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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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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Jul 17. 2023

정다운 사람들

이웃.

세시 풍속에 민감한 사람들의 살뜰한 정성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나는 그것에 무딜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께서 차려 주시는 풍속의 밥상을 맞을 때에야 비로소 아, 동지구나, 보름이구나 하고 살았으니.


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에 세시 풍속은 생활의 악센트라는 내용의 설명문을 배웠다. 그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마음으론 몰랐다. 전통적인 농경 사회에서 어찌 보면 늘 같은 일상이었을 것이니 철철이 세시 풍속은 정말 그런 악센트가 되었을 것 같다. 때를 맞아 때에 절실한 행사와 기복을 하고 제철의 가장 물오른 먹거리들로 건강과 맛을 챙기고.


휴직을 하고 몸을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요가를 다시 하고 싶어졌다. 미혼이었을 때 직장 동료들과 멋진 분을 모시고 요가를 시작했으나 그땐 벌 서는 것만 같아 고역이었다. 테니스, 볼링은 너무 재밌었는데 엘보가 왔고 수영 정도 꾸준히 하였으나 어느 순간 힘이 달리고 물이 추웠다. 아프기 직전까진 필라테스를 했다. 원래 장기간의 환자들을 위해 고안된 운동이라고 들었다. 나와 잘 맞았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근력을 쓸 힘도 없었고 무엇보다 영혼을 어루만지는 시간이 절실했다.


동네 동사무소에서 하는 요가 교실을 찾았다. 직장을 쉬다 보니 우리 나라에도 이런 평생 교육 제도가 많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평생학습관이나 동사무소, 도서관 등에서 하는 양질의 프로그램이 너무 많고 시설도 얼마나 좋은지 기가 찼다. 세금 낸 보람이 팍팍 느껴졌다. 그것들을 살펴 보다 요가가 보이자 눈이 번쩍. 코앞이 동사무소라 멀리 가지 않아도 되니 웬 떡이냐였다. 특히 같이 하시는 분들이 거의 연세가 많거나  할머니들이라니 더 좋았다. 아픈 내가 힘들여 따라가지 않아도 되고 느긋하게 그분들과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게다가 한 달에 수강료가 무려 만 원이다.


내가 제일 어리다.;; 좋은 거지?


칭이 애매하다. 어머니랄 분들은 어머니라 하면 될 것 같다. 근데 띠동갑 정도 되는 분들이 많으니 애매하다. 나는 아주머니들이 주로 쓰는 그 '형님'이란 말을 잘 못 쓰겠다. 어쩌냐... .  호칭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어느덧 몇 해가 갔다. 지금은 그냥 다 '언니'가 되었다. 푸들 초코 어머니도 요가 교실에 오면 그냥 '언니'가 된다. 연세가 일흔다섯이시다.




나는 일어나는 게 고역인 사람인데 이 언니들은 평생을 새벽부터 가족 수발하신 분이 대부분이다 보니 아침 내공이 장난 아니다. 요가 끝나면 먹자고 커피, 빵이며 과일을 잘 깎아 바리바리 챙겨 오신다. 어쩔 땐 전, 만두, 찰밥, 국까지. 그것도 새벽에 하신 따끈따끈한 것들. 운동하고 살 더 붙여 간다고들 하시면서도. ㅎㅎ 나 혼자 잘 안 먹는다고 내 것은 꼭 더 챙겨들 주신다.


김장할 땐 온갖 정보를 교류하신다. 맛있는 젓갈, 좋은 배추, 고춧가루. 어머니 가시고 난 김장을 안 하니 들어도 무슨 말인지.. 그래도 새우젓 정도는 먹으라고 들려 주신다. 계란찜할 때 넣으면 맛있다고. 갓 담은 김치도 주신다.  

따스운 잡채 먹어 보라고 전화가 온다. 주로 언제든 음식이 될 때 주시기 때문에 불려 나가는 것이 시간 대중이 없다. 늘 빚만 지니, 특히 혼자 계시는 분이 아프셔서 요가를 못 오시면 나도 갈비탕 사다가 갖다 드린다. 안 그러면 맘이 아프기 때문에.


반찬이니 국이니 내게 건네주는 언니도 계신다. 띠동갑이다. 아파트 담 벼락에서 만나서 담 사이로 들려 주신다. 괜찮다고 해도 부득부득. 갑자기 전화로 부르시니 고마워서 뭐든 집에 있는 것들이라도 드리려고 가져가긴 하는데 손수 한 따신 음식에 비하겠는가, 내가 드리는 것들이란..

한 날은 이 꽃을 뚜껑 닫아 쇼핑백에 넣어드렸더니 한사코 사양하시다 받으시면서

 "잘 먹을게. ~"

하셔서 ;;




문화센터 수업을 하고 언니께 드려야지 했다.



문자를 했다, 바로.







이렇게 주고받고 나서 좀 있다 다시 문자가 와서는,







늘 씩씩하신데 식구들 건사한다고 바삐 사시니... .  마지막 저 문구가 왠지 아리하다. 한참 읽는다.


'활짝 피면 내 마음도

꽃처럼 활짝 웃겠지.'


'활짝'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오늘 처음 본다는 듯이.

이렇게 생활 속에서 착한 사람들의 시를 발견할 때 나는 참 뭉클하다.






정월 대보름인가 보다.  전화가 온다. 나오라고. 무슨 한 보따리. 집 와서 펼쳐보니





이 정성에 눈물이 왈칵 났다. 보름이니 뭐니 모르고 사는 나에게

"이걸 먹어야 한 해 병도 안 걸리고 좋다."

라신다. 맛있게 따뜻하게 먹었다.


남편이 그런다.

"참. 도시에서 이러기 힘든데. 좋은 사람들이다. 당신이 나보다 친구가 더 많네. "


그렇다고 사생활에 끈덕지게 관여하는 관계들은 아니다. 서로 모르는 게 더 많고 집으로 오가는 사이도 아니다. 알려고 하는 실례를 하시지들 않는다. 그저 새벽에 같이 요가하고 먹을 것 있으면 나눠 먹고. 난 몸도 많이 나았고, 아들이 군에서 제대했는데도 까먹고 나 혼자 있다고 여전히 여기시는지들... .


건강 챙기고 서로 보면 웃고. 아플 때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고. 무슨 이런 복이 있을까. 내년에는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있는데 벌써부터 서운하다.






저녁엔 가족과 밖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초코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는데 못 받았네.

"전화하셨네요?"

"응, 순이야(내가 태순이 엄마라고 날 보고 늘 순이라 하신다. 태순이는 우리집 장모치와와.) 밥 먹었나?"

"네. 지금 가족이랑 먹고 있어요."

"아이고 내가 한발 늦었네, 그래도 니 찰밥 좋아하나. 우짜노.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데.  밥 묵고 밑에서 볼래. 좋아하면 난주 데워 먹으면 되잖아. 맛도 없지만서도. "


.  .  .  .


식사 마치고 오는 길, 초코랑 둘이 사는 75세 언니께 드릴 샌드위치를 사러 빵집으로 들어간다. 빈손으로 남을 맞는 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 준 어린 시절이 고맙다. 또 한사코 이 샌드위치를 사양하시겠지만 초코랑 앉아 한 입 베어 드시겠지 생각하면 내 마음도 꽃 같이 활짝 웃는다. 저 언니의 시처럼.









-- 올해 정월 대보름, 휴직하고 있을 때 일이다. 지금은 복직하여 동사무소(참, 요즘은 주민센터) 새벽 요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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