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평에서 만나(3)

장마 같은 소녀 온평을 찾으러 가는 현석의 이야기

by 휘적휘적

온평의 강아지 이야기를 들은 후로 그 아이와 부쩍 대화하는 일이 늘었다. 물론 다른 아이들이라면 대화라고도 하지 않을, 그저 말의 모임 정도에 불과했다. 그 아이는 잡지식이 많아 나에게 이것저것 말해줬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장마가 지나면 반드시 폭염이 온대. 햇빛을 막아주던 구름이 모든 비를 쏟아내고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야.”
그런 말에 나는 대게 그래, 응 등과 같이 시원찮게 대답했지만, 그 정도 반응에도 그 아이는 만족해했다. 애초에 내뱉는 것 자체가 목적인 잔소리 같은 말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찌됐건 온평이 장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날, 하굣길이었다
“평온아.”
학교 정문에 세워진 파란색 차에서 누군가 그 아이를 불러세웠다. 그 아이가 친구들을 부르듯 그 아이의 이름을 뒤집은 채로. 온평은 신난 듯 뛰어가 운전석에 앉은 이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너가 현석이구나. 나 온평이 엄마야.”
“아. 네. 안녕하세요.”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온평의 옅은 쌍꺼풀의 투명하고 큰 눈은 엄마의 것을 그대로 받았구나, 라고 생각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엄마인 걸 알 정도로 둘은 닮았다.
“온평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자기 같은 친구 한 명 있다고. 근데 보기보다 의젓해 보이네. 온평이랑은 다르게.”
“엄마.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온평의 어머니는 온평과 갈 곳이 있었지만 나를 내려다 주기 위해 아파트 단지까지 차를 몰았다. 가는 길에 그녀는 나한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연거푸 던졌다. 주로 온평에 관한 질문이긴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로 향한 질문의 절반은 조수석에 앉은 그 아이가 가로채 대신 대답해주었다. 그녀는 답을 가로채는 온평에게 자꾸만 조용히 하라며 닦달했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를 이따금씩 ‘평온’이라고 불렀다. 온평의 어머니가 그 아이를 부르는 애칭 같았다. 평온. 익숙한 단어 같아 뒷자리에서 조용히 그 단어를 검색했다. 그러곤 그 뜻을 여러 번 속으로 읽었다.
‘평온(平穩), 조용하고 편안함.’

나와 서현은 카페 입구에 쪼그려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센 비 사이로 익숙한 파란색 차가 카페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보라색 우산을 쓴 아주머니가 한 손에 주렁주렁 열쇠를 들고 후다닥 뛰어왔다. 전에 보았던 온평의 어머니였다. 투명한 눈을 보니 이번에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서 들어가자. 감기 들겠다.”
먼저 카페에 들어선 아주머니가 스위치를 누르자 입구에서부터 차례로 불이 켜졌다. 우리를 반기는 듯했다. 그녀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핫초코 두 잔을 나무 탁자 위에 내주었다. 흰 벽에 나란히 붙어있는 나무 탁자, 또 그 옆의 열대식물들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너네 온평이한테 편지 받았니?”
그러자 서현이 자랑하듯 말했다.
“네. 얘가 첫 번째고 제가 두 번째래요.”
“그래? 잠시만.”
아주머니는 잠시 카페 주방 옆 방으로 들어갔다. 유리창 너머로 내리는 빗소리를 음악 삼아 핫초코를 몇 번 홀짝였다. 카페는 식물원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다양한 식물들이 있었다. 이름 모를 식물을 손끝으로 훑으며 우리는 카페를 둘러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양손 가득한 채 방에서 나왔다. 그건 작은 식물이 심어진 화분 두 개였다. 그녀는 두 화분을 우리의 앞에 각각 올려놓았다.
“자 이건 현석이, 이건 서현이. 이건 온평이가 주는 선물이야. 친구들이 가지러 올 거라고 맡아달라고 하더라고.”
우리는 조심스레 화분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식물에 대해 설명했다.
“테이블야자라는 건데 초보자들도 키우기 쉬운 식물이야. 이런 애들을 관엽 식물이라고 하는데, 비가 오는 시기가 얘네한테는 휴식과 회복의 시간이래. 그래서 이맘때 키우기 딱 좋을 거야.”
그녀의 설명을 듣다가 나는 무심코 비를 좋아하는 관엽식물이 온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네에 앉아 비를 맞던 온평이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흘러넘쳐 버린 그 아이의 생각들을 직접 주워서 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혹시 온평이는 어딨나요?”
서현은 내 질문에 놀랐다. 아마 조심스러워 물어보지 않고 있던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서 서로 티 내지 않아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아이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음…”
잠시 말이 없던 아주머니는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저기 내리고 있을 수도?”
나도 가볍게 미소지었다. 그 말은 모호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명확했다. 서현 역시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도의 표시인 듯했다. 그날 아주머니는 비가 온다면서 우리를 집까지 태워주었다. 온평이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과 우리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빗속을 달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서 어느새 우리 집까지도 도착했다. 서현이는 이미 내려주고 난 후였다. 차는 아주머니와 온평이가 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지나 우리 단지까지 왔다. 우리 집 앞에 천천히 차를 세우면서 아주머니가 말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어. 덕분에 온평이 얘기도 하고 좋네.”
“종종 갈게요. 장마 올 때마다.”
“그래. 고맙다.”
온평을 닮아 투명한 아주머니의 눈가가 제법 촉촉해졌다. 나는 꾸벅 인사하곤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뒤로 돌아 그녀를 불렀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주머니.”
“응?”
그녀는 창문 너머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꼭 평온하세요.”
그녀는 말없이 웃었다.

“평온아.”
언젠가의 하굣길이었다. 내가 그렇게 부르자 그 아이는 멈춰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물었다.
“왜?”
“네가 첫 번째야. 엄마 말고 나를 그렇게 불러준 사람.”
“그래? 너도 맨날 나 석현이라 부르잖아.”
나는 살짝 부끄러워져 먼저 걸음을 재촉했다. 그다음 날 온평은 전학을 갔다.

집에 와서 베란다에 식물을 놓았다. 식물 주변의 흙을 정리하는데 이상하게 볼록 솟아오른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을 조심히 파내자 지퍼백 안에 작게 접은 쪽지 한 장이 있었다. 그곳엔 온평이 내게 건네는 마지막 말들이 있었다.
‘석현아.’
그 첫 시작만 봐도 온평이의 편지란 걸 알 수 있었다.


‘이 편지를 읽는 지금도 밖엔 비가 내렸으면 좋겠네. 너랑 처음 만난 그때 내가 왜 비를 맞고 있었는지 넌 궁금할 거야. 물론 어느 정도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사실 내가 좀 아파. 하루에 몇 번씩 온몸을 누가 찌르는 것 같아. 근데 비를 맞으면 좀 괜찮더라고. 그래서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해. 정확히는 비를 맞는 걸 좋아하는 거겠지? 어찌 됐건 내 남은 날은 많지 않아. 내 병이 고치기 힘든 병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내 남은 날이 싫고 그랬어. 그때 너를 만났는데 너는 나와 비슷해 보였어. 네 남은 날이 궁금하지 않다고 하니까. 근데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했어. 수없이 많이 남은 너의 날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날들보단 화창했으면 했어. 너는 사실 생각이 깊은, 착한 애니까. 지금도 내 말 한마디에 와줬잖아. 그래서 너를 첫 번째로 부른 거야. 네가 첫 번째였거든. 엄마 말고 나한테 ‘평온’이라고 불러준 거. 나는 누가 나를 평온이라고 불러주는 게 좋아서 남들 이름을 뒤집어 부르는 거거든. 네가 나를 평온이라고 불렀을 때, 네가 나 없는 엄마를 위로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석현아.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만 할게. 우리 엄마는 장마 때마다 내가 생각날 거야. 비를 좋아하는 나 때문에. 그러니까 장마가 있는 동안만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엄마의 평온이 되어줘. 고마워. 너의 마음도 늘 평온했으면 좋겠어.’

나는 편지를 고이 접어 서랍에 넣었다. 맹렬히 사로잡혔었던 이번 장마의 추억과 함께. 그리고 다음 장마가 오면 꺼내 다시 ‘온평’으로 향할 것이다. 매번 애늙은이 같이 잔소리해대던, 파업해버린 내 마음을 대변해 싸워주던, 16살이지만 80살이었던, 비를 몹시 좋아하던 그 아이. 그 아이는 내게 장마였다. 장마가 끝나면 해가 비춘다던 말처럼, 그 아이가 힘껏 쏟아준 비 덕에 이제 내 남은 날은 화창할 것이다. 그 아이가 원하던 대로 말이다.
그러니 온평아. 너도, 나도 그리고 모두 부디 ‘평온’하길 바라. 다음 장마 때 온평에서 만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