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의 이탈(1)

과거가 두려운 남자와 현재가 두려운 여자의 이탈 이야기

by 휘적휘적

퇴근과 함께 마루 한구석 섬처럼 놓인 매트리스에 몸을 던졌다. 스프링 나간 매트리스가 공기를 뱉으며 힘없이 꺼졌다. 눈을 감으니 매트리스로 천천히 몸이 잠기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이 들고나면 어느새 아침이 와 있곤 했다. 하지만 달갑지 않은 문자 한 통이 나를 매트리스에서 건졌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휴대폰 화면을 켰다.
‘철아 잘 사냐?’
‘왜.’
‘찬양이 죽었다. 내일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모여서 가자.’
술 먹고 오토바이를 타다 죽었다는 친구의 문자는 나를 전혀 동요시키지 않았다. 다만 일주일에 한 번 주어지는 휴식을 찬양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게 내키지 않을 뿐이었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덮고 다시 매트리스에 얼굴을 묻었다. 분명 죽을 만큼 피곤했는데, 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 아무렇지 않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스물여섯은 아직 죽음에 익숙해질 나이가 아니었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하루종일 택배를 배달하느라 땀에 절여져 버린 옷을 바닥에 벗어 던졌다. 샤워기의 물을 틀자 범벅이 돼버린 땀이, 덩어리진 고단함이 그제야 씻겨 내려갔다. 하지만 오른팔의 검은 그림은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그것은 기어코 남아 피도 통하지 않도록 강하게 내 팔을 조이고 있었다. 찬양과 고등학교 시절에 함께 만든 것이었다.

장례식장은 적당한 사람들로 붐볐다. 나에게 문자를 보냈던 석우는 식장 입구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를 쥔 오른손과 검은 정장 위 목덜미로 문신이 슬쩍 보였다. 입구를 지나는 사람들이 힐끗거렸고, 석우는 그것을 맘껏 의식하고 있었다. 정장 아래 토시로 꽁꽁 숨긴 내 그림이 석우가 느껴야 할 부끄러움까지 모두 떠안았다. 석우는 담배를 입에 물고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자연스레 담배 한 대를 건넸다.
“나 끊었어.”
“웬일이냐.”
“뭐 몸에 좋다고 계속 피냐.”
석우는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 못 본 지 한 7, 8년 됐나? 너 고2 때 검고 보겠다고 자퇴하고 나서부터 못 봤잖아. 그새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네.”
“이제 정신 차려야지.”
내 대답에 석우의 눈가가 조금 찌릿했다. 그는 살짝 웃으며 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들어가자.”
빈소에 들어가니 눈이 부은 찬양의 어머니가 옅은 미소로 우리를 맞아줬다. 스크래치를 낸 짧은 머리에, 귀에 피어싱을 한 찬양이 보였다. 이번에 여권 갱신한다며 SNS에 올린 증명사진이었다. 그것을 영정사진으로 써야 할 만큼 그의 죽음은 일렀다. 제주도 시내의 중학교 동창이었던 찬양과 나는 3년 내내 단짝이었다.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던 둘은 같이 우리 시 바깥에 있는 공고에 가게 됐다. 꼴통으로 유명한 학교였다. 그렇게 고작 밤 10시까지 PC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던 우리는 술과 담배를 배우고, 문신을 하고, 오토바이를 탔다. 입학하고 고작 1년 만이었다. 그즈음에 찬양은 헬멧도, 번호판도 없이 달리다가 경찰에게 쫓기기도 했다. 그는 30분간의 추격전 끝에 경찰에게 잡혀 처음 소년원에 갔다 왔고, 후에 그것을 본인의 훈장처럼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런 찬양은 지금, 무표정의 영정사진 속에 있을 뿐이었다. 석우와 나는 찬양의 영정사진 밑에 헌화하고서 부모님께 목례했다. 찬양의 이름처럼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던 찬양의 가족이었다.
빈소를 나오니 대여섯의 공고 친구들이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옆에는 녹색의 병이 그 인원보다 많이 놓였다. 나는 미적지근하게 인사했다. 그중 한 명이 내 안부를 물었다.
“이야. 철이 오랜만이다. 어떻게 살았냐.”
“그냥 일하면서 살았지.”
내 시원찮은 대답에 정적이 오갔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석우는 곧바로 자리에 앉았고, 나는 멀뚱히 서서 말했다.
“난 일 있어서 먼저 간다.”
그때 석우가 내 팔을 잡았다.
“철아. 오랜만에 애들 만났는데 잠깐 앉았다 가.”
“다음에 보자.”
그러면서 팔을 잡은 손을 떼자, 석우가 내 팔을 더 거칠게 잡았다.
“잠깐만 앉았다 가라니까.”
나는 말없이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석우가 자리에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 씨발.”
석우와 나를 보며 주변이 웅성거렸다. 석우는 주변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어깨에 힘을 주었다. 마치 그게 대단하다는 것처럼. 그 모습이 내 고등학교 시절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속이 울렁거렸다.
“아까부터 존나 띠껍네. 야, 고상한 척하지 마. 찬양이 따까리 새끼가. 이제 와서 쪽팔리냐?”
나는 석우를 응시하다가 말없이 돌아섰다. 그게 내 대답이었다. 쪽팔렸다. 내 과거도. 그 과거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석우가 나를 향해 다가오려고 하자 주변 친구들이 그를 말렸다. 나는 그것을 뒤로하고 그곳을 나왔다.

장례식장 로비에 마련된 ATM 앞은 부조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로 길게 늘어졌다. 그 옆을 스쳐 지나가 장례식장의 정문로 향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철아.”
어깨까지 오는 중단발에 진하고 큰 눈. 율이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나는 놀란 마음을 숨기며 대답했다.
“응. 뭐 그럭저럭. 너는 잘 지냈어?”
“…그냥 살지 뭐. 찬양이 때문에 왔어?”
“응. 너도?”
“어.”
율이 찬양의 장례식을 올 정도로 가까웠나, 라고 속으로 생각할 때 율이 물었다.
“걔네 있던데 만났어?”
걔네. 율은 내 고등학교 친구들을 ‘걔네’라고 불렀다. 율은 나, 찬양과 같은 중학교를 나왔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나와 사귀었다. 율과 나는 같은 학원이었는데, 친구가 없어서 어쩌다 옆자리에 계속 앉게 됐다. 그렇게 두 달쯤 말없이 같이 앉았을 때, 갑자기 율이 고백했다. 사귄 지 1년쯤 됐을 때는 각각 다른 고등학교로 찢어졌다. 나는 공고, 율은 학업으로 유명한 여고. 그때부터 우리 공고 애들을 ‘걔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찬양 역시 2학년이 될 때부터 ‘걔네’ 중 하나가 되었다. 그즈음 찬양은 율과 같은 여고를 다니던 전 여자 친구를 혼자서 30분 동안 때렸고 그것을 SNS로 생중계했다. 그때 우리는 헤어졌다. 그 일로 나도 그 ‘걔네’가 된 것이었다. 그후로 8년이 지나 만난 율은 말했다.
“같이 저녁 먹을래?”
“응? 지금?”
이번엔 율이 끄덕였다.
“뭐 어때.”

우리는 내 택배 트럭을 타고 장례식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김치찌개 집에 왔다. 흰 간판에 빨간색 명조체의 간판은 이곳이 꽤 오래됐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초여름이라 아주 덥지는 않았지만, 빨간 앞치마를 입은 사장님은 정장을 입은 우리 앞으로 오래된 선풍기 한 대를 우리 옆에 놓아주었다. 율은 자연스럽게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너 먹을 거야?”
“나 차 끌고 왔잖아.”
“아, 그러네.”
우리는 말없이 각자 나온 김치찌개에 밥을 먹었다. 이 가게 안에서 말을 하는 것은 내 등 뒤 TV 속 아나운서뿐이었다. 율이 혼자서 소주를 따르려고 하자 내가 손을 내밀었다.
“따라줄게.”
꼬로로록. 잔에 술이 채워지는 소리가 선풍기 소리, 뉴스 소리와 어우러졌다. 율은 잔을 받자마자 한 번에 들이켰다. 크흐, 하면서 율은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나는 물었다.
“술 좋아해?”
“아니. 근데 좀 마시고 싶어서.”
그러면서 율은 잔을 내밀었다. 꼬로로록. 나는 따라 주었다. 그리고 나는 율을 향해 물컵을 들었다. 율은 내 물컵에 자기 잔을 즐겁게 부딪쳤다.
“짠.”
그렇게 우리는, 아니 율은 한 잔, 두 잔 별다른 말 없이 술을 비웠다. 나는 이미 찌개와 밥을 비우고 난 후였다. TV 속 아나운서가 말했다.
“요즘 이른바 ‘차박’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에 국토부는 공영주차장에서 차박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율은 찌개를 먹다 말고 그 뉴스에 집중했다. 그러자 나도 뒤를 돌아 뉴스를 보았다.
“공영주차장이나 도로 주변에 세워 ‘차박’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주차 공간이 부족해지고 소음과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차박에 관한 뉴스가 지나가고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자, 율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율의 눈동자는 여전히 크고 깊었다. 그 눈으로 율은 말했다.
“저거 가자.”
“저거?”
“차박.”
그렇게 말하면서 율은 창문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내 택배 트럭이 있었다.
“무슨 차박이야. 둘 다 문상 갔다 온 복장으로 어딜 가. 취했으면 집이나 가. 태워다 줄게.”
“아니, 지금 가야 해. 이제야 찾은 거 같아.”
“뭘?”
율은 다시 그 큰 눈을 나한테서 떼지 않으면서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탈.”
“이탈? 무슨 이탈?”
“그냥 있던 곳에서 이탈한다고 하잖아.”
“그건 알지. 근데 이런 걸 이탈이라고 하나? 일탈 아니야?”
“맞아. 근데 일탈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 같잖아. 생각도 없어 보이고. 그런데 이탈은 내가 가고 있던 궤도에서 벗어났다는 뜻이잖아. 그런 건 작정하고 해야 하는 거니까. 난 지금 작정했거든.”


8시 반. 율의 자취방이 있는 대학로 근처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청춘이 정신없이 휘날리는 거리 너머로 버젓이 사람이 사는 집이 있다는 게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이미 잘 시간이었지만, 나는 율의 자취방 앞에 차를 대고 율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내려주고 가려는 나를 끝까지 물고 늘어진 율이었다. 이렇게 율이 눈동자를 나에게 오롯이 비추면 난 어쩔 수 없이 율이 하고 싶은 대로 해주었다. 관심도 없는 공부를 위해 같이 도서관을 간다든지, 율이 재밌게 읽었다던 책을 나도 밤새 읽는다든지 하는 일들이었다. 율의 확신에 찬 그 눈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율의 눈과 함께 나를 움직인 것은 그 ‘이탈’이라는 단어였다. 그 단어가 경직됐던 내 삶을 일렁이게 할 것 같은 작은 기대감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10분이나 지났을까, 율은 큰 반팔, 짧은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자기 몸보다 훨씬 큰 매트리스를 들고 내려왔다. 나는 차에서 내려 그것을 건네받고는 택배 화물칸에 실었다. 택배 정리용 플라스틱 상자들을 접어서 옆으로 치우고, 그 자리에 매트리스를 까니 꽤 아늑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율은 그것보고는 뿌듯해했다. 그리곤 다시 올라가 약간의 다과와 캔 맥주가 담긴 아이스박스를 챙겨 내려왔다. 율이 가져온 물건들까지 화물칸에 실은 후에야 우리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각각 올라탔다.
“어디로 갈래. 네가 가자고 했으니까 네가 정해.”
“음. 이걸로 정하자.”
율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나한테 눌러 달라며 슬쩍 내밀었다. 그것은 음악 플레이어 앱의 랜덤 재생 버튼이었다. 그것을 누르자 익숙한 옛날 팝송이 나왔다. 제목은 The Seachers의 ‘Love Potion NO.9.’ 노래가 흘러나오자 율이 말했다.
“좋아. 바다로 가자.”
“왜 바다야?”
“‘태양은 없다’라는 영화 알아?”
“들어본 거 같은데.”
“그 영화 OST야. 거기서 주인공들이 사고치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바다로 가버리거든. 그 장면 젤 좋아해.”
그 영화도, 그 장면도 알지 못했지만 율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이 이탈의 주인은 율이었으니까.
“…그래. 가자. 바다.”
율은 창밖으로 소리를 질렀다. 전부터 율은 팝송을 좋아했다. 팝송은 노래를 두 번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사 알기 전까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상대로, 가사를 알고 난 후엔 또 그 가사만의 의미로 말이다. 율은 양손을 들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노래 가사를 흥얼거렸다. 오래된 밴드 사운드가 차 안에 울렸다. 찐한 주황색 노을 아래 춤을 추는 청춘들이 그려지는 노래였다. 그 노래가 사랑의 묘약에 관한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나중이었다. 나는 가만히 서쪽으로 뻗어 있는 해안도로를 향해 차를 몰았다. 율이 고작 몇 시간 후면 동쪽에서 떠오를 해를 피해 도망치자 했기 때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