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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Aug 15. 2023

아침 노래 이야기

푸른 바다에   0 0 이/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나는 청년을 만나면 항상,  0 0 에 들어갈 말을 맞추어 보라고 퀴즈를 낸다.  


파도

땡.


하늘

땡.


보트

땡.


고기

비슷한 거야.


ㅋㅋ 생선

땡.


산호

오!  땡.


고래!

딩동댕.


이럭저럭 맞추었다. 그럼 다음을 맞추어 보라고 한다.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0 0 이/가 아니지.


그래, 답은 그대다.

'청년'.



요즘은 이 시가 교과서에 나오는 모양이다. 이런 시가 교과서에 나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마음속에 무엇을 키워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국어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가.  



고래를 위하여                                 


                               정호승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헉. 아침에 일어나니 씻지도 않고 잤다. 이런 일이 없는 내가 ㅠ.

여전히 두드려 맞은 듯한 찌푸둥한 몸. 징하다이. 후다닥 씻고 또 출근한다. 이럴 땐 점퍼스커트가 최고다. 코디 생각 없음. 5초면 끝. 이 중성스러운 옷은 내가 좋아하는 작업복인데 작업률 200프로를 달성하는 옷이다.


지하철.


내 오른쪽 옆에 분도 자고 내 왼쪽 옆에 분도 잔다. 앞에 분도 자고 앞에 분 오른쪽 옆에 분은 팸플릿을 본다. 앞에 분 왼쪽 옆에 분은 폰을 본다. 나는 음악을 듣고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한다. 눈을 떴을 땐 앞에, 옆에 분들을 또 살펴본다. 음. . . 잠, 눈 감음, 폰, 읽을거리. 거의 저 네 가지 경우의 수 조합으로 지하철 아침 출근 풍경이 펼쳐진다. 예외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 떼의 영혼들이 우수수 일어나 정차역에서 내릴 때 남겨 둔 바통을 또 한 떼의 영혼들이 우수수거리며 이어받을 준비를 한다. 바통 터치는 기계적이다. 그것을 보고 있는 나도 기계가 될 것만 같다. 노래를 찾는다. 내가 기계가 되지 않게 해 주는 노래.


바비 킴, 고래의 꿈



음악은 잘 모르지만  서글픈 듯 흥겨운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소울이 느껴진다. 뮤비와 함께 듣고 있으니 부르조아틱한 호사 취미와  뒷골목 룸펜 정서가 묘하게 공존한다. 노마드 방랑과 마초의 끼가 있어 자유로우면서도 한편으론 구속이라 할 만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갈구한다. 모순된 것들이 재밌게 조화롭다.  


음악에 둔감한 나는 블로그가 아니었다면 이런 노래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블로그 이웃님을 통해 알게 된 노래이다. 가사를 들여다보니



고래의 꿈


                          바비 킴



파란 바다 저 끝 어딘가 사랑을 찾아서

하얀 꼬리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이렇게 너를 찾아서 계속 헤매고 있나

저 하얀 파도는 내 마음을  다시 흔들어 너를 사랑하게

I'm fall in love again

너를 찾아서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

I'm fall in love again

너 하나만 나를 편히 쉬게 하는 꿈인 걸 넌 아는지


먼 훗날 어느 외딴 바다의 고래를 본다면

꼭 한 번쯤 손을 흔들어 줘

혹시 너라면 알지도 모르는

I'm fall in love again

너는 바다야 나는 그 안에 있는 작은 고래 한 마리

I'm fall in love again

왜 이렇게 돌고 돌아야 하나 내 마음을 왜 모르나


한 잔 두 잔 술에 잊혀질 줄 알았어

운명이란 없다고 말했었던 나인데

하지만 난 너를 보며 사랑에 빠져

이제 꿈을 찾아 떠나 바다를 향해

I'm fall in love again

너를 찾아서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

I'm fall in love again

너 하나만 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 걸 너는 아는지

I'm fall in love again

너를 찾아서 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

I'm fall in love again

너 하나만 나를 편히 쉬게 하는 꿈인 걸 너는 아는지





잊을 줄 알았는데 잊지 못하고 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 바다 저 끝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너를 찾아 나선다. 크고 흰고래가 되어 바다를 가르고 다시 너를 만날 꿈을 꾼다. 그러면, 너는 바다가 되고 나는 그 속에서 작아지지. 나는 너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작은 고래. 너 하나만이 나를 편히 쉬게 하는 꿈이지. 먼 훗날, 저 바다의 고래를 만난다면 그 고래가 나라는 걸 부디 알아주길.


'너'가 '연인'이라면 '연애 시'이다. '너'를 나의 '꿈'이라 하였다. 그렇지 않은가. 연인은 '꿈'이다. 이루어질 수 없다 하여도 끝없이 향하고픈. 뒤집어 보면 '꿈'은 연인이다. 사랑에 빠지게 하고 지치도록 그립게 한다. 그런 나를 편히 쉬게 할 유일한 품.  '너'는 '꿈'이러니, 또한 '꿈꾸는 시'이다.


출처 핀터레스트


'별'은 꿈이다. '별'을 보고 날아올라 '별'을 먹은 고래는 다시 바다로 떨어질 때, 푸른 바다를 온통 별빛으로 부서지게 할 것이다. '별' 고래를 키우는 청년의 가슴은 꿈의 지느러미로 꿈틀대지. 그의 가슴이 바다를 가를 때 그 바다 역시 별빛으로 푸르게 부서질 것이다.


살다 보면 현실이란 것 때문에 밀쳐두게 되지만 운명이라고나 할까, 꿈은 여전히 날 사랑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다시 길을 나선다. 바다의 큰 흰고래가 되어. 하염없이 가다 보면 꿈은 바다가 되고 나는 그 큰 바다에서 작은 고래가 되어 가없는 꿈의 향연을 누린다. 그렇게 잊지 않고 살겠다.


훗날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나의 꿈아, 나를 한 번씩 바라봐 다오. 너의 바다에서 나는 한 마리 작은 고래. 그 고래가 나라는 걸 알아봐 다오.




나 혼자 망상에 젖어 큰 고래가 되었다 작은 고래가 되었다 하다 보니, 지하 터널의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철로에 바짝 붙은 메타세콰이어가 푸른 잎사귀를 떨어대고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겨울에는 그들의 존재를 몰랐는데 잎이 돋아나고 무성해지니 푸른 벽을 이루고 있다. 지하철 안도 영락없는 녹색이 된다. 이 잠시의 순간이 참 시원하다. 푸른 폭포 속이 이럴까 싶다. 아니 푸른 바닷속이 이럴까. 저 고래가 피부로 느끼는 바다, 모든 감각을 일깨워 꿈꾸게 하는.


곧, 창 가득 메타세콰이어가 펼쳐진다. 그러면 열차 속이 녹색으로 물든다.



내릴 준비를 한다. 녹색 바다가 끝나면 강이 보이거든. 말 없는 영혼들이 우수수거리던 지하 동굴에서 고래를 만난 오늘 아침은 달리기를 한 듯 심장이 뜀박질이다.


노래 하나로 하루가 바뀐다. 내 발걸음. 날아간다. 찌푸둥한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른 바다에 고래가 나와 눈 마주치고 있을지 둘러본다. 네가 나를 보고 너인 줄 알기를 바라듯이, 나는 너를 보고 내가 너인 줄 알고 있다는 것을 네가 알기를 바라면서. 그러면 푸른 해원海原이 낯설지 않고, 멀지 않고 내 곁에 숨 쉬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안녕, 고래!


내 발걸음. 날아간다. 안녕, 고래! 손 흔들어 본다.



오늘도 내 일을 한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리고 내 꿈도 함께 꾼다. 운명 같은 너를 잊지않고 찾아 헤매는 이 방랑이 행복하구나. 그러니 이곳이 푸른 바다이다. 파도가 하얗게 내 마음을 다시 흔들어 너를 사랑하게 한다, 저 노래처럼.


동안 몸살로 힘들었지만  나내 맘속의 고래를 만난다.

고람 난 청년인감?







ㅡ 지난 5월. 긴 몸살이 끝나자 다가온 나의 고래 이야기다.  근길, 기운이 빠지거나 아득히 무언가가 그리이 노래를 듣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저 날의 고래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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