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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Dec 05. 2023

  '어른 김장하'_저 뒷모습은 얼마일까

영화.

늘 돈, 돈 하게 된다. 자식 교육비, 고금리에 늘어만 가는 대출 이자. 그뿐인가. 고물가 행진에 나 역시도 두세 번 생각하고 지갑을 연다. 오래 쓴 밥솥을 이번에 바꿀까 했더니 너무 비싸다. 고장 안 났고 밥도 잘 되는데 그냥 쓰자. 발걸음을 돌렸으나 은근, 뭐 그만큼 썼는데 바꾼다고 덧나나. 소액 기부하는 곳은 아직 줄이지 않았다만 몇 군데 정리할까 하는 생각도 안 하는 게 아니다. 후회도 늘 따른다. 그때 그 집을 샀어야 했는데. 그럼 엄청 벌었을 텐데. 소용없는 뒷북이나 친다.  항산(恒産)에서 항심(恒心) 나온다고 돈 걱정 편히 살고 싶게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소망 돈 생각이 잘못 아니다. 그런데 따져보면 나는 먹고살 만 정도일 뿐 아니라 잘 먹고 잘 사는 정도씩이다. 그런데도 맨날 돈, 돈.


'평생 한약방'. '다큐멘터리'. 그 정도만 알고서도 보고 싶었다. '어른'이란 말 때문에. 늘 꼬질하게 사는 나는 어른이 필요하니까. 그간 사회적으로 존경하던 어른들이 한 분 두 분 떠나시고 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액자가 담은 그 사람

김장하 씨를 쫓는 기자의 이야기 안에 김장하 씨 이야기가 들어있다. 다들 예상하겠지만 기자의 마음이 관객의 그것이 되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액자 틀이던 우리 마음 안에 한 어른이 가득 차게 된다. 놓아주고 싶지 않은 '알키'가 되어 버린다. 낡은 양복, 침묵, 그 눈빛.  밤하늘 걷도록 해주는 별을 발견한 것이 이런 기분일지. 아니, 별이란 말에 그는 손사래를 칠 것이다.


타인으로 구성된 몽타주

어른이 입을 다물어 버리니 많은 증언이 나오지만 그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허탕 친 한 사람의 말이 기억에 다. 한약방도 이젠 사양길이라 돈을 줄 수 없어 너무 미안하다고, 그진심에 자기가 더 미안했다 한다. 그런데도 어른을 만난 가난했던 젊은 날, 이 사람은 돈보다 더 큰 것을 그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돈은 어디서든 차별을 만들어 낸다. 음식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음식은 돈이 없으면 못 먹기 때문이다. 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대접해 드리려고 하는 만큼 해 보고 있다. 새터민들, 외국인 노동자들, 주변에 어려운 분들."

영화는 세프가 된 이 사람이 요리한 고급지고 아름다운 이탈리안 파스타를 클로즈업한다.


코미디 & 유머

교사 채용 거부 다음날 일어나는 일이나 세상 끝날 듯 걱정하시는 모 씨의 전화는 전자이고 꾹 다무는 입술, 'NC로 갈아탔어', '불백'은 후자이다. 물론 후자는 따시고 웃기고 재밌다. 어른의 발걸음을 쫓는 리드미컬한 카메라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도 그렇다가온다. 그가 한 일이야 우리 눈엔 말도 못 할 만큼 '성큼성큼'이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자세는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이었던 거다. 그는 그렇게 태산을 옮겼을 것이다. 이 아이러니에 할 말을 잊기도 하고 빙그레 웃기도 하다 보면 내 안의 '사부작 꼼지락'이 말 그대로 옴찔대려 한다.


그리고 말씀들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었으므로 함부로 아무 데나 쓸 수가 없었습니다.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 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핍니다.


줬으면 그만이지.


-특별한 사람이 못되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그렇게 걸어가면 된다.




피해 가면 편한 일들이 있다. 특히 직장에서 그렇다. 맘은 편않지만 머리가 아프고 생각하기 싫은 일. 애써 고민하지 않고 시간이 가기만 기다린다. 한 마디로 그냥 넘겨버리고 싶은 거다.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하는데 직면해야겠다 싶다. '그것이 어른이다.' 이 생각이 든다. 직장에 가자마자 아침에 바로 상황을 대했다. 희한하다. 일이 풀렸다. 그것도 아주 잘. 부끄러워지려는 맘이 슬그머니 고개 들 때 등뒤에서 그가 밀어 준 것이다.


기자는 당연히 이렇게 마지막 멘트를 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생각하게 했다고. 나는 감히 그런 소리를 못하겠다. 그 생각을 했다 해도 영화의 약발이 가실 때쯤엔  내 생긴 대로 철없이 게 뻔하다. 그래도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은 할 수 있겠다. '똥이 꽃이 되면 좋잖아'는  읊기에 도 나서 안 잊을 수 있겠고. 무엇보다 이렇게 계속 평범하게 살 자신은 두둑하다. 일단 약발이 잘 먹혔는지 오늘 부끄러운 일 하나 선뜻 해결기도 했다.


내 평생에 없는 '영업'을 한다. 그럭저럭 사는 건 같은데 이리 살아도 되나 뒤통수가 좀 가려운 당신이라면 보시라. 내 사는 것이 특별할 것 없다만, 남들께 해 끼치지 않고 나름 산다만 그래도 뭔가 삶이 헛헛한 당신이라면 꼭 보시라. 다 각설하고 바라보고픈 어른 한 분이 그리운 당신이라면 반드시 보시라. 그러고 나서 저 뒷모습이 얼마일지 답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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