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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Nov 11. 2023

내게도 번아웃이 왔다 4_'바틀비. 안녕, 잘 가게.'

백 퍼센트 순수하고도 완전한 그리고 고독한 불복종. 그것은 불가사의한 권위였다. 마침내 현실적인 변호사는 자신에게 '할당'된 바틀비의 무언가젖어들 수밖에. 가해한 이 필경사를 보내고 싶은, 보내야 하는, 보낼 수밖에 없는 차가운 의 마지막 인사는 따뜻했다.  

"이제부터 자네의 새 거처에서 내가 자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편지로 꼭 알려주게. 바틀비.안녕, 잘 가게.'


나의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는 바틀비의 완전한 그것에 물론 비할 바가 못된다만 어쨌거나 나도 이제 잘 가라는 말을 직장으로부터 듣게 되는 순간이 왔다. 그러나 그 말은 저이의 말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햇볕 좋은 날, 입원실을 나와 휴게실 소파에서 무릎을 고으고 손깍지 위에 내 얼굴을 가만히 얹었다. 무거운 고개를 외로 돌려 천천히 밖을 바라다. 사람들이 오고 사람들이 갔다. 창밖으로 시 구절과 똑같은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오는 사람도 있고 가는 사람도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빛은 장마에

넘쳐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김광섭, '생의 감각' 중에서



시인은 이후, 채송화 무더기를 보고 생의 감각을 복권했지만 나는 창밖 멀리 하수 종말 처리장의 거대한 입체 눈으로 쓸어 보다가 그야말로 하수 처리된 나를 복권했다. 칼로 무릎을 베어내고 그 자리를 마구 짓이기는 것 같은 통증은 무릎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졌다. 마약성 진통제가 아니면 견디지 못하게 망가진 내가 가까스로 그것에 의지하여 신히 종말 처리 되고 있다. 이제 어디로 내어 질까.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 혹은 '망명 정부의 지폐' 같다던 암울하게 끈적이거나 떨어지고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비유. 그런 따위들만 나의  주위로 끝없이 명멸했다. 때도 조락의 계절이라 하는 가을이 붉게 으슥였다.


한참을 그리 있다가 병실로 들어가니 옆 침상의 환우가

"은수 씨. 나는 웬 아이가 앉아 있구나 했더니 자기던데 뭘 그리 생각했어요? "

묻는다.

'뭘 생각했냐고요. 생각이란 게 뭔가요.'

이러고 있는데

"사람 구경했어요."

라고 답하는 나를 보았다. 질서하고 왜소해진 내가 그런 나를 또 보고 있었다.





정형외과 문교수님은 의지하고 싶어지는 분이다.

"하은수 씨. 걱정 마세요. 내가 낫게 해 줄게요."

의사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사람의 근심을 덜어 주는지. 회진 마다 교수님을 면 마음이 놓였다.


지역에서 제법 큰 관절 전문 병원에 가던 날, 걸을 수 없어서 무너졌던 날. 휠체어를 타고 진료를 보았다. 그들은 날 보자마자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대학병원 문교수님은 온갖 검사를 다 해 보신다. 특히 신경 검사는 얼마나 공포스러웠던지.  

"이 바늘이 들어가고 신경의 반응을 볼 거예요. 병원에서 제일 아픈 검사 중 하나입니다. "

바라볼 용기가 없으니 그것얼마나 길고 뾰족할까 추측만 할 뿐. 내 몸 이곳저곳, 예리한 금속성이 천천히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신경에 걸려들면 전기 충격과 같은 고통이 순간 덮친다. 그래도 어떡하나. 참아야지. 내가 왜 이런지 이유를 알아야지. 단지 외과적인 무릎 관절 이상은 아니라고 하니.


그렇게 모든 검사를 샅샅이 해도 원인이 나오지 않았다. 무릎은 이제 저 홀로 어딘가 먼 곳에 가 있다. 전신 통증이 오면 4시간도 갔다. 온몸의 관절을 다 떼어 낸 듯 무력해진 진공의 상태 같은 묘한 아픔은 진통제가 아니면 견디기 어려웠다. 고통이 지나고 눈을 뜨면 병실의 천장에 안도다. 이곳은 그래도 안전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산발을 하고 침상에 널브러진 나를 보고 문교수님이 와서 이러신다.

"하은수 씨. 일어나 봐요. 계속 이렇 있을 거예요. 빨리 사회에 복귀해야지요."

 말을 듣는데 갑자기 신경질이 났다. 복귀? 복귀라고? 어디를, 어디를 내가 다시 가야 된 단 말인가. 싫다. 끔찍하다. 정형외과적인 소견이 아니라 통증성 질환인 '섬유근통' 쯤 아니겠는가 추측이 된다고. 류마치스과로 옮겨 보자고 하는 말씀은 귓등으로 들린다. 온몸에서 분노가 세포를 뚫고 나왔다. 교수님이 나가고 전의가 와서 세부 설명을 한다. 왜 자꾸 나 보고 복귀하라고 하나요. 가기 싫다고요. 눈물이 하염없다.


나는 가기 싫다고요!




나에게 '휴직'이라는 당연한 권리가 있다는 것도  살았다. 지금은 3개월이지만 출산 휴가가 2개월이던 때 아기를 낳았다. 해산 첫 출근하던 , 여전히 몸이 회복되지 않고 부기도 빠지지 않은 여서 움직일 때마다 아팠다. 참 비인간적이라 생각했다. 거대한 의무 덩어리. 그런 곳이 직장이라 되었던 걸까.  


'휴직'하겠다고 어디가 어떻게 왜 아픈지 직장에 말하 진땀이 났다. 어느 날 걷지 못하게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병원에서도 왜 그런지 모른다는데.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이물감은 런 당혹감보다 더 부대꼈다. 일하는 자정체성을 벗은 적 없이 살아왔던 30년.  관성이 '휴직'이란 말과 거세게 충돌했다.


내가 휴직한들 직장엔 아무 일도 없다는 것쯤은 여러분도 다 아시리라. 내 자리를 대신할거의 구십 프로 확률로 나보다 젊은 계약직을 뽑을 테고 분은 헌신적으로 일할 것이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천고의 만고의 진리가 드라마 각본처럼 펼쳐질 텐데 무어라고 그렇게 더듬거렸을까, 나는.



가기 싫다고요!


병실로 찾아온 의사 앞에서 아이처럼 울먹이는데 명제 하나가 제 뿌리를 박차고 선명하게 솟아올랐다.

'학교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바틀비. 안녕, 잘 가게."







*그림 출처: 쳇봇에디스코 출판사의 '필경사 바틀비' 표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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