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두려운 남자와 현재가 두려운 여자의 이탈 이야기
우리는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 화물칸에 걸터앉았다. 옆 수돗가에서 한참을 씻어냈음에도 몸의 소금기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온몸과 정신은 개운했다. 물로 씻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씻어낸 것 같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난 율을 닦달했다.
“너 진짜 제정신이냐. 갑자기 그렇게 술 먹고 들어갔다가 쥐라도 나면 어쩌려고.”
“지도 들어가 놓고.”
“아니 그건 네가….”
“누가 누구보고 뭐라 해. 너 고등학교 때도 술 먹고 애들이랑 다이빙한 거 내가 모를 줄 아냐. 거짓말칠 걸 쳐야지.”
과거에 묶인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율에겐 농담이었지만 그 말은 은은하게 나를 괴롭혔다. 나는 물었다.
“다 알았어?”
“뭐를.”
“내가 그러고 다니는 거.”
“다는 몰랐지.”
나는 가볍게 웃는 율에게 물었다.
“너는 찬양이가 그 짓 안 했으면 계속 나 만났을 거야?”
잠시 정적이 오갔다. 비슷한 농도의 침묵은 둘이 같은 순간을 떠올리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던 겨울밤이었다. 며칠 째 폭설이 계속 됐다. 뜨거웠던 여름이 고작 몇달 전이었다는 게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날 율은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류장에 뛰어 들어와 눈을 털어냈다. 나와 다른 교복을 입고 있던 율은 이미 울고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도 율의 눈물은 얼지 않았다. 율은 정류장 벤치 가운데 있었고, 나는 살짝 떨어져 정류장 벤치 끝에 앉았다. 내가 앉자마자 율은 인사도 않고 물었다.
“너 그 일 있을 때도 주찬양이랑 같이 있었어?”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율은 소리쳤다.
“주찬양이 김소연 때릴 때 같이 있었냐고!”
역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같이 있지 않았지만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정류장에서 만나기 5일 전, 찬양이는 율과 같은 여고를 다니던, 자신의 전여친이었던 소연을 30분 동안 때렸다. 설마 진짜 패겠어, 라고 혼자 생각한 후로는 3시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곳은 우리가 흔하게 담배를 피는 상가 뒤편 골목이었고, PC방에 있던 나는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소연의 얼굴은 이미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한쪽 눈을 뜨지 못했다. 그리고 찬양은 그 모습을 인스타로 생중계하고 있었다.
“내 말 안 들리냐고!”
다시 차가운 버스정류장이었다. 율은 붉어진 얼굴과 눈으로 나에게 계속 소리쳤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헤어지자.”
율은 울면서 정류장 밖을 걸어나갔고 폭설의 한가운데로 사라졌다. 그게 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이미 내가 율보다 ‘걔네’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됐다는 것을, 서로가 처음부터 다른 궤도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정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위험한 궤도를 유랑하는 동안, 율은 국어선생님이라는 안전한 궤도 위를 순항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두 궤도가 접한 우연의 점에서부터 서로 멀어져갔다. 나는 며칠 후 학교를 그만두었다. 내 비행을 누구보다 걱정했던 부모님은 내가 모든 친구 관계를 끊고 일을 하겠다고 하자 고민 끝에 허락했다. 찬양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퇴서를 내러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곧 소년원 입소를 입둔 찬양이는 내게 말했다.
“내 결혼식이랑 장례식 때는 와라 개새끼야.”
난 대답하지 않고 학교 밖을 나섰다. 그렇게 내 위험한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난 조금씩 발버둥쳤다.
다시 이별을 떠올리는 순간의 밤바다는 그때의 정류장만큼이나 차가웠다. 이별이란 그런 것이었다. 봄이든 여름이든 언제 떠올려도 시리게 차가운 것. 율이 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나 너랑 헤어지고 나서 솔직히 후련했어. 친구들이 수군대지도 않았고, 담임쌤이 따로 불러서 거기 학교 애들 만나지 말라고 훈계하는 것도 들을 필요 없었어. 중학교 때는 너한테 밥도 사줬던 우리 엄마가 이제 헤어질 때 되지 않았냐고 말하는 거 모르는 척 할 필요도 없었어. 무엇보다 선생님이 되고 싶은 나와 술담배하고 문신하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너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적어도 이렇게 쭉 살면 나는 너보다 낫다, 더 괜찮은 삶을 살았다, 그렇게 생각했어.”
율의 말에 내 팔토시 밑 그림이 다시 욱신거렸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요동치는 심장을 따라 출렁이던 맥주캔을 옆에 내려놓고 나는 말했다.
“그래서 찾아왔어? 응? 그래서 찾아왔냐고. 나 같이 엠창 같은 인생이랑 네 인생 비교하면서 너 얼마나 괜찮은 인생이구나 확인하고 싶었어?”
맥주캔을 집어서 던져버리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눈을 질끈 감으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영정사진 속 찬양이였다. 찬양이는 말했다.
‘똑같이 좆같이 살아놓고 이제와서 율한테 위로라도 받고 싶었냐? 넌 지금 어중간한 새끼인 거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네가 정신 차리든 뭘 했든 율 같은 애 눈엔 너랑 나랑 다를 거 없는 놈이야.’
그렇게 찬양이가 쏘아댈수록 머리가 더욱 지끈거렸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사그라들지 못한 목소리로 율에게 모든 것을 쏟아냈다.
“두 눈으로 보니까 어때…. 생각한대로 택배 같은 일이나 하고 있으니 좀 위로가 됐어?”
율은 대답이 없었고, 나는 소리쳤다.
“응? 대답해 봐. 대답해보라고!!”
그렇게 한동안 가쁜 숨을 내쉬며 의미 없는 말들을 쏟아내었다. 율은 그런 나를 기다리는 듯 여전히 어떠한 대답도,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툭.
율은 내 손 위에 손을 얹었고 동시에 나는 말을 멈추었다. 그리곤 율은,
차박. 차박.
포구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맞추어 나를 토닥였다. 율은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토닥였다. 나를 괴롭히던 찬양이도 모래 위 글씨를 파도가 지워내듯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러자 율은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졸업하자마자 육지에서 바로 선생님 됐어. …지금은 아동 학대로 조사받고 있고."
아동 학대. 율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단어를 속으로 되뇌였다. 나는 율을 쳐다보았지만 율은 태연했다.
“우리 반 애 중에 엇나가는 애가 한 명 있었는데, 술담배는 기본이고 듣기로는 도박에 성매매도 한다더라. 다른 쌤들도 쟤는 안 건드는 게 낫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 말 들으니까 언제가 떠올랐는지 알아?"
율은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너랑 헤어지던 정류장. 내가 널 포기하던 순간말이야. 그때가 떠오르니까 아,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그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이번 제자는 기를 쓰고 포기하지 않으려고 엄청 애썼다? 화도 내고 욕도 하고 벌도 주고. 걔를 놓지 않으려 했는데…. 걔네 부모님이 나를 아동 학대로 신고했어. 그래서 지금 조사 결과 나올 때까지 휴직 중이야…. 선생님이란 거, 생각같지 않더라.”
율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야. 너는 내가 찬양이 장례식장을 왜 갔을 거 같냐."
잠시 머뭇거리다 율은 말했다.
"내 첫 제자만큼은 포기 안하려고.”
노을처럼 붉어진 율의 큰 눈을 보며 생각했다. 너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구나. 우리를 포기한 건 나였구나. 율은 포근히 나한테 안기었다. 나는 자연스레 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파도가 모래사장을 덮치듯 순식간에 두 개의 심장 소리가 제멋대로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지금 당장 율을 얼굴에 손을 얹고, 입을 맞추고, 안고 싶었다. 그때, 이 순간 역시 ‘이탈’에 불과할 수도 있단 생각이 나를 한 번 망설이게 했다. 그러나 작정했다는 율의 이탈을 막을 이유가 내게는 없었다. 어찌 됐든 그 이탈 덕분에 새로운 점에서 우리가 만났으니까. 많은 생각들이 가까스로 정리되어 갈 즈음, 율과 나의 입술은 이미 포개져 있었다.
꽤 시원한 새벽공기에 자연스레 잠에서 깼다. 새벽하늘엔 푸르른 어스름이 일렁였다. 나는 주섬거리며 매트리스 옆에 널브러진 옷들을 집어 입었다. 그중에서 율의 옷을 골라 율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내가 부스럭대는 소리에 율은 잠에서 깼다. 율은 조각 담요를 끌어안고 뒹굴더니 이내 다시 잠들었다.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트럭에서 내려 기지개를 켰다. 어느새 어스름 사이로 붉은빛이 잠에서 깬 율처럼 조금씩 기어 나왔다. 나는 혼자 속삭였다.
“결국 따라 잡혔네.”
뒤척거리던 율이 일어나자 우리는 해가 떠오른 동쪽으로 돌아갔다. 내 출근을 위해서였지만 사실은 서로의 궤도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늘 그렇듯 가는 길보다 돌아가는 길은 짧게 느껴졌다. 15분도 되지 않아 시내에 접어들었다. 율은 올 때 그랬던 것처럼 팝송을 틀었다.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nia Dreamin'’. 노래는 천천히 눈 뜨고 있는 쓸쓸한 새벽의 대학로와 잘 어울렸다. 가만히 듣다 보니 이 노래가 유명한 홍콩 영화의 배경음악이라는 게 생각났다. 영화를 소개해 주는 TV 프로그램에서 어렴풋이 들어본 적 있었다. 노래에 관해 물어보려 했지만 율은 그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율을 보고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차는 쉬지 않고 율의 자취방 앞까지 도착했다. 매트리스와 작은 아이스박스를 율의 자취방으로 함께 옮기고 난 다시 차에 올랐다. 마중하러 내려온 율은 트럭 앞에 뻘쭘하게 섰다. 율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출근 잘해. 고생했어 나 때문에.”
“그래, 너도 푹 쉬고.”
“번호 줘.”
율은 불쑥 휴대폰을 내밀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받아 들고는 번호를 찍어주었다. 그렇게 싱거운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율의 휴대폰에 마구잡이로 모르는 번호를 찍어주었다. 그것이 나와 율의 마지막이 되어야 했으니까. 율이 나를 찾아왔다고 한들 율과 했던 모든 순간은 ‘이탈’에 불과했다. 율은 다시 돌아가야 할 궤도가 있었다. 꿈과도 같은 순간이라는 것은, 언젠가는 깨야 한다는 것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어느새 또다시 우리를 포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율의 자취방과 멀어지면서 나는 율이 틀었던 가사도 모르는 팝송들을 흥얼거렸다.
나는 검은 그림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과거로부터 나를 옥죄기 위해 남겨두었던 그림이었기에 이젠 필요가 없었다. 말끔히 지워지진 않아도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내 과거는 여전히 쓰레기 같았고 나는 그걸 치워야 했지만, 이제 쓰레기들의 악취는 내게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던 택배 일은 절반 정도로 줄이고 남는 시간엔 공부에 전념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요리를 시작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달이 지나갔다. 여름의 기운이 꺾기고 조금씩 시원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난 오늘 배송해야 할 택배를 받아 화물칸에 싣고 있었다.
“윤철 씨!”
물류 창고 관리인이 멀리서 나를 불렀다.
“네?”
“누가 찾어. 입구에서 기다리시니까 어서 가봐.”
나는 택배를 대강 정리하고 물류 창고 입구로 향했다. 여기저기 택배로 가득 찬 물류 창고를 난 왜인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로질렀다. 나는 무언가 기대하고 있었다. 내 이름이 불리었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율에게 잘못된 번호를 줬을 때부터. 율을 장례식장에서 만났을 때부터. 어쩌면 율에게 헤어지자고 하던 순간부터. 컨테이너 입구에 다다랐을 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어깨까지 오는 중단발에 진하고 큰 눈. 율이었다.
나는 왜 이것을 기대했을까. 그제야 난 알았다. 내가 율의 이탈이었던 것처럼, 율 역시 나의 이탈이었다는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