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환경에서 살아온 영혼이다. 그래도 일찍 짝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 환한 얼굴로 왔을 때, 너무 기뻤건만. 어느 날 이혼을 했고 아들은 엄마에게 가 버리고 전 부인은 재혼을 했다. 우울증이 괴롭혀도 살려고 발버둥 치던 영혼이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죠. 저 이제 마흔입니다. 큰 덩어리랍니다. 수술도 위험할 수 있대요. 검사하자는데 안 하겠다고 하고 왔습니다. 살 의미가 없어요. 정신과 치료도 효과가 없어요.
. . .
죽고 싶습니다."
전화는 직장에서 받았다. 사실 저 시간에 내가 참석해야 할 업무가 있었지만 갈 수 없었다. 이 영혼의 말을 끊고 다시 전화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전화를 끊으면 영혼의 절망을 두 배, 세 배로 아니 몇십 배로 더 부풀게 할 것 같았다. 한숨만 쉬었다. 그러다
"그래. 나 같아도 죽고 싶을 거 같아......."
라는 말을 불쑥 해 버렸다. 긴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았어요."
"잘했는데... 그 그림. 아직도 생각난다. 창의적이었어."
"네. 생각나요. 그때......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그래, 열심히 살았어."
"뭐든 해 보라고 하신 말씀이 참 좋았어요. 모델도 외교관도."
"그래."
예전 일이 생각났는지 몇 마디 그리하더니
"제가 엄마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엄마를 사랑해요."
영혼이 운다.
"지금 드는 생각대로 생각해. 죽고 싶구나... 그런 너를 잘 바라봐. 내가 죽고 싶어 하는구나...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배가 고파질 거야. 그럼 밥을 먹어. 밥은 있어?"
"네."
"그래. 죽고 싶어도 배는 고파져. 그땐 밥을 먹어. 생각나는 대로 생각하다가 그런 너를 바라보다가, 배가 고프면 뭐든 먹어. 그러다 보면 살게 될 거야. 엄마가 싫은데 엄마를 사랑하는 것처럼. "
"...... "
"며칠 있어 보자. 그리고 전화해."
"네... "
"꼭 전화해."
"네. 고맙습니다."
영혼이 웃었다. 웃었다. 작고 가느다랗게.
지금 이렇게 써 놓으니 내가 덤덤하게 저 대화의 마무리를 한 것 같은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우아한 백조가 물속에선 물갈퀴 발로 엄청 허우적대고 있다 하듯이 나는 저 전화를 받는 동안 내 속의 물갈퀴 발을 얼마나 허우적댔는지 모른다. '자살 방지 전화' 그런 데다 알려야 하나, 동네 주민센터에 1인 가구 돌보는 시스템 같은 게 있나. 이 영혼, 국가의 지원은 받을 수 있는 건가... 내가 무어라 해 줘야 하나. 공감해 주어라던데. 그럼 '죽어라'밖에 더 되는가. 아아. 왜 이 영혼에게 삶은 이리 가혹하나. 좀 잘 살게 내버려 두면 안 되나.
영혼이 말을 하는 동안, 우는 동안 나는 '그래, 그래' 소리만, 한숨 소리만. 결국, '먹어야 살지.' 그 생각만 났다. 그래서 밥을 먹으라고 하였다. 그 말밖엔...
'인생'이란 제목을 단 하고 많은 작품 중에 내게 깊숙이 남아있는 것은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 '인생'이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중국의 사상적 격변기가 배경이었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엎치락뒤치락 속에 인민은 고통받았을 터이고 그 고통이 모호하지 않게 영화는 감각과 서사로 찐하게 형상화해 주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그랬다. 어여쁜 그 배우 공리가 어머니다. 가족들과 만두를 해 먹는다. 난리 통에 한 데서 만두를 찌고 살아남은 가족들 그릇에 담아준다. 젓가락으로 만두를 잘라 자신도 입에 넣고 씹는다. 웃는다.
왜 그 장면에서
'저것이 인생이야.'
소리가 내 입에서 나지막이 새어 나왔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밥을 먹어.'라고 한 말은 저 장면이 내 내면에서 작용해서였는지, 아니면 집단 무의식의 원형으로서 '먹는다'라는 생존 행위의 힘이 내 속에서 자연스레 떠올라서였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란 사람은 원래 '먹어야 산다'라는 것에 대한 투철한 신념을 가진 자라서 영화가 저렇게 기억이 되었고, 그래서 영혼 앞에서 그 말만 생각난 것인지. 그건 모르겠고 알 필요도 없다. 단지 그 말에 영혼이 웃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끔찍이 안도하였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
고통은 사람을 성숙시킨다고 한다. 진실이다. 그것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면 그 속에서도 기쁨과 감사가 있고 죽는 날까지 또한 살아진다는 것도 진리이다. 그러나 이렇게 가혹한 땐, '왜 내 인생만 이래야 하는가?'라는 처절한 억울함이 들 땐, 이어지는 말을 쓸 수 없고 마침표를 찍을 수도 없다
고통의 크기가 저럴진대 '너도 이처럼 극복해 봐.'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말한다 하더라도 결정은 그가 하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이길지 질지는. 아니다. 거두절미하고 그런 말이 사치스럽다, 지금 저 영혼에게는.
보왕 삼매론이라는 불교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오만한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옛 스승들이 말씀하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라 하신 것이다.
이 말은 근심과 곤란을 싸매고 살아라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근심과 곤란이 오는 '삶의 의미'를 알아채라는 것으로오만하지 말고 넘치지 않으며 겸허하게 생을 받들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신은 때로 너무 가혹하다.
그런데 신의 아들인 예수는 어떠하였는가. 십자가에 못 박히었다. 아주 오래전, 영화 '패션(passion) 오브 크라이스트 '를 비통하게 보았었다.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브레이브 하트'의 명 배우 '멜 깁슨'은 제작자로서 '부활'을 주제로 이 영화의 속편을 곧 만든다고 한다. 그의 영화는 필요 이상의 사실성을 추구한다. '헥소 고지'의 전투 장면을 보라. 그는 다 보여줄 필요 없는 것들을 미친 듯이 보여준다. 영화는 절반 이상 눈을 가려야만 한다. 그래서 비판받기도 한다. 그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의 예수도 그랬다. 갈가리 베어지는 육신과 핏물이 젖어 고이던 그의 머리칼은 마치 고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너희가 아느냐고 포효하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와서 예수의 고통은 저 영화의 그것도 모자랄 것이라는 생각이 들다니...
예수가 짊어졌던 인간에 대한 사랑, 죄짓는 인간을 보는 고통, 대신 죄 사함을 감당하고자 하는 고통, 미욱한 인간의 구원을 신께 빌고 그로 인해 받아야 하는 육체적 고난 역시 피하지 않는 고통. 저 영화가 보여주는 육신의 찢김은 그러한 그의 고통을 육화肉化한 것이 아닌가 싶지 과도하다 할 수 없다고.
신은 그의 아들에게도 저러한 고통을 주셨다.'부활'은 극한 고통을 받아들인 자에게만 다가오는 신성한 '축복'이리라. 예수의 고통을 어찌 사람의 아들인 우리의 것에 빗대겠는가마는우리 삶에서 각자의 고통을 감내했을 때 다가오는 새로운 삶. 그것을 부활이라 한다면 신성모독인가. 그것도 모르겠다. 어찌하든 우리는 다시 살고 싶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기가 너무 어렵다. 거기까지 갈 수 있도록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신도 아니고 신의 아들도 아니다. 저 영혼을 어이해야 하나.......
비 온 후 다시 날이 추워진다. 영혼은 이불을 덮었는가, 지난밤...
켄 로치의 'The old oak'.
인간이 제도를 통해 만들어 낸 고통을 끊임없이 천착한 감독. 어찌 보면 너무 정직해서 새로울 것이 없다만 87세 거장이 한결 같이 그것을 추구하였다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나는 이 나이에도 자꾸만 잃어가고 있지 않나.
이색적으로 프롤로그에서 그가 나타나 한국의 관객에게 말을 건넸다. 노장의 말에 지난 사월 꽃샘추위가 기승이던 날 썼던 이 글이 떠올라 다시 꺼내었다.영화를 보면 왜인지 아시리라.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할 일이 무엇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