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먹는 꿈별 Oct 20. 2021

11. 언제까지 남의 책 읽고 독후감을!

너의 책을 써라

어느 해 봄 ‘도서 서평가’ 이권우 교수님의 12차시 글쓰기 강좌에 참여했다. 저서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구성처럼 잘 읽는 법과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대학 한 학기 강의를 12주에 진행하니 학교 다닌다 생각하라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난다. 첫 수업 때 글쓰기의 가장 큰 적은 ‘내가 쓴 글을 남한테 알리지 말라!’는 충무공 정신이며 ‘내가 쓴 글을 널리 알리라’는 단군 할아버지 정신이 옳다고 하셨다.      


강좌 후반에는 두 번째 교재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을 중심으로  자서전 쓰기에 매진했다. 감사하게도 자서전 첫 수업 때 무척이나 꼼꼼히 나의 연표를 봐주셨다. 당사자는 자신의 이야기가 지루한데 교수님은 갖춰야 할 시각과 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강조하신다.      


지금 그때의 노트를 보니 ‘이 시기는 A4용지 4장 이상 소설처럼 맘껏 써라-숙제’라는 메모가 눈에 띈다. 부모님을 인터뷰하며 채워가던 ‘나의 이야기’는 다시 파일 안에 잠자고 있고 숙면을 취하는 중이다. 마무리 짓지 못한 숙제다.      


읽고 쓰며 추임새처럼 ‘힘들어’를 종종 끼워 넣는 일상, “언제까지 남의 책 읽고 독후감만 쓸 거야.” “당신 이야기를 써봐! 더 늦기 전에.” 충고는 계속된다. 못다 한 숙제가 주는 무게는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성찰과 치유, 새로운 의지를 갖게 하는 ‘자서전 쓰기’. 누구나 버킷 리스트에 올려봄 직하다.

      

이권우 교수님의 추천 자서전은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였다. 국내 자서전 중 반드시 읽어야 할 Top 3로는 『백범일지』, 『돌베개 :장준하의 항일대장정』, 김준엽 자서전 『장정』을 들었고 『장정』은 다섯 권 중 1권 만이라도 읽기를 권하셨다. 필기만 해 두었었는데 이번에 숭례문 학당 독서토론 심화 과정을 마치면서 자서전과 평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 권씩 읽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편의 서평을 꺼내온다.   




그때 그 서평>    

 

 [서평매튜 존스톤의 굿바이 블랙독』 생각속의집/채정호 옮김

꼭 필요한 영혼의 비타민 한 권 (20200930)     


매튜 존스톤의 “굿바이 블랙독(채정호옮김/생각속의집)”은 ‘내 안의 우울과 이별하기’라는 부제의 심리 그림책입니다. 화이트와 블랙의 대비가 깔끔한 책의 표지는 바닥에 웅크려 앉은 사람과 이를 주시하고 있는 커다란 개의 실루엣이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모습으로 앉아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면서 동시에 어떤 마음일지 알 것도 같습니다. 내가 저런 마음이었을 때, 그때가 떠오르면서요. 서울성모 정신건강의학과의 채정호 교수님이 번역과 후기를 쓰셨기에 작품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뿐 아니라 어떤 말씀을 주실까 기대하게 됩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9·11 테러 사건이 집필 동기가 되었음을 밝힙니다. “인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짧다”는 교훈은 그를 움직이게 했고 어느 날 4시간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고 하니 18년 넘게 고통받던 블랙독을 스스로 직면하고 풀어놓는 순간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우울증과 블랙독을 처음으로 연관 지은 작가는 새뮤얼 존슨이었고 이 비유를 대중화시킨 사람이 윈스턴 처칠이라고 합니다.(8p) 블랙독이라는 상징을 사용함으로 ‘만남, 대면, 화해’로 이어지는 세 개의 장은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선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십여 년의 고통이라면 할 말이 흘러넘칠 것 같은데 저자는 예측 가능한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쉽고 일상적인 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임에도 블랙독과 함께 사는 날들을 공감하게 합니다. 동시에 삽화는 특별한 빛을 발하는데 짧은 텍스트를 몇 배로 보강하는 효과를 냅니다. 삽화가 글을 설명하는 기능을 넘어서 그림만 한동안 바라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어 지곤 하거든요. 주인공이 겪는 두려움, 슬픔, 괴로움, 무기력함, 소외감, 분노, 자포자기, 결단···등의 여러 가지 감정들이 그림 한 컷으로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나는 다양한 종류의 블랙독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68p)" 이토록 많은 블랙독들이라니! 사람은 누구나 크거나 작거나 여러 생김새, 여러 덩치의 블랙독을 데리고 살고 있구나, 반박할 수 없는 사실임을 인정합니다. 그러고는 마음이 쑤욱 내려가며 편안해지니 이상한 일이지요? 블랙독을 길들이는 방법들로 ‘기분 기록표’를 작성해 볼 것을 권합니다. 치유 글쓰기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나만 알아볼 수 있도록 상징이나 기호로 표해도 된다고 하니 시작하고 싶어 집니다. 첫 장과 마지막 장 주인공의 표정을 비교할 때 안도하며 미소 짓게 되네요. 긴 시간의 고통을 견뎌내고 이토록 아름다운 선물을 만들어 준 작가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영혼의 비타민 한 권’입니다. 

(출판사 도서 제공)     



 [서평올리버 색스의 온 더 무브』 알마/이민아 옮김  

이성과 감성이 축제처럼 어우러졌던 삶 (20210817)     


『온 더 무브(On The Move)/알마/2015』는 뇌신경 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으로 2015년 암의 전이로 세상을 떠나기 약 4개월 전 출간되었다. “나는 모든 신경학이, 세상 모든 것이 일종의 모험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던 그의 데뷔작은 『편두통』이다. 이후『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색맹의 섬』등의 저서에서 환자를 질환으로 대하지 않고 전인격으로 존중했던 일관된 시선을 만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문학적인 글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올리버 색스를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칭했는데 그의 목소리는 생기가 넘치고 운율 같은 진심으로 가득해 독자의 가슴을 벅차게 한다.     


『온 더 무브』는 ‘온 더 무브’에서 마지막 “집”까지 열두 개의 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테마별로 담아낸다. 부모님과 두 형이 의사였기에 자신도 의사가 되는 건 가족 모두에게 당연히 여겨졌다. 하지만 색스에게 세상은 온통 호기심 가득한 대상이었다. 화학자도 해양생물학자도 꿈꾸었고 무엇보다 실험과학자가 되고 싶었으나 큰 형이 훈련받았던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그는 지도교수 크레머와 질리어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올리버 색스의 특별한 점을 곧 알아차리게 된다. 자서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중한 사람들을 잊히지 않도록 글로 붙잡아 기록하는 과정은 숭고함이 느껴지고 작은 분량으로 할애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애정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그들 모두에 대한 헌사는 가장 품위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색스의 인생에 등장했다가 무심히 사라지는 사람은 아마 없었겠다 생각될 만큼 그들과 맺었던 관계를 종결에 이르기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고 지켜낸다.     


올리버 색스의 탐험심과 실행력, 순수한 몰입, 열정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모터사이클과 속도와 자유로움, 우연으로 시작해 따뜻한 여운을 남겼던 트럭 운전사와 트럭 휴게소에서의 짧은 교류, 역도인들과 대결해 머슬비치의 일원이 되고 스쿼트 박사라는 별명을 얻었던 일화, 훗날 역도로 반쯤 망가진 몸을 바라보며 후회하던 순간 등은 시선을 끈다. 마약에 탐닉했던 젊은 시절과 피하지 못했던 실수담, 가족, 특히 어머니에게 큰 상처였고 자서전을 통해 처음 밝힌 동성애 등 저자는 책을 거울삼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숨김없이 비춘다.     


미심쩍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인생 최악의 시기를 겪게 했던 편두통 클리닉 원장 등 상처 받았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는 그 시간을 “이 원숭이가 드디어 내 등짝에서 떨어져 나갔군.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어.”(p.189)라고 쿨하게 매듭짓는다. 레니 이모에게서는 전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한 사람의 힘에 감동할 수 있었다. 형 마이클의 정신증과 삶, 가족들의 어려움, 영국을 떠날 때 ‘희망 잃고 방치된 애처로운 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p.78)이었다는 고백과 이로 인한 죄책감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의 애도와 충분한 애도로부터 긍정적 경험을 하고 이후 다시 상실감에 빠지는 감정의 사이클도 솔직히 공유한다. 자기 자신은 물론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묻고 계속해서 답을 찾고 기꺼이 나아간다.     

올리버 색스는 경험한 것들을 글로 남기는 성실한 기록자이자 열렬한 독서가다. 삽입된 사진들 중에서 “글쓰기: 자동차 지붕에서, 암스테르담 기차역에서, 기차에서.”(p.163) 제목의 사진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온 더 무브>를 읽는 즐거움 중에 색스의 작품들을 조금씩 엿볼 수 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발췌로 실린 부분들은 훗날 나올 책들의 출간 배경과 에피소드를 잘 보여주기에 읽어야 할 책 목록은 계속 늘어난다.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진심으로 아꼈던 그는 그들을 한 사람씩 불러내어 예를 갖춘다.     


루리아의 저서로부터 병례사의 기준을 발견하고 <깨어남>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책의 원형이 되었음을 밝힌다.(p.218) <깨어남>에 대한 글을 청탁받자 더 이상 손댈 필요가 없다는 편집자의 만류에도 ‘또다시 불만족스러워 세 번째 원고를 썼고, 그날 오후에 네 번째 원고를 썼다. 그 일주일 동안 내가 보낸 원고는 총 아홉 편이었다.’(p229)는 데서 열정의 정도를 감지할 수 있다. 환자들의 격려와 허락 없이는 쓸 수 없는 책, <깨어남>을 쓰는 과정에서도 환자와 의사 이상의 신뢰관계가 가능했기에, 저자의 태도와 성정에 사람들은 마음을 열 수 있었기에 작품은 하나씩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 모든 부침과 곡절 속에서도 그들이 우리와 얼마나 똑같은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었다.’(p.250)     


또한 날라가거나(고속도로에서), 돌려받지 못하거나, 유실되거나, 심지어 불태워지기까지, 잃게 된 원고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아쉽기 그지없다. ‘씨티 아일랜드’ 편의 시인 톰 건과의 대화나 편지에서 나누는 ‘글쓰기’ 관련 문장들도 인상 깊다. 톰은 편지에서 처음 만났을 때 색스에게 인간애 또는 연민이라고 불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깨어남>을 읽은 후 “그때 네가 썼던 글에서 빠져 있던 그것이 지금 <깨어남>에서 최고 지휘자 역할을 해냈어. 그것도 아주 멋지게. 네 글쓰기 스타일 자체도 인간애가 지휘하고 있어.”(p.343)라고 기뻐한다. 결국 1000권의 일기, 메모와 편지, 1000권이 넘는 공책에 담긴 임상일지까지 남긴 색스는 말한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좋든 나쁘든, 그렇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향, 서사를 좋아하는 경향은 언어 능력, 자의 식, 자전기억과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p.466)라고.   

  

밝은 기조의 에너지 가득한 이야기는 적지 않은 분량에 빽빽이 담겼다. 하지만 실패와 아픔, 상실과 곤란함도 외면하지 않는다. “몸이나 정신이 병든 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보내 놓고 없는 척하며 살려는 우리 ‘문명’ 세계의 의학, 우리 사회의 관습은 얼마나 야만적인가?”(p.400)와 같은 지적은 독자에게도 화두를 던진다. 그는 때때로 질문하고 많이 감탄한다. 곁에 있는 사람들의 재능과 의지와 가능성에 보내는 박수를 글로 풀어낸다. 그의 시선은 따뜻해서 온기가 느껴진다. 그를 통해서 특별한 순간들을 공유할 수 있었던 점도 축복이다. 예를 들어 그가 전해 들었던 사기그릇 떨어지는 소리까지 내며 그 위대한 인물 아인슈타인이 손수 커피를 끓이는 장면이나(p.365) 로빈 윌리엄스와의 촬영이나 올더스 헉슬리의 강연 등이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색스가 보고 통과한 모든 지점을 함께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 값지게 다가온다. 이성과 감성이 축제처럼 어우러지는 최고의 자서전으로 올리버 색스의 『온 더 무브』를 추천한다.


발췌>

-톰이 이십대에 쓴 <온 더 무브>에 이런 행이 나온다.     

아무리 나빠도 우리는 움직인다, 아무리 좋아도

절대에 가닿지 못하는, 안식할 곳 없는 우리,

언제나 멈춰 있지 않아, 더 가까워진다.(346p)     

-평생에 걸쳐 내가 써온 글을 다 합하면 수백만 단어 분량에 이르지만, 글쓰기는 해도 해도 새롭기만 하며 변함없이 재미나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던 거의 70년 전의 그날 느꼈던 그 마음처럼.(p.466)     




서평 8년 차 시점>


“(중략) 어느 날 오후, 자리에 앉아 이 책을 쓰기 시작했고 4시간쯤 지난 후에 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껏 작업한 것들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쉬운 일어었고, 진짜 말 그대로 제 안에서 술술 흘러나온 것을 그대로 썼습니다.”(p.12 프롤로그/굿바이 블랙독) 

기적 같은 집필 히스토리로 ‘자기 이야기의 강점’을 보여준다. 분량은 많지 않다. 하지만 어느 한 장면 넘치거나 아쉬움 없이 필수 불가결한 페이지의 연결을 확인할 수 있다. ‘내 이야기’가 가진 힘이 아닐까. 이 서평은 종결어미를 바꿔 글의 분위기도 달라졌는데 다시 쓴다면 수정할 것 같다.  

    

올리버 색스를 작품이 아닌 자서전으로 먼저 만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색스를 대신해 진행한 역자의 인터뷰는 그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색스의 열정과 뛰어남, 이에 더해 연약함과 인간적인 면모까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온건하고 평균적인 서평이라고 생각된다. 문제의식이 드러나지 않은 비평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이런 책에 무슨 비평을 하겠는가 꿋꿋하게 합리화해본다.)     








이전 10화 10. 책과 커피면 불로장생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