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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Sep 17. 2023

필사 챌린지라니

정현종, '시를 찾아서'에서 만난 한 문장.

난처한 일이 생겼다.

필사 챌린지. 난 '0 0 챌린지'류 하고는 담쌓고 사는 사람이다. 중고등학교 때 '행운의 편지'인가?

'이 편지를 베껴 써서 7명에게 전하라. 그러지 않으면 재앙이 오리라.'

그런 글을 받아도 내 앞에선 끝나기 마련이었다. 난 그런 재앙을 개의치 않는다. 오면 오라지.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웃님이 내가 거절하기 전에 이미 지목을 해 버리셨다. 아고나, ;; 좋은 이웃님, 시쳇말로 읽씹할 수가 없... .




필사하고 싶은 좋은 글귀를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좋은 책도 너무 많고 좋은 글귀도 그러하니. 요즘 내가 생각하는 거리가 있어 그와 관련된 시집 하나를 선택한다. 근래에 산 시집이라 해 보아야 올 2월이었던 거 같다.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 걸리는 시구가 담긴 시는 전 국민의 애송시가 된다. 정현종의  '방문객'도 그중 하나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작년 10월에 그가 새 시집을 내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시집을 산 이유는 '시를 찾아서'라는 에필로그 격의 산문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정현종 시집, 문학과 지성사. 2022.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그런데 문학은 하등의 돈이 되지 않는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 필수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 번씩은 이 서러운 운명을 가진 문학이 안됐다. 그러면 이러한 문학을 좋아하는 나도 그만 쭈글텅해진다. 현실 감각 없는 이상주의자? ㅠ


정현종의 시집 맨 끝에 있는 산문, '시를 찾아서'를 읽어 보면 예술에 대한 고찰이 나온다.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견디게 한다.



나의 필사. 이 문장을 만나던 날,  삶을 잘 견디고 싶었다.



괴테는 '진정한 시는 우리를 짓누르는 지상의 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니체는 '예술을 수단으로 사람들이 원한 것은, 자신이 더욱 강해졌고 더욱 아름다워졌으며 더욱 완전해졌다고 느끼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라고 했다. 정현종 시인은 이러한 예술관을 바슐라르의 것으로 정리해 낸다.  


 '정신적 삶은 커지려고 하고 위로 오르고 싶어 한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높은 곳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서 시적 이미지들이란 우리를 가볍게 하고 우리를 들어 올리고 우리를 상승시킨다.'

-바슐라르



인간의 삶이 격상되고 아름다워지게 하는 '인간 정신의 상승 의지'가 창조적인 예술, 시 만들게 하고 즐기게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삶을 견디는 것이다.







새.


'인간 정신의 상승 의지', 혹은 '가벼움'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정현종 시인은 '새'라는 단어 하나를 통해 절감하게 한다. '새'를 떠올려보라. 해방이며, 완전을 향한 깃을 치고, 상승하려는 가벼움 아닌가? 놀랍다. 그래서 그는 시를 '깃-언어'라고 한다.('깃'은 조류의 깃털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그로 인해 '새가 나는 행위'를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무거움을 정복하는 자 '위버맨쉬'('초인'이라 주로 번역되는 니체의 개념)라고 정리한다.


통찰이 깃든 논리 정연한 시론(詩論)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시인도, 시를 읽는 자도 '위버맨쉬'에 다가가려는 자들이겠지. 현실 감각 없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잘 치러내고 고양되는 자들이다.


사랑에, 정에, 병마에, 상실에, 배신에, 정치에, 일에, 돈에...

끝없이 나열할 수 있는 그 '현실'이라는 것에 멍든 우리 가슴. 그러한 무거움으로부터 한 편의 시를 읽고 우리는 가벼워진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  천상병. '귀천' 중에서



라던 시를 떠올려 보아라. 가벼워지지 않는가? 새의 날개를 얻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리라.


그렇다.

예술은, 문학은, 시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견디게 한다.'

가벼이 날아올라 높은 곳으로 가게 한다.






이 시집의 시 하나 올려 본다.




벌써 삼월이고


                      정현종


벌써 삼월이고

벌써 구월이다.


슬퍼하지 말 것.


책 한 장이 넘어가고

술 한 잔이 넘어갔다.


목메지 말 것.


노래하고 노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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