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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Aug 19. 2023

여름이 어릴 때

지하철에서 내려 일터로 가는 길에 만나는 내 홍해의 갈림길은 어느덧 이렇게 무성하다. 싱그럽다 못해 숨이 차다. 식물의 호흡이 무방비로 내게 다가오니 한 - 숨을 쉬었다가 공기를 들이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눠주는 생명을 마시는 아침은 비가 온다 해도 맑다.


출근길,  푸른 생명을 마시는 아침.


퇴근길, 비비추가 목빼고 날 기다린다


* 이 길을 발견하고 쓴 나의 글



연못가는 꽃 절정이다. 하얀 쌀알 같은 솜털 꽃이 멀리서도 향기가 오른다. 가까이 가니 꿀벌들이 위이잉  윙윙, 달큰한 이곳을 찾아와 주었구나. 꿀벌이 반가운 시대가 되었다.



꿀벌이 엄청 많았는데 내가 다가가니 도망간다 ㅜ. 한 마리만 정신없이 꽃을 먹는다.


일하다 잠시 나와 보니 직장 정원도 생명의 무지개로 가득 차 있다. 금계국의 노랑 파도가 출렁이고 산수국도 색을 머금기 시작했다. 갖가지 꽃 빛깔이 강렬해지기 시작하면 여름이 다가오는 것이다. 바쁜 일 중에도 간간이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시인은 세상의 고해苦海가 아닌 시간을 걷는다 하였지.


저 점점이 이루는 찬란한 무지개를 보고 있으면 숙연하다. 시기를 알고 어김없이 피어나 제 생을 하늘하늘 혹은 조로롱 조롱 아낌없이 살다 가는 아이들이다. 나도 내 시절을 알고 예쁘게 피어 하늘거리고 있지 않을까.


직장 정원에 핀 꽃들. 가만히 눈 맞추고 있으면 숙연하다.




이러한 자연이 아니라면, 나와 가족의 의복을 정리하는 일로 계절을 맞는다. 그 다음은 이불이랄지 쿠션이랄지 일상의 용품을 바꾸어 주는 것이고. 이왕부터 준비해야 할 일이었으나 몸이 불균형이란 핑계로 미뤄 두었다. 다행히 비온 후 낮아진 기온에 봄이 조금 더 머물러 주니 내 게으름이 표나지 않게 한 주일을 살 수 있었다.


어제 얇게 입고 출근했다가 추워서 혼났다. 때아닌 장마 같은 며칠, 진작에 옷장으로 들어갔어야 할 스커트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입는다. 롱 스커트를 입고 출근하면 편하고 기분이 좋다.

왼쪽, Hyke 23 ss.  가운데, 스텔라 메카트니 18 ss.


옷은 일단, 편해야 한다. 낯선 것도 결국 일상화시키는 것이 디자이너 컬렉션의 힘인데 살아남는 룩의 바탕에는 결국 '편함'이 있다. 모델의 저 기럭지는 동양인인 우리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어중간하기보다 아예 긴 실루엣이 더  시원한 시선을 주고 신체도 자유롭다. 나의 스커트는 햅번 스타일로도, 쿨한 스텔라 메카트니처럼도 입을 수 있는데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주야장천.


그날 날씨와 기분에 맞고 편안한 의상은 하루를 행복하게 해준다. 출근을 하게 되니 의복으로 느끼는 계절이 다른 척도보다 명확하다. 이 옷을 한 번 더 입을 수 있다는 것은 여름 앞에서 봄은 마지막으로 할 말이 남은 듯하다는 것이지.




앙상했던 겨울, 그러니까 지금과 판이한 계절에 복직했었다. 하루 만에 감각이 돌아와 허탈했던 기억. 삼십 년 동안이 헛일은 아니었구나 싶어 웃음이 났었지. 그래도 몸은 적응하느라 힘들었는지 한 달여를 몸살했다. 몸과 정신의 삐걱거리던 부조화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모양새인가, 퇴근하면 쓰러져 자던 내가 집에서라도 요가를 해 본다. 그간 굳었던 몸이라 근육통이 일지만 군더더기 없는 육신의 호흡을 만날 때 마음도 함께 단정해진다. 이젠 놓아서는 안 될 요가이다.


다시 일하고부터는 구독하는 시사 주간지의 봉투를 뜯지도 않고 오는 족족 쌓아 두었다. 잡지를 뭉치째 놓고 하나씩 뜯어 살펴본다.  '시사'란 조금만 지나도 식어버리니 맥이 빠지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화면은 여전히 약발이 있다. 그래도 장하준 교수의 인터뷰나 AI 특집은 꼼꼼히 읽어 본다. 우리 이웃들의 걱정도 한 번 살펴본다.


신간 소개는 내가 젤 좋아하는 꼭지이다. 미니멀을 맘먹은 후론 책도 안 사려고 노력하고 도서관을 이용하므로 가뭄에 콩 나듯 그중 하나를 사지만 그렇게 사는 책들은 대부분 성공이다. 읽고 싶은 책에 동그라미를 쳐 보고 있으면 세상 행복하다. 이러고 있으니 동안 읽었던 책의 리뷰도 써 보고 싶어진다. 책 리뷰 쓰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인데 블로그를 시작하고는 기록하는 재미를 알게 되어서인 것 같다.


 년간,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느라 내가 누군지 헷갈리던 시간을 보낸 게 사실이다. 앞으로도 무수히 그러한 순간들을 만나고 '나'에 대해 질문하겠지만 실시간 감각은 이제 조금 깨어나는 건지...... .


지하철에선 언어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산티아고'란 말도 마음 한 켠에 다시 오르락내리락. 이국의 언어는 여행 본능을 자극한다. 저-어-기 공항이 있었지. 퇴근길, 지하철 역사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공항을 새삼 바라본다.


삼심 년 전 이곳에서, 젊은 나는 답답할 때 일터를 도망? 나와 공항엘 갔다. 터미널이란 말이 주는 막다른 기분이 공항에선 다르게 느껴진다. 새를 닮은 비행기가 있기 때문인가. 떠나지 못하고 커피 하나에 필경 돌아와야 했으므로 젊은 나는 '공항'이 들어가는 제목을 가진 박완서의 소설을 대신 읽었었다. 지금의 나는 그러한 답답함쯤은 앉은 자리에서 다스리는 정도는 된 거 아닌가 한다. 아니, 그 정도로는 답답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하하.

지하철 역사 창으로 오늘에사 바라보이는 공항 관제탑과 구름


요즘엔 지하철 창밖으로 강보다 '도로'가 보인다. 저 차량 행렬을 보면 운전을 하고 싶어진다. 달리고 싶다. 엑셀을 나눠 밟을 때마다 우렁차게 짖던 엔진 소리가 그리워진다. 아직도 지하 주차장엔 내 빨간 차가 엎드려 있을 것 같다만 그녀를 보낸 지도 석 달이구나.


강 옆으로 공중 부양된 길이 왜 저리 시원하게 뻗어 보일까. 무성하게 잘 빠진 나무들 사이로 굽이진 길은 어디로 향해 나 있는지. 저 길을 걸어가 보고도 싶어진다.


집에서 쉬어라고 하면 이젠 갑갑할 것 같다. 이도 얼마나 갈 진 모르겠다만. 휴직하고 쉬던 때가 정녕 과거가 되었구나. 그러고 보니 '살아있고 움직이는' 것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생동生動'이란 것이네. 단어의 뜻을 첨 보는 듯 갸우뚱해진다. 이러한 생의 감각이 요동치는 것을 보니 뜨거운 계절, 여름이 오긴 오나 보다.


지하철 차창으로 찍어 본다.  오랜만에 운전을 하고 싶어진다. 달려 보고 싶다.이게 다 여름이 오는 덕이다


저 스커트는 이제 오늘을 마지막으로 가을을 기약하며 안녕이다. 동안 수고해 준 의복을 정리하고 나와 가족의 계절 옷을 꺼내어 종류별로 차곡차곡 선반에 누이고 옷걸이에도 걸어 둔다. 하얗게 사그락대는 이불 커버를 장에서 꺼내고 여름 꽃잎이 시원히 핀 린넨보를 찾아 쿠션도 옷 갈아입힌다. 일상의 말단에서부터 계절을 맞을 준비를 할 땐 이미 그의 숨결이 그윽이 다가오고 있음이다.




꽃이 되려는가 뾰족이 저를 내밀더니 드디어 오늘 아침 출근길에 연꽃 봉오리가 새부리 같은 노란 세계를 안고 솟아올랐다. 아... 저 꽃이 한창일 무렵이면 정말 여름.

수련이 외로 꼰 고개를 들고 날 보며 노오란 언어로 편지를 써 줄 때, 그때가 되면 나도 나의 색으로 답장을 하여 주리라.


출근길 만나는 연못의 수련


피부를 스미는 바람은

이미 새 계절의 숨과 물기를 결결이 안고 있다.

아직 어리지만

가득히 안아 보려 두 팔을 열어 본다.


여.   름.









여름이 어릴 때, 그러니까 6월 초에 그를 맞이하며 쓴 글이다. 계절이 한창수련에게 답장하여 주리란 약속을 지켰다.


이제는  이미 가을의 결이 바람에 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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