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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Jun 13. 2024

진짜 나를 찾아라_법정 2.

다시 시작.


ㅡ 1편에서 이어 씁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리란 편으론 익숙한 것이기도 한데  스님의 말씀 중 새롭고도 생명력이 있어 내가 크게 감응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상에 대한 다른 시각'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이 어찌하여 허무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몰라도 인생무상이란 말처럼 말이 주는 어감은 허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스님은 변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신다.


변하기 때문에 병이 든 사람은 건강을 회복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면하게 되고,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롭게 되고 남을 증오하던 사람은 사랑의 길을 배우게 됩니다. 변한다는 것은 가능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p. 140


깜짝 놀랐다. 무상에서 희망을 보다니. 더군다나 이 희망이 '현재적 삶'을 이끌도록 하는 논리를 펴 나가시는 것 아닌가.


산다는 것은 순간마다 새롭게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그리고 보다 사람답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지 늙고 병들고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 노예가 아니라 역사를 창조하는 당당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답게 우리답게 살아야 합니다.


시간은 관념적 개념이에요. ... 흐르고 변하는 것은 사물이거나 사람이거나 우리의 마음일 뿐입니다... 시간의 흐름은 단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약속일뿐입니다. 지나가 버린 과거도, 오지 않은 미래도 우리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 반추할 필요도 불안해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공간과 붙잡히지 않는 개념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지금 바로 이 자리... 생명의 한 장면을... 즐겁고 유익하게 연소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 삶을 채우는 시간' 중에서 p.149


이 말씀을 듣고 어찌 변하고 싶지 않겠는가. 생명의 한 장면인 현재를 즐거이 연소하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절대적 현재를 사는 철학적 자세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다. 아하, 고개 끄덕이게 된다.


내가 감응한 또 하나는,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관계성에 대 스님의 표현인데 감각이 생생히 살아있어 온몸으로 그 뜻이 느껴진다.


내가 우연히 태종대에서 우는 한 아이를 보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그 울음을 달래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면 그 아이는 평생을 두고 내 기억의 바다에서 울고 있을 겁니다. P. 144


내가 는 부산에 오셔서 한 강연이라 태종대를 예로 드셨지 싶다. 우리 지방의 태종대는 깎아지른 절벽을 향해 거대한 파도를 몰고 오는 외지고 큰 바다로 유명한데 그곳에서 한 아이가 울고 있다니. 그 바다를 알면 스님의 가정이 더 크게 울려올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게 하는 울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정신을 차려야겠구나. 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을.





삶이란 누구한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순간순간 이해하고 깨닫고 새롭게 펼쳐 가는 그런 과정이에요. 이게 사는 일입니다.


감당하지 못하는 기준을 진리 삼으려 하거나 올려다보려 할수록 외려 나는 더 작아졌었다. 그러다 보니 몸서리치게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한 과잉된 괴로움으로 관계마저 잊고. 뒤돌아 보면 화들짝 놀라게도 된다. 어쩌다 이 지경으로 나이를 먹어버리고 삶은 비루해졌나. 그런데 스님은 나 자신이 펼쳐 가는 그림이 사는 일이라고 토닥여 주신다. 사는 걸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내 하루, 내 옆의 이웃, 자연 그리고 날마다 새롭게 향기로운 마음을 먹는 것.  


바쁘고 아프다는 핑계로 이사 오고 나서 팽개쳐 둔 짐더미 앞에 앉아 본다. 오래 묵은 과거를 끄집어내어 먼지도 털어 본다. 보낼 것을 정리하고 싶어 진다. 이러고 있으니 문득 스님이 그토록 강조하신 무소유하는 삶과 맞닿은 어떤 절실함이 내 속에서 일어난다. 지금 내 에 놓인 생활의 잡다함을 단정히 하는 것. 진짜 나를 찾는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지도 모르겠다. 뽀드득 소리가 나게 현관을  헝클어진 신발은 가지런히 놓아두고 신발장 잡동사니도 훌훌 비워 보는데 동안의 잡념이 점점 덩치를 이는 게 감각으로 느껴진다. 가벼워진다.


직접 일군 내 몫만큼의 삶에 당당하고 관계 속에 나를 잘 놓기. 그렇게 계속일 수 있다면 님 말씀처럼 내 개인이 시대에 보탬도 될 수 있으리라. 오랜만에 그득한 심정이 된다.




"가시는 길에 옛 시 한 수 놓아 두었습니다. 맑은 바람 타고 훨훨 잘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마지막 인사다. 희한도 하지. 정말로 스님께 차 한 잔 얻어 마신 듯한, 그래서 차 맛이 무궁하게 감도는 진한 고즈넉함이라니.


흐린 눈을 씻고 맑은 바람 타고 훨훨.

그래, 다시 시작고 싶어.


책의 마지막 페이지. 고려말 이색의 오언율시를 현대말로.  











*제 삶의 한계로 제가 많이 도움 받은 부분에 대해 감사하여 써 본 글입니다. 우리는 다들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지요. 스님의 책에서 가고픈 길 하나 찾으실 수 있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전에 쓴 스님의 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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