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와 함께 성장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
나 때문인지, 나무 때문인지 엄마 아빠 모두 집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둘은 소식이 뜸한 누나 얘기를 가끔 꺼냈다. 주로 연락도 없는 나쁜 년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한창 바쁠 때지 않냐며 누나의 변호를 하긴 했지만 나 역시 서운하기는 했다. 한편 나무는 누나를 제외한 세 명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나무에 비해 일찍 발견해 오래 살아 있는 편이라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이전보다 나빠졌다면 나빠졌지, 좋아졌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영양제가 없다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나무의 상태를 볼 때마다 애꿎은 누나가 자꾸 미웠다. 느티나무로 시도 썼으면서, 나뭇잎을 가져가 집에 걸어두기도 했으면서 연락 한 통 없다니. 성격은 좀 그래도 정이 많던 누나였다. 하지만 최근엔 의무로 보내는 듯한 문자 몇 통 말고는 무려 4달 동안이나 연락이 없었다. 그런 누나는 수능이 고작 20일 정도 남았을 때가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 동생아. 수능 얼마 안 남았더라.
- 그런 거 없으면 연락 안 할 거냐.
- 바빴어.
- 바쁜 게 문제야? 엄마가 말했다며. 우리 집 느티나무 죽어가고 있는 거. 누난 걱정도 안 돼? 어떻게 그래?
수화기 너머로 누나의 차가운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순간 너무 몰아붙인 거 같아 조금 미안했다. 누나는 잠시 후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 난 놀아? 너 내가 회사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받고 있는지 알기나 해? 넌 누나 걱정은 안 하니? 그깟 나무 걱정이나 할 시간에….
누나는 스스로 말을 멈추었다. '그깟 나무'라는 말이 심했다고 생각해서였다. 나는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날 이후로 누나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 또한 엄마 아빠를 통해서 누나의 소식을 간간이 들을 뿐이었다.
수능이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 나는 나무에게 인사하러 갔다. 멀리서 보아도 나무는 정말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근데 웬 할아버지가 나무에 소주를 붓고 있었다. 나이가 꽤 지긋해 보였지만 아직 정정했다. 내가 옆에 다가가자 할아버지는 303호 막내구나, 라고 하면서 나를 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203호라고 말하며 내가 어렸을 때 하도 뛰어다녀서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다고 핀잔을 주었다. 내가 죄송하다고 하자 금세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 그나저나 이 나무가 나보다 먼저 갈 줄이야.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하고 싶었지만, 나무의 몰골을 보면 차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 몰골을 아래에서 위로 훑더니 할아버지는 갑자기 옛날에 자신이 살던 마을 이야기를 해주었다.
- 옛날에 말이다. 내가 너만 할 때 우리 마을 정자 옆에 이것보다 더 큰 느티나무가 있었어. 그땐 마을 사람들끼리 우리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불러서 제도 지내고 그랬었다. 마을의 악귀를 막아달라고 말이야.
나는 조용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할아버지는 기침을 몇 번 하고 말을 이었다.
- 근데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 녀석도 그냥 마을의 주민처럼 대해줬으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나쁜 것들 온몸으로 막지 말고 그냥 정자에 앉아서 같이 김 씨 아저씨, 이 씨 아줌마, 박 씨 할머니랑 탱자탱자 이야기하면서 말이야. 편안하게 살게 둘 걸. 이 나무처럼.
- 할아버지께서 볼 때 이 나무는 편하게 살았어요?
- 그렇고 말구. 평생을 이 집과 떠들고, 저 집과 장난치고. 아주 호상이야. 호상. 내 이렇게 재밌게 살다 가는 나무는 처음 본다.
그렇게 말하곤 할아버지는 남은 소주병을 모두 비웠다. 쏟아지는 소주의 향이 유독 짙었다. 바닥까지 병을 탈탈 털어낸 할아버지는 자리를 떠났다. 호상. 두 글자를 되뇌다가 나도 걸음을 옮겼다.
수능 당일이 되었다. 나는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고사장에 발을 디뎠다. 긴장한 수험생들의 한숨이 자꾸 들렸다. 여기저기서 뱉은 한숨들이 가라앉아 고사장의 분위기는 한층 더 무거웠다. 나 역시 가득 긴장한 탓에 심장이 마구 뛰었다. 긴장한 탓에 목까지 빳빳해진 나는 스트레칭을 하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 창밖으로 운동장 옆 앙상한 나무 한 그루와 눈이 마주쳤다. 가지의 모양만 봐도 그것이 느티나무라는 것을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나무는 잠시 잎을 내려놓은 상태였지만 곧 푸르게 돋아날 잎들이 벌써 눈앞에 생생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고 나무를 다시 보니 우리 집 느티나무와 어딘가 닮은 것 같았다. 가지의 솟아난 방향도, 땅으로 뻗은 뿌리의 모양도, 세월이 남긴 듯한 껍질의 굴곡도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마치 나를 응원하러 온 우리 집 느티나무처럼 보였다. 그 힘든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응원을 와주다니. 나는 자신 있는 미소로 그 응원에 답했다. 덕분에 긴장은 조금씩 풀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시험 준비 종이 학교에 울려 퍼졌다.
시험을 마치고 교문 밖으로 나왔을 땐 엄마 아빠가 교문 앞에 마중 나와 있었다. 내가 차에 오르자마자 아빠는 먹고 싶은 거 다 사주겠다며 차의 핸들을 힘차게 잡았다. 하지만 나는 고민도 없이 집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수능을 끝낸 후련함도 미룰 만큼 중요한 게 있었다. 아빠도 그게 무엇인지 안 듯 곧장 핸들을 돌렸다.
우리는 다 말라버린 느티나무를 마주하고 섰다. 셋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없이 몇 분을 그렇게 있었다. 아빠는 침묵을 깨며 다시 한번 내가 이 나무로 아장아장 걸어가 안겼던 때의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손뼉을 치며 맞아 그랬지, 했다. 그리고 약속했다는 듯이 내가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들을 시작으로 나무와의 여러 가지 추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빠가 술에 취해 이 나무에 기대 잠들었던 것, 엄마가 낙엽을 쓸다가 괜히 짜증이 나 이 나무를 발로 찼던 것, 넷이서 나무 밑에서 눈을 쓸다가 눈싸움을 했던 것…. 12년 동안의 추억은 말해도, 말해도 모자랐다. 우리는 마치 장례식장에 온 것처럼 더 오버하면서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한참을 떠들고 있을 때 누군가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나무로 걸어왔다. 누나였다. 한 손에는 잎이 담긴 액자를 들고 있었다. 집에 걸어 놓았던 그 액자였다. 그것을 들고 나무 앞까지 온 누나는 나를 보자마자 앞꿈치로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나는 정강이를 붙잡고 미안하다며 웃었다. 그제야 누나는 잘 지냈냐 동생아, 라며 평소처럼 인사했다. 누나는 액자를 가지런히 나무 앞에 놓았다. 액자 속 나뭇잎은 아직 녹색을 조금 남겨두고 있었다. 나한테 말은 그렇게 했어도 누나는 잎을 부지런히 관리한 것 같았다. 덕분에 나무의 찬란했던 그 시절이 잎에 어렴풋이 묻어있어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나무 앞에 영정사진처럼 놓인 액자를 보며 말했다.
- 이러니까 진짜 장례식 하는 거 같네.
- 그러네. 내가 만든 저 액자가 영정사진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엄마와 누나의 말에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아빠는 그것이 싫었는지 담배를 땅에 꽂고 불을 붙여 분향하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에 우리 모두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장례식에 온 듯 나무를 향해 두 번 절을 했다. 두 번째 절을 할 때 누나는 잠시 일어나지 못했다. 누나의 작은 울음소리가 엎드린 사이로 새어 나왔다. 미안하다는 말도 어렴풋이 몇 번 들려왔다. 나는 엎드려 있는 누나에게 작게 말했다.
- 누나 그 시 기억나지? 그 언젠가가 지금이야.
누나는 눈물을 슬쩍 거두고는 나를 보고 살짝 웃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언젠가는 우리가 너를 감싸줄게'라던 본인 시의 그 구절대로 나무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누나를 따라 우리 모두 팔을 쭉 뻗어 나무를 둘러쌌다. 나무에 안긴 우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가 눈을 감자 힘겹게 매달려 있던 눈물이 떨어져 나무의 밑동을 적셨다. 눈물은 갈라진 껍질 사이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나는 나무를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문득 느티나무의 꽃말을 들었던 때가 생각났다. 운명이야, 라고 해맑게 말하던 그 소녀도 오랜만에 떠올랐다. 그동안 나는 한 순수한 소년이 손을 힘껏 뻗어도 닿지 않던 느티나무의 꽃. 운명은 그런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운명은 너무 작아서 손에 닿지 않는 것이 아닌, 너무 작기에 피지 않은 듯 우리의 일상에 스며있는 것이었다. 만개했음에도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는 느티나무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감사한다. 함께 나눈 평범한 일상도 소중한 운명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에. 아니 어쩌면 함께한 모든 순간이 우리의 만개한 운명이었음에.
운명같이 활짝 핀 12년 동안 우리 가족을, 이 아파트를 감쌌던 느티나무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이 아파트는 여전히, 앞으로도 느티나무 아파트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