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더 아니지’ 싶을 수 있다.
문화생활도 읽고 쓰기로 가능해? 이건 억지다 싶지만 일정 부분 동기유발의 촉진제 역할을 한다. 『오페라 홀릭』, 『음악가들의 초대』는 딱 제목처럼 독자를 홀리고(‘홀릭’이 ‘홀리고’라고 우겨본다) 초대하고 붙들어 둔다. 내 토끼 시리즈로 유명한 그림책 작가 모 윌렘스의 『때문에』는 어떤 겨울 한동안 심취했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찾아 듣게 했다. 『명화와 수다 떨기』, 『끌리는 디자인의 비밀』, 『미술관의 탄생』, 『그림 탐닉』, 『고흐 씨, 시 읽어줄까요』와 최근의 『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까지 책꽂이는 소리와 색으로도 채워진다.
2014년 도서정가제 개정 이후 장바구니에서 결제 버튼까지의 심적 거리는 멀어진 게 사실이다. 정가제 시행 전날 밤에 아이가 좋아하는 책과 내게 필요한 책을 쫓기듯이 담았던 일도 어느덧 오래전 이야기다. 신간 도서 표지를 볼 때 드는 첫 번째 생각은 ‘궁금하다’이지만 읽고 싶다, 어쩌면 그보다는 갖고 싶다, 사실 내 손이 닿는 곳에 놓고 싶다가 솔직한 심정임을 고백한다. 신간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그토록 갖고 싶은 책’을 만나고 시간이 지나도 그 순간을 돌아볼 수 있음이 감사하다.
그때 그 서평>
① [서평] 고흐 씨, 시 읽어줄까요- 읽는 내내 따뜻하고 행복하게 하는 책 (20161126)
그림도 감상하고 시도 읽을 수 있는 책,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머무르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햇볕을 쬐듯 따뜻한 기분을 간직할 수 있어 오랜만에 책 속에 푹 빠질 수 있었다. ‘공통의 테마를 가진 그림과 시’라는 발상이 신선하다. 크게 3개의 장으로 분리하여 1전시실, 2전시실, 3전시실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천정이 높아 작은 소리도 웅웅 울리는, 대리석의 서늘한 내음과 또각또각 구두 소리 들리는 전시실을 통과하는 기분으로 하나의 작품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떼곤 한다.
‘샤갈처럼 그림으로 남기고 시인처럼 시에 담아 놓고 싶은 선물이 있어?(29쪽)’라는 질문에 생각은 복잡해진다. 어떤 것들이 있던가...저자의 물음들에 하나하나 답하고 추억을 헤집고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책장을 넘기다 멈추기를 내내 반복했다.
문태준의 ‘두터운 스웨터’라는 시를 읽고 마지막 문장에 가슴이 뭉클하다. 이런 시도 있었구나,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정말 좋다. 까미유 클로델의 슬픔을 간직한 로뎅의 ‘다나이드’, 나 역시 그녀가 늘 가엽고 애처롭다. 그림과 시를 신화와 음악등 종횡무진으로 넘나들며 설명하는 것을 듣다보면 그 하나하나를 더 찾아 읽고 싶어진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와 정호승의 ‘용서의 의자’는 가장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초등 3학년 친구들과 시를 읽고 ‘앉기만 하면 누구나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의자가 있다면?’이라는 저자의 질문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주제에 집중했고 막힘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용서의 의자는 은과 금으로 만들어져 있고 너무 귀해서 깊은 바닷 속에 숨겨져 있다는 친구부터, 날개가 있어서 용서를 구할 것이 있는 사람에게 날아간다, 좋은 생각으로 바꿔주기 때문에 ‘다시 생각하는 의자’라고 이름 붙이는 등 인상적인 내용이 많이 나왔다.
저자가 안내하는 그림과 시의 여행은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고 예술작품을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내 삶 속에 적용하게끔 해준다. 시간을 갖고 한 편씩 다시 읽어보고 나누고 공감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기대보다 더 멋진 책이었다.
(고흐 씨, 시 읽어줄까요/이윤진/사계절) (출판사 도서 제공)
② [서평] 김수정의 『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아트북스- 일상에서 누리는 미술, 적극 활용 프로젝트 (20210301)
김수정의 『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아트북스)』는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는 ‘손쉬운’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미술의 위로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9p)”라는 마음을 담은 따뜻한 초대장으로 시종일관 그 길을 안내한다. 오랜 기간 교육 현장에서 소통해온 시간은 대상자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에 관심을 두게 했고 본인이 검증한 가장 좋은 것들로 채워 선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시대가 어쩌면 형식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포장을 걷어내고 본질을 선택하고 내면의 성장에 집중하게끔 강제했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았지만 익숙해지도록 그래서 충만하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저자의 응원이 전해진다.
이 작지만 예쁜 책,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책,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지만 늘 선망했던 나의 시간을 ‘잘했어’라며 지지해 주는 책, 내가 아는 것 다 알려줄게 하며 아낌없이 내어주는 책, 나의 내일이 달라질 것 같다고 가슴 뛰게 하는 책, 줄과 체크로 가득 채워진 책 “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를 다시 열어 본다. 첫 장은 강렬한 그녀, 프리다 칼로다. 화집은 물론이고 인물 이야기부터 여러 버전의 그림책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다양한 각도로 조명되는데 SNS 셀러브리티의 가능성은 공감되면서도 신선했다. 결국 해시태그와 검색과 좋아요에 소심 미적지근했던 나조차 긍정 게이지가 약간 상승한다.
“그림을 부르는 그림”에서는 앞선 그림의 영감을 받아 그린 오마주 작품들, 짝을 이루는 연작들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루이 베루가 나오는데 그는 20장 “미술관에서 그림 그리기를 허하라”에 재등장하고 이번에는 “모나리자 도난 사건”과 함께 기억에 남는 이름이 된다. “뭉크는 그림을 자식처럼 예뻐해서 그림을 팔았더라도 똑같은 그림을 다시 그려 모든 그림을 자신이 갖고 있기를 원했다(49P)”는 말에 뭉크가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취향은 수많은 실패와 낭비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53P)”는 말과 함께 자신만의 “궁극의 넘버원”을 갱신하려는 노력, 열정은 배우고 싶다. “취향을 선물하는 사람”을 읽으며 동유럽 여행에서 클림트 우산을 선물해 줬던 후배를 떠올렸다. ‘뭐 이런 걸 다’ 머쓱해하면서도 정작 손 떨려 비닐도 못 빼고 먼지 속에 고이 간직하는 명화 우산, 이제 꺼내야겠다 마음먹으며 선물 목록을 작성할 생각에 내 맘도 몽글몽글해진다.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그러나 강렬했다는 그웬 존의 “누드 소녀”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의 그 정물화가 선명히 떠올랐다. 너무 작은데도 너무 강력했던 그림, “해골, 촛대와 책” 세잔이었다. 촬영 금지 표시 앞에 그림을 외워야 하나 생각하며 미치는 줄 알았다. 왜 검색을 하지 않았을까 그 또한 불가사의다.
“그러나 모든 감상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같습니다. 바로 미술을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76P)” 이 문장에 별표를 한다. 미술 일기 쓰는 법부터 트레이싱,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사이트 목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품과의 인연, 부럽기 그지없는 마인드맵의 빼곡함, 영화 속 그림 찾기······그렇게 다시 페이지를 넘긴다. 마지막으로 “너와 함께라면, 미술관”에서 나의 인생의 미술관, 너무 오래 가보지 못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올해는 가보리라 내게 약속한다.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를 밀고도 갔던 곳, 아기의 소중한 목각 버섯 딸랑이를 잃어버려 경사진 통로를 무한 반복 수색했던 곳, 조각 공원의 “노래하는 사람”을 보고 “아저씨가 왜 저래?”끝없이 묻던 아이, 그 아이가 훌쩍 커 대학생인데 다시 손잡고 가볼 생각이다. “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속 “미술로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따로 엮은 팁만 잘 활용해도 알차고 훌륭한 방법론이 될 것이다.
서평 8년 차 시점>
『고흐 씨, 시 읽어줄까요?』는 많이 들고 다닌 책이다. 서평에서도 말했듯이 ‘앉기만 하면 누구나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의자가 있다면?’이라는 저자의 질문을 가져왔을 때 초등 3학년 친구들의 대답은 지금까지도 마음을 몽글하게 한다. 학부모 독서수업을 의뢰받았을 때도 이 책의 어떤 장면들은 서로를 비춰 보이게 했다.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마지막의 급한 마무리, 약간은 쓰다 만 듯한 서평이 아쉽다. 서평 제목에서 저자와 출판사 누락도 계속된다.
『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는 활용도 높은 정보가 빼곡해 다이어리에 리스트를 작성하며 ‘최소한 이것만은!’ 결심케 했다. 저자 소개에 적힌 ‘「책가도」를 섬세히 수놓은 비단 가방’을 들고 매일의 일상에서 누리는 미술, 그 단단한 기쁨이 독자에게도 전해졌다. 특히 ‘우연처럼 그림을 만나 숙명처럼 미술인이 되었다’는 글을 보며 나 또한 우연처럼 서평을 만나 숙명처럼 서평가가 될 수 있으려나, 그럼, 있고말고! 씩씩해졌다. 나를 위한 올해 선물로 오랜만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가보리라 했건만 아직이다. 빨간 별 하나를 급히 추가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