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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토막 괜찮은 놈이네!

by 강충구

월급은 반 토막 (솔직히 반 토막에도 미달)

회사 내 직급도 반 토막

쓰는 사무실 면적도 반 토막

회사 내 파워도 반 토막


올 5월에 드디어 재취업에 성공한 나의 분투기로 받은 초라한 성적표이다.

그렇지만 누구의 소개도 백도 쓰지 않고 자력(自力)으로 이루었다는 것이 뿌듯하다. 이 나이에 재 취업했다는 사실 자체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초창기 내가 제일 힘든 것은 모든 서류를 내가 작성하고 내가 직접 다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거 임원으로 대표로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한 일!

촌놈 출신이라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직접 몸으로 때웠다. 그만두지 않는 이상 달리 방법도 없다. 역시 인간은 변화에 잘 적응하는 동물인가 보다. 문서 작성도 점점 나아지고 나 스스로 처리하는 힘도 조금씩 늘려나갔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앞에 놓인 고기나 생선을 반(半, half) 토막으로 나누면 다 먹지도 못하면서 배가 덜 찰 것 같은 허전함이 든다. 그런데 부부가 이혼할 때 재산분배는 배우자와 반반으로 배분하는 것이 원칙이란다. 심지어 국민연금도 반으로 나눈다고 한다. 반(半)의 나눔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분란이 생긴다. 일단 반으로 나누면 허전함이 아니라 모두가 순조롭고 평화롭다.


각박한 요즘 세상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돈)라고 했던가. 그건 자본주의니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반 토막은 평화롭지 못하다. 좀 심란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나이만 먹었지 내 실력은 쪼그라들지 않았는 데는 순전히 동화 속의 내 상상일 뿐이다.

회사에서 계급의 강등은 우울하다. 권한과 힘의 반 토막은 착잡하다. 기(氣)가 빠진다. 사람은 기가 다 빠지면 기다리는 건 저승길이라는데...

그런데 반(半) 토막이란 놈은 참 아이러니하다. 평안(平安)의 상징 같지만 막상 닥치는 현실에서는 심란 그 자체이니 말이다. 늘 음양(陰陽)이 교대로 반복되는 것이 인생의 진리이다. 단지 각자 장단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도로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영원한 평지도로는 이 세상에 없다. 이론상으로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꽤 괜찮은 반 토막이란 놈이 있다. 우선 직업적 스트레스가 반 토막이다. 임원으로, 책임자로 있을 때 스트레스 덩어리인 대외업무는 반으로, 아니 반의 반이다. 지금은 그저 내 앞의 일에만 충실하면 된다. 물론 스트레스 없는 직장은 이 세상에 없을 터


시련과 고난은 인생을 더 야무지게 한다. 우리 인생에 괜찮은 반 토막도 있다. 스트레스가 반 토막이 되면서 탈모된 내 중간 머리숱도 다소 굵어졌다. 오늘처럼 이렇게 글을 쓰는 여유는 덤이다.

반 토막, 그런대로 괜찮은 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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