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지’ 싶을 수도 있다.
떠나고 만끽하기를 원하지만 만만치 않은 현실 앞에 독서는 또 다른 선택지다. 고퀄의 영상물을 보는 것 못지않게 책을 펼쳐 읽는 동안은 시공간을 초월한 간접 체험의 장이 된다. 아직 오사카에 가 본 적이 없지만 궁금한 것들의 항목과 답을 『처음 오사카에 가는 사람이 가장 알고 싶은 것들』에서 배웠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호주 TOP10』은 또 다른 호주 관련서를 만나게 했고 마침 남편의 20주년 근속 포상 여행지가 호주여서 책은 더 각별해졌다.
유독 무덥고 쨍했던 어느 해 여름, 늦은 밤까지 카페에 앉아 『로맨틱 플리마킷』의 마지막 몇 장을 끝내고 있었다. 가끔씩 서 있는 책등의 제목이 눈에 비칠 때면 그 여름의 더위와 시원했던 밤의 카페, 가본 적 없는 장터의 소란스러움이 동시에 떠오른다.
『라오스가 좋아』를 읽으며 장엄한 메콩강의 물살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읽는 일은 꿈꾸는 것과 같고 이에 대한 서평은 ‘나 또한 이러하리라’하는 버킷 리스트 늘리기가 된다.
짧은 뉴욕 여행을 앞두고 오랜만에 신청했던 서평단 모집을 통해 『뉴욕 100배 즐기기』를 읽고 비행기에 태웠으며 다녀와서는 기억 또는 기념을 위해 존 더스패서스의 『맨해튼 트랜스퍼』와 미겔 탕코의 그림책 『어서 와, 여기는 뉴욕이야』를 읽고 썼다.
공항은 내가 그곳에 있는 순간에는 그저 ‘절차’나 ‘통과’에 집중하는 장소이지만 시간의 간격을 두고 나면 캐리어의 드르륵 끌리는 소리와 분주함의 불편마저 그립게 느껴진다. 특히 요즘처럼 공항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 까다롭게 확인하고 관리함에도 의심과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이후. 『인문학, 공항을 읽다』는 다시 꺼내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인문학’과 하나의 주제가 결합된 제목을 언제부터인가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독자로서는 반갑다. 새벽형 인간이 작은 로망임에도 끝없이 내일을 기약하기에 『새벽의 인문학』도 특화된 처방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 서평>
① [서평] 로맨틱 플리마켓 여행- 달콤한 시장구경, 마음은 이미 그곳에~! (20170804)
해외여행에서 필수 코스는 플리마켓 방문이라고 믿는 사람으로서 ‘로맨틱 플리마켓 여행’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달콤한 감상에 젖어든다. 미국과 호주가 해외여행의 전부인데 산호세의 토요 시장 구경은 여전히 즐겁게 기억된다. 그날의 환상적이었던 하늘과 구름조차 잊혀지지 않고 한 장의 사진처럼 새겨져있다. 그때를 떠올리며 저자의 여행길에 슬쩍 동승하는 기쁨을 만끽한다. 연보라 표지를 반투명 유산지로 덧씌운 표지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감탄하며 책장을 펼친다.
책을 펼치는 것 만으로 방콕, 도쿄, 타이페이, 한국까지 네 곳의 대표 플리마켓을 체험할 수 있다. 방콕의 야시장 방문은 여전히 나의 to do list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이렇게 한번 구경해본다. 태국 전체에 있는 온갖 예쁜 잡동사니가 모여있다는 짜뚜짝 시장의 복잡하고 환상적인 광경을 글과 사진으로 열심히 따라가며 동시에 상상력도 발동시킨다. 그러다 보면 이국적인 음식들의 향기도 스치는 듯 하니 푹 빠진 것이 틀림없다.
왠지 도쿄의 플리마켓은 정갈하고 단순한 물건들이 많을 것 같았는데 골동품 시장에서 선보이는 것들은 그렇지도 않다. 야마하가 가구도 만들었었다니 저자가 가져오지 못한 스툴이 아쉬워지기도 한다. 플리마켓에서 만나는 독특한 물건들도 멋지지만 그곳에서 맛보는 음식도 잊혀지지 않는 영원성을 갖추게되는 것 같다. 그곳이 다시 찾기 어려운 여행지라서 그런것일까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의 플리마켓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더 좋았다. 제주 벨롱장은 특히 명소인 것 같다. 간략한 지도와 함께 ‘시장여행 꿀팁’에서 실제적인 정보도 제공한다. 혹시 남미나 유럽의 플리마켓 여행도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게 된다.
몇 해 전 미국의 플리마켓에서 구입했던 것들이 생각난다. 5달러짜리 밀짚모자, 도통 실용성은 없을듯했던 목각 쥐 스템플러(지금 아이가 잘쓰고 있다), 기념판 키세스 퐁듀세트 등등.... 이런 물건들은 오랫동안 그 여행의 분위기를 기억나게 해준다. 사람의 기억력 한계를 이렇게 의지하며 극복해본다. 산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늘 두고 온 것에 대한 미련이 크다. 나도 또 가고 싶다. 내가 갔던 그곳, 내가 보지 못한 그곳으로...!!
(출판사 도서 제공)
② [서평] 미겔 탕코의 『어서 와, 여기는 뉴욕이야』 미겔 팡 그림/문학동네/정혜경 옮김
- 단비처럼 반가운, 책으로 뉴욕 여행(20210329)
미겔 탕코의 『어서 와, 여기는 뉴욕이야 (문학동네/미겔 팡 그림/정혜경 옮김)』는 여행이 멀어진 요즘 단비처럼 기다렸던 작품입니다. 책을 받은 순간 가장 기뻤던 것은 세로로 긴 판형이었습니다. 판형이 이미 8할을 다 했다는 것은 과장이겠지만 어렴풋한 머릿속 이미지를 ‘이게 바로 뉴욕이지’하는 안도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핑크 계열의 건물과 청아한 블루의 하늘색이 표지 화면을 채웁니다. 찾아볼 것들이 더 많지만 넘겨본 면지는 초록, 잔디에서의 휴식처럼 쉽을 줍니다. 단정하게 제목만 보이는 첫 번째 타이틀 표지, 두 번째 타이틀 표지는 헌사와 함께 5인용 자전거가 쌩 지나갑니다. 흩날리는 머리칼을 보니 속도감이 느껴지네요.
“나는 원래 여기서 한참 떨어진 시골에 살았어.(책 속에서)” 첫 문장의 주인공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찐 뉴요커는 아닌 것 같네요.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 안의 풍경은 평범해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 머무른다면 이 카페 커피잔 세트에 눈독을 들이게 되고 베이글이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합니다. 빼곡한 건물 사이로 투어버스도 지나가고 복잡한 거리를 태연히 걷는 사람들. 내 자리를 딱 찾아냈다고 장담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이 누굴지 짐작되나요?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뉴욕은 주인공에게도 특별한 도시가 됩니다.
“어서 와, 여기는 뉴욕이야”는 이 특별함을 간결한 문장과 화려한 그림으로 조화롭게 또는 상상의 여지를 불러일으키며 전달합니다. 정보 없이 보이는 대로만 한 번 보고 난 후, 부록의 명소 설명을 꼼꼼히 읽은 후 다시 본다면 즐거움은 배가 될 것입니다. 벼룩시장도 공원도 박물관도 좋지만 뉴욕 공립 도서관 장면은 액자에 걸어두고 싶은 근사한 장면입니다. “요즘 나는 오래되고 어려운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어. 새로운 취미라고나 할까?(책 속에서)” 이 취미 저도 공유하렵니다.
열두 개의 장면으로 뉴욕을 소개하는 “어서 와, 여기는 뉴욕이야”는 작가들의 도시에 대한 애정이 잘 느껴집니다. 수많은 고민 끝에 선정되었을 장면이기에 더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이 책의 특별함은 ‘숨어있는 이야기’에 있습니다. 도서관이나 거리에서 인간의 위치에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동물들도 있고, 작고 귀여운 동물들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아마 어린이 친구들은 작은 동물 친구들을 밝은 눈으로 끝없이 찾아낼 것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비밀한 우정을 나눌지도 모릅니다. 뉴욕에는 하나의 세계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뉴욕이 개인적으로 특별하게 남은 이유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2020년 1월에 스치듯이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하루도 못 되는 반나절의 시간을, 그중에서도 대부분을 라이언 킹 뮤지컬을 보느라 극장 안에 있었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 했던 곳. 그럼에도 대학생이 된 아이는 길면 한 달, 짧으면 일주일 머물렀던 일본과 러시아,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 보다도 뉴욕을 최고라 꼽습니다. “어서 와, 여기는 뉴욕이야”가 추억을 또는 버킷 리스트를 소환하며 도시를 보여주었는데도 여기서 멈출 수 없다면, 뉴욕을 기념할 무언가를 더 찾는다면 앙투완 기요페의 커팅 그림책 “리틀 맨”도 좋을 것입니다. ‘뉴욕 쥐 이야기’도 꺼내 보고 “맨해튼 트랜스퍼”의 잿빛 여운도 즐겨보고요. 하지만 마무리는 역시 ‘유쾌한 초대’, “어서 와, 여기는 뉴욕이야”가 제격일 것입니다. 봄이라는 계절에, 지금이라는 인내의 시기에 희망과 꿈, 설렘을 심어봅니다.
서평 8년 차 시점>
『로맨틱 플리마켓 여행』 서평은 다시 읽어봐도 서평의 목적에 부합하느냐보다는 ‘나도 가서 놀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울어버린다. 알록달록한 사진도 많았는데 사진까지 올렸다면 소개와 추천에는 더 좋았을 것이다. 정보와 느낌의 균형 맞추기를 목표로 하는 서평이기에 마지막 문단에 평(評)이 아닌 소회를 쓰는 것이 옳지는 않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여전히 이런 서평을 쓰겠다는 빨간펜을 부르는 몹쓸 의지가 있어 문제다.
『어서 와, 여기는 뉴욕이야』 서평은 여전히 혼자만의 경험을 결부해서, 그것도 본격적 비평의 위치인 마지막 문단에 썼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분량이 길지 않으니 넘어가자. 종결어미는 반드시 ‘이다’체를 사용해야 한다는 내적 약속이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그림책을 비롯한 특정 경우에는 입말체, ‘해요’체를 쓰고 있다. 가끔 ‘모터 단 서평’이 써지곤 하는데 이 책도 그중 하나였다. 고민 없이 한 번에 쓸 때의 쾌감이란! 아무튼 서평을 읽다 보니 다시 책을 꺼내오고 싶다.
덧> 앨러스테어 험프리스의 『모험은 문 밖에 있다』를 잊을 뻔했다. 일상만으로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여행도 꿈같은데 '모험'씩이나? 저자가 소개하는 38가지 마이크로 어드벤처, 그 중에서도 ‘비박하기’편을 읽고는 침낭을 검색하게 된다. 벌써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나민애의 『책 읽고 글쓰기』중 한 문장을 기록하고 싶다.
블로그 서평은 독서 여행기이고 나만이 구축할 수 있는 책들의 실록이다.
이 행위는 여행만큼이나 매력적이다.(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