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두려운 남자와 현재가 두려운 여자의 이탈 이야기
차는 금세 해안도로에 들어섰다. 제주도에서는 어디든 30분이면 바다를 갈 수 있었다. 해가 한참 전이 떨어져 어둑했지만, 고기잡이배들이 열심히 바다를 빛냈다. 율은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한참 바다를 쳐다보았다. 바다의 촉촉함과 초여름 밤의 시원함이 함께 창문을 통해 넘어왔다. 나는 율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걸 보며 바닷바람의 결을 읽을 수 있었다. 율이 수평선의 불빛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무슨 배들이야?”
“요맘때쯤이면 한치일걸?”
“맛있겠다.”
“먹을래?”
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해안도로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곤 해안도로에 널린 횟집 중 하나를 들어갔다. 얼굴이 붉은 중년의 남자 사장님은 우리가 와도 별 신경 쓰지 않고 야구를 볼 뿐이었다. 한치회를 주문하니 귀찮은 듯 일어난 사장님은 그 자리에서 한치를 잡아 썰었다. 한 그릇 가득 담긴 한치회의 가격은 30,000원. 그리 저렴하진 않았지만 그런 걸 따지기엔 이 여행은, 이 이탈은 따져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우리는 회를 싸 들고 벤치에 앉아 밤바다를 마주했다. 나는 잔뜩 들뜬 율에게 물었다.
“술 한 잔 안 해도 돼?"
“아까 혼자 먹으니까 맛이 별로더라고.”
듬성듬성 무심하게 썰어낸 한치회는 쫄깃하면서도 기름기가 배어왔다. 실처럼 가늘게 뜬 회와는 달랐다. 회를 즐기는 두 사람 너머로 간조를 지나친 밤바다는 조금씩 검은 돌들을 잠식해갔다.
“철아. 들어봐.”
율은 눈을 감았다. 나는 눈을 감지는 않았고, 그저 눈 감은 율을 슬쩍 쳐다보았다. 감은 눈을 살포시 뜨며 율은 말했다
“이래서 차박이 바다와 어울려. 이름이 그래. 차박. 차박차박. 파도 소리 같잖아. 파도가 밀려와서 돌에 부딪혀 부서질 때 나는 소리.”
차박차박. 그제야 파도는 대답하듯 소리를 냈다.
차에 탄 우리는 계속 서쪽을 향해 갔다. 율은 휴대폰을 꺼내 지금에 곁들일 음악을 골랐다. 이내 바다 위 불빛 같은 전주가 찬란하게 흘렀다. Bruce Springsteen의 ‘Hungry Heart’. 캐롤 같이 따사한 그 노래는 더운 여름의 밤바다와 묘하게 어울렸다.
“어때.”
“좋네.”
“이 노래 뭔 뜻 같아?”
“내가 알겠냐.”
이미 영어와는 담쌓은 나였다. 정확히는 율을 만났던 영어학원을 그만둔 중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너는 영어학원도 다녔던 애가.”
율도 그때가 생각났는지 내게 장난쳤다.
“그게 언제야. 벌써 거의 10년 전이구만.”
“그러네. 시간이 빠르다 진짜.”
우리는 잠시 말없이 있었다. 달리는 차 안으로 바닷바람과 노래가 마구 뒤섞였고, 그건 우리를 센티하게 만들었다. 율이 말했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데, 우리 모두한텐 텅 빈 마음이 있대. 다행이지 않아?”
“그래?”
“그냥. 좋잖아. 혼자 텅 빈 것보다는.”
율의 크고 깊은 눈은 어느새 조금 공허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공허함에 대해 굳이 묻지 않았다. 모두한텐 텅 빈 마음이 있으니까. 나에게도, 그리고 율에게도. 그렇게 생각하니 이 ‘이탈’도 조금씩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해안도로는 끝을 모르는 듯 뻗어져 있었다. 이제 길의 옆으로도 횟집이나 식당도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시간이 늦었는지 한치잡이 배들도 그 모습을 감추었다. 율이 말했다.
“어. 저기 어때.”
율이 가리킨 곳은 배 2대가 정박해 있는 작은 포구였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몰며 포구 여기저기를 살폈다. 크기는 작았지만 차를 댈 만한 공간은 충분했다. 다른 곳을 찾기에도 시간이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나는 포구 안쪽까지 들어가 매트리스를 실은 택배 화물칸이 바다를 마주하도록 차를 돌려서 세웠다. 차에서 내린 율은 곧장 화물칸 문을 열더니 매트리스를 바다가 잘 보이는 방향으로 잘 정리했다. 그 위로 가져온 담요를 깔더니 곧장 그 위로 몸을 던졌다.
“하, 좋다.”
그 옆에 앉으니 밤의 바다와 하늘이 영화관 스크린처럼 펼쳐졌다. 택배 트럭의 화물칸은 매트리스 하나로 작은 집이 된 것처럼 아늑함을 주었다. 율은 매트리스 위를 기어가서 안쪽에 넣어뒀던 아이스박스에서 맥주 2캔을 꺼냈다. 그중 하나를 나한테 건네며 물었다.
“마실 거지?”
“그래야 할 분위기인데?”
칙. 갈증이 있던 우리는 곧장 맥주를 입에 가져다 댔다. 입에서 위까지 시원한 무언가가 흘러가는 게 온전히 느껴질 정도로 맥주는 차가웠다. 하지만 좋은 풍경과 맛있는 맥주와는 별개로, 작정하고 둘이서 차박을 하려고 하니 묘한 정적이 흘렀다. 율이 가져온 과자를 씹는 소리만 가득했다.
“어떻게 지냈어. 선생님 하고 있어?”
정적을 참다못한 내가 율에게 먼저 물었다.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물은 근황이었다.
“오. 기억하네?”
율은 중학교 때부터 국어 선생님을 꿈꿨다. 중학교 때도 시험 기간이 되면 율은 내게 국어를 가르쳐주었고 율은 그것을 재밌어했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가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율은 국어를, 그중에서도 문학을 참 좋아했다. 율은 문학을 가르쳐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쓴 시나 소설을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책과는 거리가 먼 나였지만 좋아하는 걸 참지 못하는 율의 그 모습만은 좋아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난 대답했다.
“당연히 기억하지. 나한테 국어 가르쳐 줬잖아.”
“그래. 그랬지. 네가 내 첫 제자였는데….”
율은 놓쳐버린 것을 이야기하는 듯 공허하게 말했다. 씁쓸하게 웃으며 맥주를 한입 들이켠 율은 캔을 매트리스 옆에 내려놓곤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마치 꿈이라는 게 그저 어린 날의 치기가 되어버린 것처럼 율은 깊은 한숨을 연이어 내뱉었다. 나는 무슨 일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기도 했고, 묻지 않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지금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그녀를 이탈시키는 것뿐이었다.
“율아.”
내가 부르자 율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계속 말했다.
“오늘은 이탈한다며. 해 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율은 말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나는 그런 율을 툭툭 쳤다. 슬쩍 고개를 든 율에게 웃으며 캔을 내밀었다.
“짠?”
율은 피식하곤 내려놓은 캔을 다시 집었다. 율이 내가 내민 캔에 강하게 자신의 캔을 부딪치자, 둘의 맥주가 섞여 여기저기 튀었다.
“그러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곧바로 자신의 맥주를 한입에 모두 들이켠 율은 캬, 하며 입에 묻은 맥주를 닦아냈다. 나도 율을 따라 남은 맥주를 모두 들이켰다.
“철아. 너 수영 같은 거 잘해?”
율이 다 먹은 캔을 구기며 대뜸 물었다.
“죽지 않을 정도로 해.”
“그래?”
갑자기 율은 트럭에서 내려 맨발로 섰다. 그리고 팔을 양옆으로 쭉쭉 뻗으며 여기저기를 스트레칭했다. 곡소리를 내며 몸을 푼 율은 잠시 숨을 크게 들이켰다.
“뭐해.”
이내 율은 크게 들이켠 숨을 모조리 내뱉고는 그대로 바다를 향해 땅을 박차고 달렸다. 순식간에 포구 바닥을 맨발로 가로지른 율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포구 안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야, 임율!”
너무 순식간이라 율을 말릴 틈도, 붙잡을 틈도 없었다. 나는 신발을 챙겨 신고 포구로 달려갔다. 내가 여러 번 율을 부르고 나서야 깊이 빠졌던 율은 물 위로 떠 올랐다.
“푸하. 엄청 차가워.”
율은 젖은 머리를 양손으로 넘기고는 물 위에 비스듬히 누웠다. 팔과 다리를 여유 있게 헤엄치고 있었다. 놀란 난 율에게 소리쳤다.
“너 미쳤어? 죽으려고 작정했어?”
“어때. 나 수영 잘하지.”
“됐고 빨리 나와. 술 먹고 뭐 하는 거야.”
“너도 들어와.”
“됐어. 트럭에 수건 있으니까 꺼내둘게. 빨리 나와서 그걸로 닦아.”
내 말을 듣고 율은 시무룩한 채로 포구 옆 계단으로 올라왔다. 나는 수건을 챙기러 트럭으로 갔다. 나를 따라 트럭으로 오는 것 같던 율은 갑자기 나를 불렀다.
“철아.”
그러면서 율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율이 나를 보면서 손을 내밀었던 게 얼마 만이었을까. 율은 늘 성격이 급해 나보다 먼저 걸어가 기다린 후 나에게 손을 뻗었었다. 지금도 그랬다. 나는 망설였다. 지금의 내가 저 손을 잡아도 될까. 하지만 난 여전히 율의 철이었다. 그때가 된 것처럼 나는 홀린 듯 그 손을 잡아버렸다. 율은 천천히 나를 포구 앞으로 이끌었다.
“뭐 어때.”
우리는 맞잡은 손 그대로 바다를 향해 도약했다.
풍덩.
몸이 바닷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갔고 천천히, 서서히 한가운데서 멈췄다. 고요했다. 스프링 나간 매트리스 위에서 억지로 휴식을 청해왔던 몸은 그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편안해졌다. 눈에 보이던 것들도, 귀에 들리던 것들도, 손끝에 닿던 것들도 모조리 바닷물이 덮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고요한 바닷속엔 율과 나만이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율은 웃었다. 그 미소와 함께 내뿜어진 숨결은 안개꽃 같은 하얀 거품이 되었다가 없어졌다. 나도 함께 율을 따라 흰 거품을 피워냈다. 우리는 잠시 요란한 바다 위 세상으로부터 보란 듯이 이탈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