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먹는 꿈별 Oct 21. 2021

19. 독서의 궁극은 서평,
서평의 궁극은?

더 넓은 지평으로/세 권의 책으로 서평 하기

조현행은 『서평 잘 쓰는 법』에서 독서를 통해 세상에 대한 앎과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그것에서 나만의 생각을 벼리고 가다듬어 자신의 언어로 표출할 줄 아는 것이 ‘독서의 궁극’이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서평 쓰기’라고 한다.(p.26) 이원석은 『서평 쓰는 법』에서 ‘서평 쓰기의 귀결’에 대해 말하는데 바로 ‘독서를 통해 획득한 자아와 타자에 대한 깨달음을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하는 것’이며 ‘앎과 삶의 일치, 즉 인격의 통합을 추구한다’(p.49)고 정리한다. 결국 독서 전과 후는 명백히 다른 상태인 것이 당연하고 그때 연결기 역할을 하는 게 서평이다.      


서평 쓰기의 목표에 공감한다면 조금 더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도 덧붙일 수 있겠다. ‘서평의 궁극은 (      )이다.’라는 문장 완성 질문에는 어떤 답이 가능할까. 기억 또는 기록이라는 답은 약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인터넷 서점 블로그의 소개 문구를 ‘기록을 위해서’라고 여전히 적고 있다. 기록이라는 일차 목표에 도달하는 일도 버거울 때가 있지만 꾸준히 나아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록 전과 후의 태도나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보인다.      



그때 그 서평>


[서평] 세 겹의 초대장, 놀며 사랑하며 배우며(20201214)

주제> 내 최애는 내가 성공시킨다 - 덕후를 꿈꾸게 하는 책 3     


올 한 해는 바람 날개를 달고 속절없이 빨랐던 것도 같고 ‘곧 좋아지겠지’, ‘언제쯤일까’ 고대하는 마음으로 해결, 정복, 종식 같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내내 기다렸으며 불안한 현재도 마찬가지다. 예측 불가능했던 형태로 일 년을 보내며 내가 가졌던 것을 회상했고 당연했던 것은 언제라도 그리움의 대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체험했다. ‘거리두기’는 전방위적 전제조건이 되어 서로를 뚝뚝 떨어뜨린다. 그렇게 떨어져 앉아 읽은 어떤 책은 경이로울 지경으로 혼자 행복할 것인가, 항복하고 자랑할 것인가 망설이게 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데 세 가지 유형을 모두 선망하는 범인(凡人)으로써 그들의 모습을 살피는 기회는 늘 반갑다. 놀이처럼 즐기며 살고, 그 삶을 사랑하며, 직전의 자신을 또다시 극복하고 배움에 기뻐하는 뫼비우스 띠와 같은 살아내기를 엿본다.     


이 책에 나만의 수식어를 붙인다면? 올해의 잇북, 올해의 발견, 놀람 책(서프라이즈 북), 북봤다(심봤다로부터) 등으로 이어진다. 바로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으로 연주회에서 들었던 바흐의 “푸가”가 주요 집필 동기로 작용해 1947년 초판 발행 후 음악, 연극, 시청각 자료 등 다양하게 변신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작이다.(152p) 대중뿐 아니라 명사들의 찬사 또한 이어지며 ‘전무후무한 글쓰기’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2년 전 매트 매든의 “스토리텔링 연습”을 읽고 이런 책이 있다니, 무한 자랑을 하며 중학생 친구들과 따라 하기 열전을 펼쳤는데 마침내 오마주의 대상이었던 원전 『문체 연습』을 만나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띠지의 뒷면에 “사람은 글을 쓸수록 달필가가 된다.”는 단언이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격려로 다가오면서 용감하게 책장을 넘긴다.      


독보적 커리어를 이어가며 다양한 지적 실험에 적극적이었던 레몽 크노는 “문체 연습”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독자인 나는 한참이나 “문체 혁명”으로 읽고 있었다. 띠지 앞면 1928년에 찍은 레몽 크노의 연속사진은 음악으로 먼저 접한 변주의 발상을 글은 물론이고 자신의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떨지 말고 이렇게 해봐’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기도 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글쓰기라는 숭고함이 혹여 손상······”등 입속에서 우물대며라도 만류해야 하지 않을까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크노는 거리낌이 없다. 그의 유쾌함은 전염성이 강해서 펜을 쥔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종이에 붙어있는 나 자신을 발견케 한다. 무한히 확장 가능한 99개의 힌트는 온통 독자의 것이다. 선망이 커 병이 될 것 같던 라틴어조차 단 몇 초만에 간파하고 나의 문장으로 써볼 수 있게 해 주니 놀이 같은 연습, 가상 체험일지언정 감사할 따름이다. ‘다 괜찮아!’하는 과감한 허용은 너무나 시원한 시도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제 여러분도 문체 연습의 무한 지대에 입성하게 될 것이다. 문체뿐 아니라 사진 연습, 그림 연습, 라벨의 볼레로나 모네의 수련 연작을 누구나 꿈꿀 수 있듯 내가 원하는 무엇으로도 가능하다. 의기양양 멋들어진 길라잡이인 셈이다.      


20세기 후반 실험 문학 모임 울리포에는 레몽 크노뿐 아니라 조르주 페렉도 속해 있었다. 나는 공간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어떤 면에서 시간보다 공간이 추억을 또는 가치를 온전히 내포한다. 서울 속의 프랑스를 재현하던 곳에서 결혼 후 십여 년을 지내다 주말부부는 이제 그만, 선언하며 내려온 이곳, 베란다 창을 여니 갯벌이다. 생경했던 장소가 일상이 되어가며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지, 언젠가는 이곳 또한 그리울지 생각에 잠긴다. 조르주 페렉 선집 중 처음 선택한 작품은 그래서 주저 없이 『공간의 종류들』이었다. ‘공간’을 주제로 최대한의 사유, 탐험, 시도를 집대성했으며 작품 자체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질문하고 확대되는 동력을 지녔다. 이제껏 당연시해온 공간을 처음 시력을 얻은 듯이, 처음 살기 시작한 듯이 명명하고 정의 내리고 무엇보다 기록으로 남긴다. 기간을 정해 그에게 특별했던 장소를 기록하던 작업은 안타깝게도 중단되었다고 하는데(177p) ‘특별했던 장소’는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전속력으로 기억에서 옅어져 간다. 옥상과 다락방이 있었다는 어릴 때 살던 집이 나의 기억에는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페렉이 선택한 첫 번째 공간이 ‘페이지’인 점은 적절한 출발이다. 작가에게 페이지란 시공간을 초월한 모든 때, 모든 곳을 의미할 것이다. 종이에 단어를 쓰는 행위가 행을, 공백이나 간격을 만들어 내는 법, 자신의 주된 행위인 글쓰기가 공간을 점유하는 방법에 대해 기록한다. 책을 펴기 전에 내가 페렉이라면 공간을 말하는 책을 어떻게 구성할지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페렉의 두 번째 제목은 ‘침대’, 곧이어 ‘아파트’로 넘어간다. 늙은 볼꼰스끼 공작이 쉽게 잠들지 못해 밤새 이방 저 방을 돌아다니던 장면을 소환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방, 나도 모르는 방을 간직한 아파트를 상상하는 시간이다. 돌연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공습을 피해 시골 대저택으로 피난 온 사형제가 숨바꼭질하던 저녁, 연이은 방 문들 앞에서 숨을 곳을 찾다 커다란 옷장으로 들어가던 장면도 겹쳐진다. 이쯤 되면 나니아조차 자연스러워진다.     

 

‘도시’ 편도 흥미롭다. ‘나의 도시’에서 페렉은 “수많은 장소가 구체적인 기억들에 연결되어 있다. 가령, (중략), 또는 이곳은 내가 어린 여자 조카가 뛰어노는 것을 돌보면서 발자크의 「나귀 가죽」을 읽었던 작은 공원이다.(104p)”라고 말한다. 장소와 기억의 연결은 앨범 속 사진처럼 간직되곤 한다. 이렇게 페렉의 문장을 치환해본다. “저곳은 붉게 노랗게 물든 단풍을 보면서 발자크의 「나귀 가죽」을 읽었던, 지금은 코로나19로 폐쇄된 사택의 독서실이다.”  나는 문학동네 카페 ‘테마로 세문 읽기’ 코너를 통해 페렉과는 한참을 동떨어진 시간과 장소와 이유로 동일한 작품을 읽었다. 의미와 무의미, 우연과 필연은 섞이고 흥미와 호기심은 남는다. “공간을 가지고 놀기”, “살 수 없는 곳”까지 정신없이 넘기다 보면 곧바로 페렉의 다음 책을 고르게 될 것이다. 『공간의 종류들』의 부제는 어쩌면 “흔적을 기억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겠다.      


공간과 기억의 연결 이외에 또 다른 ‘연결’을 페터 한트케의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에서 기대했다. 최고의 화가에게 최고의 작가가 바치는 헌사가 세잔의 작품만큼이나 아름답겠지, 과연 최고의 연결 아닐까 하면서. 세잔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화가는 아니지만 알아야 할 중요한 예술가임은 분명하다. 작년에 초등학교에서 진로독서캠프를 “내 마음속의 별, 멘토를 찾아라”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는데 그중 ‘화가’ 차시 멘토로 세잔을 선정했었다. 친구 에밀 졸라와의 사과에 얽힌 안타까운 에피소드부터 세잔에게 사과는 어떻게 본질에 닿는 견고한 대상일 수 있었는지, 그의 작업 방식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가상 인터뷰 질문을 만들기도 하며 조금씩 더 세잔이 좋아져 갔다. 또 한 번의 조우는 코로나 확산 직전 올해 1월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서 있었다. 누가 봐도 인기 폭발 작품은 고흐의 ‘자화상’이었고 발을 뗄 수 없는 아우라를 자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잔의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을 비롯한 인물들과 정물들은 몹시도 묵직했다.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은 페터 한트케가 마음으로 받아들인 스승 세잔의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와 그 여정에서 느끼고 사색한 것에 대한 일련의 기록이자 자전적 이야기다. 1978년 전시회에서 본 세잔의 그림은 그에게 “플로베르의 문장배열을 대했을 때만 유일하게 느꼈던 그런 강렬한 탐구욕(34p)”을 불러일으킨다. 세잔의 산은 곧 그에게 세상의 중심이 된다. ‘팽이의 언덕’에 이르면 그릴파르처의 문장 중 ‘연결의 욕구’를 보며 ‘연결’을 자신의 말로 재정의한다. “나는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 인생의 매 순간은 다른 모든 순간과 함께 연결된다. 연결을 위한 보조 장치는 필요 없다. 직접적인 연결만이 존재하며, 내가 할 일은 오직 자유로운 상상뿐이다.(95p)”     


일관된 기조는 D의 출현으로 분위기를 환기한다. 어쩌면 에바 부인 같기도 한 D는 마치 구원자처럼 외투 이야기 즉 드레스를 만든 과정을 전한다. 이 과정은 작가가 고민했던 ‘연결의 난관’을 극복할 만한 상징이며 모든 창조, 예술, 삶이 찾아내야 할 길과도 상통한다. 한트케의 세잔을 읽는 일은 생트빅투아르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했다. 청정한 삼림욕을 기대했건만 등산은 등산이다. 자주 멈추고 숨 돌리며, 궁리하고, 나의 과거로 돌아가 두리번거리고 이정표를 찾는 여정이었다. 세 권의 책은 새로 접은 세 겹의 초대장이었고 회전하며 상승하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걷듯이 탐색하고 몰입하는 즐거움을 안겼다. 초대받은 연회를 즐길 시간은 아직 넉넉히 남아있다. 남아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제목, 인용 제외 20.5장)


(문체 연습/레몽 크노/문학동네)

(공간의 종류들/조르주 페렉/문학동네)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페터 한트케/아트북스)     




서평 8년 차 시점>

주제를 정해 셋에서 다섯 작품을 읽고 20매 내외의 원고를 작성하는 리뷰대회를 알았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게 가능해?’였다. 정확히는 다른 사람들은 가능하겠지만 나도 가능할까 하는 질문이 씨앗처럼 마음에 떨어졌다. 


독서의 궁극에 닿는 길은 여러 가지다. 갈래길도 대로도 꽃길도 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제안이나 시도 덕분에 소중한 작품을 다시 불러낸다는 것만으로, 

다시 쓰일 글의 가능성 만으로 설레지 않는가!     


메모 발췌했던 리뷰대회 참여 솔직 스케치다

보름간 두 편을 쓰느라 혼자 고군분투하며 '누가 시켰으면 큰일 날 뻔했지' 싶었던 시간이 생생하다. (20201228)


~~ 그때 저의 마음 상태를 가감 없이 밝히자면     

1. 짜 맞추기 끝판왕 같지만 의지가 있으니 맞춰지네

2. 올해를 대변할 수 있는 도스토옙스키 챌린지 작품으로 솔직하게 쓰자

3. 이것이 아닌가 보다(2번), 다시 써야 한다. 문체 혁명과 공간의 종류들과 세잔으로 쓰자(세잔 주문)

4. 이것이 아닌가 보다(3번), 나귀 가죽으로 썼어야 됐다(무릎을 침), 버트(But) 마감 임박!

  또 하나의 후보군은 시집 네 권으로 써보고 싶다, 그러나 내공 부족

5. 사실 쓰고 싶었던 책은 공간의 종류들, 다시 올리브, 체스트넛 스트리트 세 권의 조합이었는데 뒤의 두 권을 사두고 못 읽었다는 게 함정(미리미리 하자!), 악령을 읽고, 또 읽던 11월인지라요.

6. 쓸수록, 너무 붓 가는 대로 쓰는구나, 대단히 신변잡기적이야

7. 퇴고에 퇴고! 그런데 퇴고를 할수록, 뭔가 이상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수상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위 메모에 썼듯이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트』, 『네 번째 원고(존 맥피)』, 『낯선 길에 묻다(성석제)』 네 작품으로 쓴 [읽고 쓰는 호흡법으로 시간을 기념하다]와 

[세 겹의 초대장, 놀며 사랑하며 배우며]로 결국 두 편을 응모하고 후자로 동상을 수상했다. 



올해 저와 더불어 도전하실 것을 권하고 싶었지만 2년째 지속되는 비대면 상황으로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네요. 그렇다면 내년에는 저와 함께 서평으로  결산하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전 18화 18. 챌린지 또는 전작 읽기와 서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