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평에서 만나(1)

장마 같은 소녀 온평을 찾으러 가는 현석의 이야기

by 휘적휘적

나는 때때로 의미 없는 것에 맹렬히 사로잡혔다. 방충망에 붙은 나방. 깜빡이는 조명. 버려진 플라스틱 컵 속의 얼음. 이유도, 기준도 없이 그저 사로잡힐 뿐이었다. 지금 사로잡힌 것은 창밖의 물방울이었다.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물방울을 보며 생각했다. 왜 저 물방울들은 힘겹게, 미련하게 창문에 매달려 있을까. 그런 쓸모없는 잡념을 지워주기라도 하려는 듯 달리던 버스가 다급히 멈춰 섰다. 옆자리의 가방이 투둑, 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앞 승용차를 향한 버스 기사의 고함이 퍼졌다. 떨어진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다가 가방 옆 주머니에 있던 편지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미련한 물방울들을 생각하기 전까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온평의 편지였다.
그 편지가 닿은 것은 2주 전, 장마가 시작할 즈음이었다. 점점 그 아이의 존재가 무뎌지고 있을 때,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편지는 도착했다. 그날은 내가 집에 유독 늦게 들어간 날이었다. 거센 장맛비가 왔기 때문이었다. 저녁이 다 되어 도착한 나에게 엄마는 별말 없이 편지를 건넸다. 편지를 받아든 나는 요즘에 웬 편지냐 물으려다가 말았다. 편지 봉투에 적힌 ‘온평’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서온평이니까, 그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전 그 아이와 지낸 2주가 무색하게도 나는 그 이름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 탓에 편지는 읽히기도 전에 서랍 한구석에 담겼다.
서랍 속 편지는 그 아이의 이름보다도 훨씬 빨리 잊혔다. 서랍에 넣어두고 10일이 지나 공책을 꺼내려 서랍을 열었다가 편지를 발견했다. ‘발견했다’보다는 ‘마주쳤다’라고 하는 표현이 덜 어색했다.
‘석현아.’
편지를 뜯자 보이는 첫 문장이었다. 그 아이는 ‘현석’인 나를 ‘석현’이라 불렀다. 자기는 그렇게 부르는 게 재밌다고 했다. 그것을 보자 정전된 집의 두꺼비집을 올린 것처럼 그 아이의 기억이 환하게 켜졌다. 그러나 그다음 문장에서 편지는 끝났다.
‘네가 첫 번째야. 장마가 끝나기 전에 ‘온평’으로 와.’
이것은 편지보다는 초대장에 가까웠다. 그리고 나는 맹렬히 이 편지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장마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가방을 뒤지고 뒤졌다. 앞, 뒤, 옆 승객 할 것 없이 편지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어림없었다. 달려가는 이 버스 어디에도 편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온몸에 힘이 풀렸다. 고작 두 문장이 적혀 있는 편지인데도 그랬다. 늘 덤벙대는 내가 이렇게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 아이는 말했다.
’너는 머릿속이 너무 그득해. 생각들이 네 밖으로 흘러넘칠 정도로.‘
온평은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종종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순수했다. 성숙과 순수. 미숫가루와 우유처럼 잘 섞이지 않는 두 단어를 마구마구 저어 섞은 게 그 아이였다. 편지를 잃어버린 지금도 그 아이의 잔소리가 귓속에 맴돌았지만,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아 눈을 감았다.

온평을 처음 만난 건 1년 정도 전이었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초여름 낮, 그 아이는 아파트 단지 놀이터 그네에서 앉아있었다. 펼치지 않은 우산은 그 아이의 발밑에 우두커니 누워있었다. 그것은 그저 들고나오는 것만으로, 비가 오는 날임을 상징하는 것만으로 목적을 다한 듯했다. 잠시 멈춰섰다가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우산을 숙여 눈을 피했다. 그 순간의 오묘하고 촉촉한 공기를 들이키며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평은 다음 날 담임선생님과 함께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젖지 않은 채였지만 여전히 어제의 축축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아이는 수많은 학생 가운데 어딘가로 시선을 무심히 던진 채 말했다.
“서온평이라고 해. 멀리서 왔어. 그러니 잘 부탁해.”
온평.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감이 좋았다. 모호한 첫인상과 달리 마음이 차분해지는 이름이었다. 그 아이는 내 앞앞 자리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 몇몇 친구들이 그 아이를 둘러싸 질문을 쏟아냈다. 온평은 하나하나 정성껏 대답해줬다. 나도 그 사이로 가 묻고 싶었다. 너는 왜 우산을 쓰지 않았니.

깜빡 잠든 나를 깨운 건 버스 창문에 노크하는 세찬 빗방울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온평을 처음 본 그 계절처럼 장맛비는 세상을 덮고 있었다. 버스는 빨간불을 받고 정차했다. 창밖엔 어린아이가 자기 몸보다도 큰 웅덩이에서 발을 마구 굴렀다. 사방으로 튀는 물이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섞여 티도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는 계속 발을 굴렀다. 머리가 비에 젖어가는 줄도 모른 채. 아이의 긴 머리는 녹아내리듯 흘러내리다 아이의 볼에 덕지덕지 붙었다. 그 눌러붙은 긴 머리가 비를 맞던 그 아이의 것과 닮았다, 라고 무심코 생각했다. 그리곤 혼자 중얼거렸다.
“얘야. 너는 왜 우산을 쓰지 않았니.”
버스는 잠시 휴게소에 정차했다. 나는 항아리 모양의 바나나 우유를 하나 사서 휴게소 벤치에 걸터앉았다. 그 후 바나나 우유를 힘 없이 들이키며 멍하니 잃어버린 편지를 생각했다.
‘네가 첫 번째야. 장마가 끝나기 전에 ‘온평’으로 와.’
‘온평’이 어딜까. 처음 그 단어를 본 나는 무작정 그 이름을 지도 어플에 검색했다. 첫 번째로 제주의 한 지명이 떴다. 그와 관련된 식당, 카페가 무수히 지나가자 한켠에 창성시의 한 카페가 떴다. 나는 그것이 온평의 ‘온평’임을 알았다. 창성시는 온평이 나고 자란 곳이었다. 이따금씩 온평은 어머니가 한다던 창성시의 카페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그곳의 이름만큼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자기 이름을 딴 카페 이름이 부끄러웠나보다. 서울을 떠나고 여섯 달이나 지난 후에나 말해주는 거 보면.
너 나 봤었지.”
온평이 전학 온 그날, 그 아이는 하굣길에 나에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처음 마주쳤으니 하굣길이 겹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게 그 아이와 나눈 첫 대화였다. 그 아이가 물었다.
“궁금하지 않아?”
“뭐가?”
“내가 어제 왜 그러고 있었는지.”
어제 하려다 못한 질문이 다시 목 끝까지 차올랐다.
‘어제 왜 비를 맞고 있었어.’
그리곤 말했다.
“내가 궁금해야 해?”
그러곤 둘은 조용히 아파트까지 걸어왔다. 온평은 내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내 속을 들여다보려는 그 아이에게 오기가 생겨 그랬나. 만지면 등딱지로 숨어버리는 거북처럼 나는 단단한 나만의 집 속으로 머리와 몸을 집어넣었다. 나는 그 아이의 앞에 서면 이따금씩 그 순간을 생각했다. 미처 못한 질문에 대한 그 아이의 대답이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또다시 의미 없는 것에 사로잡힌 것뿐이라며 목 끝까지 올라온 질문을 다시 꿀꺽 삼키곤 했다.

바닥을 보인 바나나 우유에서 후루룩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나서야 알았다. 30분이나 멍하니 앉아 있었다는 걸 말이다. 뒤늦게 주차장으로 뛰어갔지만 이미 버스는 가고 없었다. 또다시 그득한 머릿속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가 지끈거렸다.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호흡과 함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까의 바나나 우유는 미처 하지 못한 질문처럼 목 끝을 불편하게 두드렸다. 결국 주차장 한구석 하수구로 달려가 모조리 토해냈다. 고개를 들자 오래된 버스 기사 파업 안내문이 있었다.
‘너 혹시 공황 장애에 대해서 알아?’
다시 기억 속의 온평이 말을 걸었다.
‘장애라고는 하는데 그건 사실 장애가 아니래. 마음이 몸한테 시위하는 거야.’
나는 주차장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사람들 보면 막 단체로 파업하고 그러잖아. 똑같은 거야. 마음도 그럴 권리가 있다고. 그니까 잘해.’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호흡이 조금씩 돌아왔다. 그제서야 파업 안내문의 문구가 눈에 보였다.
‘우리의 자유를 보장하라!’

온평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이유 모를 불편함 속에 살았다. 두통, 소화불량, 식은땀, 호흡곤란. 너무나도 평범한 증상들이라 가는 병원마다 몸은 멀쩡해요, 하며 시큰둥하게 나를 돌려보냈다. 그 아이가 공황 장애에 대해 말해주던 그 날도 나는 보건실에 누워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온평이 전학 온 다음 날이었다.
“또 왔어요.”
온평이 보건실 문을 열면서 말했다. 어제 전학 왔으면서 제집 들어오는 듯 익숙했다. 그 아이는 늘 먹는 듯한 약을 받고는 보건선생님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눴다. 날씨가 어땠느니, 정치가 어쨌느니. 선생님들끼리의 대화를 듣는 듯했다. 그러다,
“혹시 박현석이라고 아세요?”
“편두통 때문에 자주 오는 친구야. 왜?”
보건선생님은 내가 커튼 너머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잊었을 수도.
“좀 특이한 애에요?”
“너만큼은 아니야. 좀 조용하고 생각이 많아 보이긴 하지?”
“선생님 있잖아요. 애들은 너무 투명해요. 뭘 원하고 행동하는지 다 보여요. 얘랑 친해지고 싶다, 칭찬받고 싶다, 관심받고 싶다, 그런 거 있잖아요. 근데 걔는 그런 느낌이 아니야.”
“그럼 무슨 느낌이야?”
“아직 모르겠어요.”
그렇게 몇 마디를 더 나누고 그 아이는 보건실을 나갔다.
그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온평이 왔다. 나는 슬쩍 보고 휴대폰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때, 그 아이가 먼저 인사했다.
“안녕.”
“응.”
“너 왜 아는 척 안 해? 방금 나 봤는데 그냥 눈 피했잖아.”
“뭘.”
“왜 아는 척 안 하냐고.”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딱히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그저 고요한 하굣길이 침범당한 것에 조금 불편함을 느낄 뿐이었다. 그 아이는 여전히 말을 걸어왔다.
“집 같이 가자.”
“왜?”
“그냥.”
“싫어.”
“왜?”
“그냥.”
때마침 버스가 왔다. 나는 곧바로 버스에 올랐고 그 아이도 따라 탔다. 내 불친절한 대꾸에도 그 아이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이어폰을 끼운 채로 나는 휴대폰만 바라봤다. 그 아이는 버스 안 누구와도 다르게 휴대폰을 보지 않았다. 그저 두리번거리며 계속 사람들을 둘러볼 뿐이었다. 훗날 그 아이는 그 행동이 평범함을 공부하는 거라고 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눈에 담아두면서 계속해서 평균을 내리다 보면 어느새 가장 평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그런 이유를 듣고 나서는 더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버스가 집 주변 정류장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아빠였다.
‘엄마 어디 있는지 아냐?’
보나 마나 뻔했다. 술에 취한 아빠가 자신을 피해 도망친 엄마를 찾는 것이었다. 지금 시간이면 아마 친구네 집에 가 있을 것이다. 나는 굳이 답장하지 않았다. 지금 집에 가면 아빠가 소리치면서 나를 괴롭힐 게 분명했다.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일까. 학교도 집도 아니었다. 어디에서도 편안할 수 없다는 답답함에 점점 숨이 가빠왔다. 누가 양손으로 내 머리를 움켜쥐고 행주처럼 쥐어짜는 것 같았다. 몸 안의 내장을 모조리 토해낼 듯한 기분과 함께 눈앞이 아득해졌다. 버스 안에 갇혀 영원히 나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그 아이가 벨을 눌렀다.
“내리자.”
온평은 내 손목을 잡아끌어서 아무 정류장에 내렸다. 쓰러지듯 정류장에 앉은 나는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는 내게 텀블러를 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할 겨를도 없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그러고 그 자리에 털썩 드러누웠다. 앉아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렇게 잠깐 잠들었다.

그 아이와의 기억과 함께 가빠졌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버스터미널에 전화를 걸었다. 버스를 놓친 것은 내 실수이긴 하지만, 승객을 놓고 출발한 것은 기사의 과실도 있기 때문에 다음 시간 버스를 탈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터벅터벅 다시 휴게소 안으로 들어섰다. 다음 차까지 1시간 가량이 남아 있었다. 아까 앉았던 의자에 힘없이 앉으니 장맛비가 다시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도 오겠다, 시간도 남았겠다, 그 아이 생각이나 더 해야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