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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Jul 29. 2023

아들의 방

아들.

아들이 외출했다.

방에 보일러도 안 끄고. 파랑 서랍장은 죄다 헤벌어지고 그것의 이마엔 한 짐 가득.  땅바닥에 옷가지, 택배 봉투, 비닐봉지, 뚜껑 각도가 찌그러진 커다란 상자, 그 위 엎어진 해 지난 달력. 태순이까지 가세하여 호랭이 인형을 오빠방에 내동댕이..... .


뜨끈뜨끈  혼자 불타는 방. 그래서 책 들고 노트 챙겨 아들 방으로 왔는데 보자 보자 하니 보이네. 말 그대로 가관이다.





군에 가서 너무 변했다. 질서정연해졌다. 첫 휴가 나왔을 때, 잘 개어 옷걸이에 걸어 둔 군복과 모자를 보고 난 거수경례를 붙이고 싶었다. 아니 붙였다. 국가의 부르심이 그날은 감동스러웠다. 그뿐인가. 고맙다고 엄마 화장품도 사서 나오고. 오이구, 아들.


제대하고 3일 가더라.;;


그래도 반수한다고 고생 많았다. 이젠 성인이니 참견하지 않기로 한다. 수능 끝나고 자유롭게 둔다. 입이 근질근질. 청소기라도 돌리고 싶지만 남편 말씀이

"그럼 지는 거야. 그냥 둬요."


먼지도 알알이 씻는다 할 만큼 깨끗한 집안에서 자라서  십 대 땐 그것에 은근 반항스러웠다. 각 잡힌 깔끔한 정리, 주말이면 앞집 남학생이 빤히 보는데 마당을 쓸어야 하던 남사스러움. 그래서인지 당시로선 귀하던 스위스 아날로그 시계를 중학생이 되었다고 받았는데, 학교 갔다 오면 이불에다 그걸 패대기칠 때 묘한 해방감이...... . 섬세한 물건을 그리 던져 댔으니 고급진 시침 분침이 정교하게 가르마를 타고 있었지만 이내 박동을 멈추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맘 먹고 헝클라치면 난 쑥대밭을 멋지게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다. 그러고 보니 뭐 아들을 이해..할 수는 있다...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이성일 뿐이얏!!


저 책상은 내가 만든 첫 작품?이다. 나무가 좋아서 목공을 좀 했다. 사진에 작게 나왔는데 엘다 나무로 6인용이다. 아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 거실에 가족 책상으로 쓰려고 큰 걸 만들었다. 키가 자라다 보니 제 방에 걸 내가 쓰고 저 큰 테이블을 아들 방에 넣어 주었다. 방이 꽉 차게.

그런데 그 광활 무쌍한 벌판을 들였음에도 뭘 놓을 틈이 없다. 오른팔 움직일 각도만 나오게 상판이 딱 비어있다. 책 거치대도 대문짝만 하니 고시 공부하는 줄 알겠다만 거기 편안히 등 기대 누우신 노트북. 맨날 게임이다. ;;




이 여성은 연예인인가. 아. 학원 강사구나. 가고 싶은 대학 배지도 있고 공부하던 포스트잇도 있고. 닭 혼자 시켜 먹었네, 쿠폰도 있고. 에구 말을 말자. 수험서들도 다 그대로. 아직 고3 같은 방. 수능 끝난 지가 언젠데.




그런데 귀퉁이에 보이는 글귀 하나.




잔소리 그만,

또 아들을 믿게 된다.








ㅡ 지금은 아들의 여름 방학. 저 방이 어떠할 지는 상상에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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