피로 쓰기도 했다. 크기도 딱 들어맞는 데다가 책의 습기도 잘 잡아주었다. 낙엽을 꽂아둔 책은 시간이 지나 펼치면 낙엽이 겹쳐있던 페이지가 단풍색으로 희미하게 물들어 있곤 했다. 나는 그 자국이 선생님께서 찍어준 참 잘했어요 도장처럼 책에 쌓여가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 보면 나뭇잎 냄새도 어느새 책에 깊게 배어 책가방을 열면 가을의 내음이 코를 스쳤다.
그러던 19살의 8월, 평소 같으면 새파란 잎을 뽐내고 있을 느티나무는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잎은 시들어 바닥에 수북이 쌓였고, 겨울이 온 것처럼 앙상해진 가지는 푸석푸석해져 톡 하고 건들면 가루가 될 것 같았다. 나무의 껍질 역시 쩍쩍 갈라져 오랜 가뭄에 시달린 땅처럼 보였다. 한껏 쪼그라들어버린 나무를 보고 있으면 얼마 안 남은 희미한 생명력마저 곧 꺼질 듯했다. 내가 고3이 되어 학교에 늦게까지 남기 시작한 지 고작 몇 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나만큼은 슬퍼하지 않았다. 다들 바쁜 일상에 치여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아파트 관리인 아저씨와 함께 나무를 둘러보았다. 나는 나무 이곳저곳을 확인하는 관리인 아저씨의 뒤에서 말없이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이 집에 와서 지금까지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문득 나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던 내가 미웠다. 과연 내가 우리 가족에게 서운함을 느낄 자격이라도 있나, 라는 생각을 할 때쯤 관리인 아저씨가 급하게 나를 불렀다.
- 303호 학생! 와봐요. 이거 뭐 같아요?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은 나무의 밑동이었다. 나는 그곳을 유심히 보고는 이내 경악했다. 그것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뚫어놓은 듯한 구멍들이었다. 5㎝도 안 되는 작은 구멍들이었지만 마치 사람의 몸에 뚫린 구멍을 보는 듯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관리인 아저씨는 말을 이었다.
- 요즘, 이 주변 나무들이 죽어가서 확인해보면 다 이런 구멍이 있네. 참. 왜 이런 짓을 하는지.
- 경찰에는 신고해보셨어요?
- 경찰이 고작 나무에 구멍 난 거 신경이나 쓰겠어요? 저번에도 그냥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가더만.
- 그래도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너무 아끼는 나무라서요….
관리인 아저씨는 혀를 몇 번 차더니 나의 어깨를 토닥토닥해주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들어 경찰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경찰에게 이곳을 '느티나무 아파트 뒤'라고 설명하는 관리인 아저씨의 말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순찰차 한 대가 아파트 뒤편에 멈췄다. 경찰 두 명이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관리인 아저씨처럼 혀를 몇 번 찼다. 경찰은 요즘 들어 이 주변에 벌써 30그루가 넘는 나무가 죽어서 안 그래도 조사에 들어가려던 참이라고 했다. 들어보니 모두 누군가가 나무의 밑동에 전자 드릴 같은 도구로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제초제를 집어넣는 수법이었다. 이미 25그루가량의 수목이 그 누군가에 의해 고사한 상태였다. 누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경찰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나무 주변에는 CCTV가 설치되어있지 않아 범인의 윤곽조차 잡기 힘들다고 한탄했다.
경찰들과 관리인 아저씨가 돌아가고 나는 아파하는 느티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이 나무에 몸을 기대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자연스레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동네 친구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며 놀던 때가 떠올랐다. 7살이었던 나는 일부러 여러 번 술래를 맡았다. 나무에 팔을 기대 얼굴을 묻으면 나무의 시원함과 갈라진 껍질의 감촉이 못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의 느낌과 등으로 전해지는 지금의 감촉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것이 나를 북받쳐 오르게 했다. 나는 다시 술래를 맡은 것처럼 나무에 팔을 올리고 얼굴을 묻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어릴 때완 다르게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경찰의 조사가 들어가고 시에서도 진상 조사와 함께 나무 살리기에 나섰다. 며칠에 한 번씩 시에서 사람이 와서 영양제를 넣어주었다. 하지만 나무는 더 나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나아질 기미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했지만, 주말이면 병문안 가듯 나무를 찾았다. 그러고 나무에 등을 기대 멍을 때리곤 했다. 지난 12년간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을 시간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면 보이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결국 조금 흘려버리곤 했다.
엄마는 사건 얘기를 듣고 나서는 심각성을 알았는지 나무를 가끔 예전처럼 쳐다보곤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너 떨어졌을 때. 그때 내가 너를 혼자 두지 않았으면, 네 아빠가 평소에 나뭇잎을 만지지 않았다면, 그 가지의 잎이 너의 팔이 닿을 거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
이젠 그때를 이야기해도 엄마는 손을 떨지 않았다. 떨지 않는 그 따뜻한 손으로 나의 손을 잠시 포근하게 쥐고는 엄마는 계속 말했다.
- 근데 그랬으면 얘가 죽는 게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을 거 같애. 얘가 너 죽일뻔했다가 살려줬을 때부터 나 혼자 계속 얘가 밉다가도 고맙고, 고맙다고도 또 밉고. 그러다가 미운 정이 들어버렸어. 미운 정이 더 떼기 힘든데. 이렇게 가면 엄마 서운해서 어떡하냐.
엄마는 다시 나무를 빤히 바라보다가 슬며시 말했다.
- 이제 우리 집 창문은 1년 내내 겨울 같겠다.
나는 그 말에 차마 대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미 차디찬 겨울이 온 듯 녹색을 잃어버린 가지를 바라보며 나는 엄마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맘때 엄마는 삼겹살집 일이 안정되면서 집에 오래 있게 됐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나무를 잘 챙겨달라고 부탁했고, 엄마는 곧잘 들어 주었다. 한편 아빠는 여전히 얼굴이 기억이 안 날 때쯤 마주쳤다. 한집에 살면서 이 정도로 마주치기 힘들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웬일로 아빠를 오랜만에 마주친 날에 아빠는 방충망을 열고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웬일로 주말 낮에 있는 아빠가 반가웠지만, 그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나는 오랜만에 나뭇잎을 만지던 아빠의 모습이 생각났다. 하지만 뻗으면 닿을 곳에 가지가 있었음에도 아빠는 왜인지 손을 뻗지 않았다. 그날 아빠는 갑자기 나를 데리고 소고깃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동안 챙겨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직접 집게와 가위를 들어 고기를 구웠다. 고기를 느긋하게 구우며 아빠는 우리 집의 느티나무를 처음 본 날의 이야기를 했다.
- 네가 한 1살, 2살쯤 됐을 때였을 거야 아마. 네 누나는 학교 가고 셋이서 이사 갈 집을 찾으려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녔다? 그때는 지금 집보다 훨씬 좁고 싼 집을 구하고 있었어. 형편이 안돼서. 어쨌든 집 구하면서 막 돌아다니는데 딱 그 느티나무가 보이는 거야. 딱 느낌이 왔지. 저 집이다. 저 집으로 가야겠다.
- 지금 우리 집? 왜?
- 그냥 그런 느낌이 있잖아. 한 번에 오는 촉. 근데 거기는 우리 가진 돈으로는 못 간다는 거야. 그래서 너희 엄마한테 부탁했지. 몇 년만 기다려주지 않겠냐고. 내가 좀 더 노력해서 저기 저 집으로 이사 보내주겠다고. 그랬더니 네 엄마가 뭐라는 지 알아?
- 뭐랬는데?
- 죽어도 싫대. 자기는 지금 집에서 더는 못 살겠대. 나 횟집하는 동안 너네 엄마가 그 좁은 집에서 고생 진짜 많이 했거든. 지긋지긋할만 하지.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내가 고집부려서 그 집을 보러 가긴 갔는데….
아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불판 위에 있던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 갔는데?
- 거길 가니까 네가 그 커다란 나무를 보면서 빵끗빵끗 웃는 거야. 네가 한창 걸음마 뗄 때였는데 막 나무로 걸어가 안기고,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지. 그래서 네 엄마도 넘어갔잖아. 네가 너무 좋아해서.
과연 엄마도 내가 해맑게 웃던 그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창밖으로 떨어지던 순간이 저 기억을 덮은 걸까.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멍하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 나는 느티나무를 회상하는 엄마와 아빠, 각자의 다른 추억 속에 모두 내가 있다는 것이 조금 먹먹했다. 이야기를 마친 아빠는 나에게 말없이 고기 한 점을 올려줬다. 그러면서 말했다.
- 너 그때처럼 빵긋 웃는 거 보려고 아빠가 일 열심히 했다. 근데 지금은 내가 뭘 하는지 참…. 아들도 못 챙기고.
아빠의 눈은 잠시 붉어졌지만 연기 때문인 척 손을 허공에 휘적거렸다. 이후 아빠는 느티나무 사진을 어느샌가 프로필에서 내렸다. 상태 메시지도 '가족' 두 글자로 바뀌어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